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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un 21. 2024

이혼은 결혼의 실패인가

이혼도 능력이다

결혼은 대부분 가장 행복한 순간에 선택하고, 이혼은 대부분 인생의 최악의 순간에 선택한다. 결혼은 축하와 축복, 사랑, 행복을 동반하고 이혼은 외로움과 상실, 아픔, 때로는 사회적 편견을 가져온다. 결혼은 긍정적이고 이혼은 부정적이라는 이분법에 빠지기 쉽지만, 이는 복잡한 세상사와 인간관계를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단순하게 단정 짓는 데 불과하다.


결혼은 평생 한 사람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지지하겠다는 공식 선언이다. 내 마음도 매 순간 변하는데 속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는 타인을 한평생 굳게 믿고 사랑하겠다는 서약이라니. 소수의 매우 성숙한 이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이 지극히 이상적이고 실현 불가능한 맹세를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 진지한 고민 없이 쉽게 내지르고 만다. 어느 때보다 냉정하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야 할 때, 사랑에 눈이 멀어 세상에서 가장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고 만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지금의 행복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예정된 불행의 길목으로 접어들고 만다. 


결혼은 행복으로 가는 하나의 관문일 수도, 지옥으로 가는 급행열차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이혼도 천 길 낭떠러지로의 추락이 아니라 자신이 새롭게 태어나는 축복의 열쇠일 수도 있다.




이혼은 결혼의 실패인가. 이혼은 단연코 결혼의 실패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결혼과 이혼을 성공과 실패라는 단어로 묶을 수 있을까. 이혼을 결혼의 실패로 정의한다면 이혼하지 않는 것 즉, 결혼의 유지는 과연 결혼의 성공인가. 실패자가 되지 않고자 아무리 불행하고 힘들어도 결혼생활을 악착같이 유지하는 것이 과연 성공인가. 이혼이 결혼의 실패라면 이 실패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안은 최대한 빨리 다시 결혼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재혼하지 않고 이혼 뒤의 미혼 상태로 살아가는 것은 실패자인 셈인데, 그럼 이혼 뒤 행복하게 살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걸까.




이혼은 그냥 이혼이고, 결혼은 그냥 결혼이다. 이 자체로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인생을 살아가다 경험할 수 있는 일종의 가치중립적인 이벤트(사건)이다. 이혼은 법적으로는 혼인의 종료이고, 감정적으로는 인간관계의 끝맺음이다.


만일 이혼이 결혼의 실패라는 생각이 든다면, 아직 이혼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았거나, 이혼보다는 결혼이 낫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거나, 지난 결혼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해서일 것이다.


한때나마 열렬히 사랑했고 가장 큰 기쁨을 나눴으며 세상의 전부라고 착각해 평생을 함께하기로 한 사람을 떠나보내기는 결코 쉽지 않다. 사랑의 마음이 크고 정서적 유대관계가 깊었던 만큼 상처는 크고 깊고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유효기간이 다한 인간관계는 집착을 버리고 자연스레 놓아주어야 한다. 유효기간이 다한 인간관계를 애써 붙잡고 있는 건 한때 비싸게 주고 구매한 좋은 식재료를 냉장고에 방치해 썩어서 곰팡이가 피고 냄새가 나는데, 아깝다고 버리지 않고 전전긍긍 붙들고 있는 것과 같다. 이제는 음식물쓰레기로 전락한 것을 버리지 못하고 붙들고 있으면 썩은 냄새는 온 냉장고로 퍼지고, 결국은 다른 좋은 식재료까지 부패해 먹지 못하고 버려야 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버릴 용기를 못 내서 시간이 더 지난다면 아예 냉장고 자체를 폐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승원 감독의 영화 <세자매>에서 미연(문소리 扮)은 습관적으로 바람을 피우는 남편이 적반하장으로 이혼을 요구하자 ‘이혼도 능력이 돼야 할 수 있다’고 당당히 말한다. 미연이 말하는 능력이란 경제적 능력이다.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대외적인 이미지가 중요한 미연은 대학교수인 남편에게 아파트 융자금과 교수 임용 때문에 자신에게 진 빚, 자신이 빌려준 아주버님 수술비를 갚기 전에는 이혼할 수 없다고 못 박는다. 이미 폐기처분 단계인 이들의 결혼 관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분명한 건 미연은 결혼과 이혼 가운데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반면, 경제적으로 미연에게 의존하고 있던 남편은 이혼을 원해도 이혼을 선택지에 둘 수 없다는 사실이다. 미연의 말처럼 이혼도 한마디로 능력이 돼야 할 수 있다. 이혼이란 경제적, 정서적으로 독립된 역량을 갖춘 사람만이 고려할 수 있는 인생의 선택지이다.


(준비된 자의) 이혼은 실패가 아니라 용기이고 더 나은 삶을 향한 발판이다. 익숙한 해로운 관성에서 벗어나 두렵지만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는 결단이다. 낡고 오랜 관습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유연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과정이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대한 반성을 통해 배우는 것이다.

We do not learn from experience,

we learn from reflecting on experience.

_존 듀이 John Dewey


모든 인간관계는 좋든 싫든 언젠가 끝이 오기 마련이다. 연인이 헤어지면 이별이고, 부부 가운데 누군가 먼저 죽으면 사별이며, 부부가 살다가 헤어지면 이혼이라고 부를 뿐이다. 헤어짐의 형태에 따른 명칭은 다르지만 사랑했던 순간을 간직하고, 상실의 아픔을 견디며, 외로운 시간을 지나 회복하는 과정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혼(이별)의 상처를 치유하는 중이라면 마음껏 아파하고 화도 내고 소리 내 울며 자신만의 속도로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마음속 상처도 몸에 난 상처와 같아서 치유가 되지 않았을 땐 계속 아프고 신경이 쓰인다. ‘과연 괜찮아질 수 있을까?’, ‘이놈의 기억은 왜 자꾸 떠오르는 걸까?’, ‘왜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안 될까?’ 싶지만, ‘어느새 입안에 혓바늘이 사라졌네?’, ‘가시에 찔린 발가락이 이제 아무렇지 않네?’ 싶은 것처럼 이혼도 덤덤하게 말하고 회상하는 순간이 불현듯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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