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효자/효녀, 마마보이/마마걸 알아보는 법 ⑤
수호처럼 불안정한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불화한 부모의 눈치를 보느라 자기감정에 집중하기보다 타인의 감정을 읽느라 에너지를 지나치게 소진하고, 이는 다시 자기 자신을 이해할 여유가 부족한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억압하고 불편한 집안 분위기에서 긴장하고 사는데 익숙한 것도 심적 에너지를 빼앗기는 주요 원인이다.
그런데 안정적인 가정환경에서 성장해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성취하고, 성격이 좋아서(착해서) 인간관계도 좋고, 사회적 매너도 훌륭한 부족한 것 하나 없이 완벽해 보이는 사람 가운데 의외로 애인에게는 은근히 의존적이고 갈등을 다루는 데 미숙해 갈등을 회피하는 사람이 많다. 원인은 다르지만 수호처럼 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어른아이에 머무르고 있는 점은 같다. 부모가 특별히 과보호를 하지 않더라도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으므로 성장 과정에서 부모나 친구들, 선생님 등과 갈등을 겪을 일 없이 너무 평탄하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월등한 능력 덕분에 좌절을 경험할 일도 없고, 자신도 모르게 순응하는 사람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성격도 무난하며 안정적인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이들은 결혼 상대로 인기가 좋다(가령, 고학력 전문직, 명문대를 졸업한 대기업 직원 등). 결혼생활도 지금까지의 인생처럼 무난하고 평탄하게 유지하는 듯 보이지만, 너무 완벽해서 인간관계에서 갈등을 겪을 일이 드물었기에 결혼생활에서 오는 온갖 사소하지만 중요한 갈등을 다루는데 미숙해 회피하거나 배우자에게 일방적으로 미뤄버리고는 한다. 선량하고 모범적이며 책임감 강한 이들의 의도적인 행동은 아니며, 자신이 갈등을 회피하거나 전가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를 만큼 갈등에 서툴고 취약하다. 똑똑하고 공부도 잘하고 학교/회사/사회에서 인정받고 지금껏 부모에게도 사랑만 받던 이들이 부부관계에서는 머저리가 된다. 정답이 있는 공부와 시험은 쉬웠는데 아내(남편)가 하는 말과 행동은 도저히 이해불가이고, 과연 그가 연애시절 사랑스럽던 애인과 동일 인물이 맞나 싶다. 아무리 생각하고 머리를 짜내도 아내(남편)가 무엇을 바라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타인의 감정과 욕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융통성이 부족하고 고지식해 어린애를 대하듯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설명을 해도 끝내 도돌이표인 남편(아내)이 답답하기는 아내(남편)도 마찬가지이다. S대학에 입학하고, S기업에 취업할 만큼 머리가 좋은 사람이 왜 이렇게 말귀가 어두운지, 대체 그 좋은 대학과 회사는 어떻게 들어간 건지, 이처럼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무감각해서 일은 대체 어떻게 하고 사람들과는 어떻게 어울리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현실에서는 정우 같은 사례보다 수호나 방금 언급한 결혼생활처럼 ‘이건 내가 생각한 결혼이 아닌데?’ 싶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당황하고 갈등하고 다투고 좌절하는 경우가 일반적일 것이다. 오죽하면 결혼은 사랑(연애)의 무덤이라는 말까지 있을까. 자신은 사춘기를 제대로 겪지 않았고, 정서적으로 독립이 덜 된 사람인 것 같은데, 성급하게 이미 결혼했다고 낙담하지 말기를. 인구의 약 70%는 자아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하지 않고도 살아가고 있으니까. 나처럼 뒤늦은 사춘기를 경험할 기회는 얼마든지 남아있으니까.
임상심리학자이자 발달심리학자인 제임스 마르시아(James E. Marcia)는 자아정체감 이론에서 정체성의 위기를 겪었는지, 정체성 획득을 위한 활동을 했는지에 따라서 자아정체감을 네 가지로 구분한다.
▲ 정체성 성취(Identity Achievement)는 삶의 목표, 가치, 직업, 인간관계, 신념 등에서 위기를 경험하고 대안을 탐색한 후 정체감을 확립한 상태이다. 정우의 경우에 해당한다. ▲정체성 유예(Identity Moratorium)는 정체감의 위기, 변화를 경험하며 대안을 탐색하지만, 아직 불확실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경우이다. ▲ 정체성 유실(Identity Foreclosure)은 자신의 정체감을 심각하게 생각하거나 의문을 갖지 않고 타인(부모)의 가치를 그대로 수용한 상태이다. 이번 글에서 언급한 완벽해 보이는 모범생의 경우이다. ▲ 정체성 혼미(Identity Diffusion)는 정체감 위기를 경험하지 않았고, 직업이나 이념 선택에 관한 의사결정도 없으며, 이 모든 문제에 무관심한 상태이다. 수호가 가깝지 않은가 싶다.
청소년기에는 정체감 유예와 정체감 성취를 바람직하다고 보는데, 초등학교 6학년~중학교 2학년 학생의 12%만이 정체감 유예, 9%만이 정체감 성취에 도달한다(Allison & Schultz, 2001). 성인으로 성장하더라도 33%만이 정체감을 성취한다(Marcia, 1999).
자아정체성은 한번 성취했다고 끝나지 않으며 평생에 거쳐서 정체감에 대한 확신과 의심을 반복한다. 유예-성취-유예-성취(Moratorium-Achievement-Moratorium-Achievement) 사이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청소년기에 자아정체감을 성취했더라도 중년기(40대~60대), 이후 노년기에도 인생에서 중대한 사건을 겪으면 정체성 위기는 얼마든지 다시 찾아올 수 있다. 특히, 배우자나 연인의 죽음, 이혼, 실직 같은 충격적인 사건을 겪으면 지금까지의 가치관과 행동양식에 회의감을 느껴 정체감 불균형 상태를 겪을 수 있고, 이때 기존에 정체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사람은 더욱 큰 혼란과 파괴적인 감정을 경험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정체성을 성취하지 않은(못한) 대부분은 결혼이라는 중대한 갈등과 스트레스 사건을 계기로 정체감의 위기와 혼란을 겪고, 정체감을 성취하며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맞닥뜨렸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자신이 낳은 자식의 사춘기도 이해가 안 되고 인내하기 어려운데, 가치관과 인생관, 결혼관 등이 확립되지 않아 사춘기 10대처럼 불안정한 두 사람이 (끝을 알 수 없는) 각자의 불안정함을 견디고 감내할 부모의 역할을 서로에게 기대하는, 언제 갈등이 폭발할지 모르는 용광로처럼 뜨거운 결혼생활이란 생각만으로도 어질어질하다. 사랑과 행복은커녕 함께 타고 있는 배가 침몰하지만 않아도 다행이지 싶은 일상이다. 안정적으로 사랑받고 싶어서 결혼을 선택하지만, 인간이, 세상이 그렇듯이 결혼도, 사랑도 불완전하고 불안정하다. 언제든 변할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결혼의 불안정함을 수용할 때, 그나마 꿈꾸던 안정적인 결혼생활에 근접할 수 있지 않은가 싶다.
이 시리즈는 다섯 개의 글로 구성했습니다.
4. 정서적으로 독립한 사람, 아닌 사람 – 대화의 차이
5. 완벽해 보이는 모범생의 결혼생활이 불행한 이유 - 현재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