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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ul 23. 2024

아버지의 외도 사실을 감추고 싶은 수호 이야기

가짜 효자/효녀, 마마보이/마마걸 알아보는 법 ③

수호의 이야기


어린 시절, 수호는 다정하고 자신감 넘치는 아버지를 좋아했고, 좋은 아버지와 자주 다투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좀 더 철이 들고서 두 분이 다투는 이유가 아버지에게 다른 여자가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아버지를 떠나고 말았다. 결국 부모님은 이혼을 한 것이다. 이혼의 명백한 사유는 아버지가 제공했지만, 수호는 절대적으로 어머니 편을 들 수는 없었다. 아버지가 미우면서도 언제나 자기 방식을 강요하고 완벽에 집착하는 어머니가 사람을 숨 막히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외도를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한편으로 감정적으로 이해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수호 입장에서 어머니는 가족을 버리고 떠나갔지만 아버지는 자기 곁에 남아 힘든 시간을 함께 견딘 존재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부끄러운 행동은 감추고 싶은 비밀이었고, 아버지에게는 좋으면서도 밉고 싫은, 불편한 양가적인 감정이 들었다.


수호는 몇 번의 연애 끝에 마침내 ‘이 사람이다’ 싶은 결혼 상대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예전 애인들과 달리 이혼 가정에 편견도 없어 보였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사람이었다. 부모님의 이혼 사실은 진즉 털어놓았지만, 굳이 자기 가정의 치부를 다 드러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좋은 일도 아니고 이미 지난 일인 만큼 부모님의 궁극적인 이혼 사유는 말할 정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애인이 자기 아버지를 굳이 안 좋은 시선으로 편견을 갖고 대하도록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애인에게 부모님의 이혼 사유는 성격 차이이고, 아버지가 무리한 투자를 강행하다 사업이 엎어져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 정도로만 이야기했다. 이 또한 사실이 아니지는 않으니까. 금전적인 이유로 가정이 파탄 나고 자신이 얼마나 고생하고 힘들었는지 털어놓자 애인은 연민과 동정의 마음을 보내는 듯했다.


그동안 외롭고 힘들었던 수호는 드디어 결혼으로 행복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가족이 해체된 상처가 있는 수호는 다시 예전처럼 자신의 가족이 하나로 뭉쳐서 화합하기를 바랐고, 여러 결점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아버지와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가 서로 잘 지내기를 바랐다. 그는 아내와 함께 외로운 아버지를 자주 찾아뵙고, 아내가 아버지에게 신경 써 주었으면 싶었다.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를 잘 챙기는 것은 당연하며, 이 또한 자신을 향한 사랑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내는 ‘나는 당신과 결혼했지 당신 아버지와 결혼한 게 아니야.’라는 야멸찬 말을 반복했다. 자기 아버지에게 가끔 연락이라도 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싶은 서운한 감정이 쌓여갔다. 아내와의 잦은 불화로 마음은 지치고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의 감정도 서서히 퇴색되었으며, 부부 사이의 골은 점점 깊어졌다. 아내가 자신을 더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들자 마음 깊이 상처를 받았고 우울한 나날이 이어졌다.


수호의 불행한 가정생활과는 달리 회사는 연달아 최고 매출을 달성하며 업무가 급증했고, 수호는 매일 야근을 이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회사에는 옆 팀 동료인 마리와 둘만 남았고, 저녁 끼니를 건너뛴 두 사람은 같은 시각에 회사를 나서며 우연히 근처 국밥집에서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오며 가며 가벼운 인사만 나누던 마리와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누기는 처음이었는데, 마리는 자신과 취향이며 성격도 비슷하고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었다. 도저히 말이 안 통하는 벽 같은 아내와 지내다가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니 이토록 반갑고 즐거울 수 없었다. 수호는 모처럼 행복하다고 느꼈고, 마리도 수호가 마음에 들었다. 두 사람은 야근과 특근, 주말근무를 핑계로 자주 만났고 특별한 사이가 되었다. 수호는 이런 게 사랑이라고, 자신에게 다시 사랑이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수호는 자신도 모르게 그토록 경멸하던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되고 말았다. 아버지처럼 될까 봐 두려워서 감추고 싶고 피하고 싶었던, 가정을 버리고 바람을 피우는 무책임한 사람이 돼 버렸다. 얼마 뒤 어머니처럼 답답하고 숨 막히는 아내와는 결국 이혼으로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수호는 마치 쌍둥이처럼 아버지의 인생을 똑같이 재연하고 있었다.



이 시리즈는 다섯 개의 글로 구성했습니다.


1. 결혼을 생각한다면 꼭 물어야 할 ‘질문’ 

2. ‘우리집은 콩가루 집안입니다’ 정우 이야기 - 이전 글

3. 아버지의 외도 사실을 감추고 싶은 수호 이야기 - 현재 글

4. 정서적으로 독립한 사람, 아닌 사람: 대화의 차이 - 다음 글

5. 완벽해 보이는 모범생의 결혼생활이 불행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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