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영원한 관계는 없다. 변하는 관계가 있을 뿐.
“사기꾼들(이유 없이 무임승차하거나 타인을 이용/착취하려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하나 같이 멀쩡하게 생겼는지 모르겠어. 인상도 좋고 처음에 대화했을 때는 말도 잘 통하고 괜찮은 사람인가 싶을 때가 많다니까.”
프리랜서 친구가 업무 때문에 또 한번 곤란한 상황을 맞닥뜨린 억울한 심경을 토로한다.
“인상도 좋고 인물도 괜찮고 말도 그럴싸하게 잘하니까 남 등쳐먹고 살아가지. 사기꾼은 뭐 아무나 하는 줄 아니.”
그렇다고 ‘인상도 좋고 인물도 훤하고 말도 잘하는 모든 사람이 사기꾼이라는 의미는 아니고.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사기꾼 되기에 유리한 조건 아니냐’며 비슷한 상황을 반복해서 겪고 있는 친구에게 모처럼 직설을 날리고 말았다.
범죄인 사기 행위를 옹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사람의 장점이 단점이 될 수도, 단점이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알지 못하면 평생 인간과 세상의 단면만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번 <어바웃 러브> 매거진에서 거듭 강조하고 있듯이, 연애할 때 상대방의 좋은 점, 나에게 잘해주는 면만을 바라보고 결혼을 선택하면, 실제 결혼생활은 힘겹고 불행할 확률이 대단히 높다. ‘이 인간이 뭐가 좋다고 결혼까지 했는지. 그때는 눈에 뭐가 쓰인 게 분명하다니까.’라는 푸념은 결혼을 결정할 당시에 상대의 좋은 면만을 부풀려서 바라봤다는 자기 고백이다. 인간을 다각도로 조망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결정했다는 점에서 불만족하고 후회하는 결혼이나 사기를 당하는 메커니즘은 같다고 할 수 있다.
연애할 때의 장점은 결혼 이후, 다음과 같은 단점으로 변할 수 있다. 사랑의 이유가 결별 사유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일단, 다정한 사람은 따뜻하지만 의존적일 수도 있다. 많은 애정을 필요로 하고 타인 지향적인 사람이라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선호하고, 자칫 바람을 피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부모, 형제, 친척 포함) 주변을 잘 챙기고 호인으로 평가받는 사람은 그만큼 많은 사랑을 받기를 원하고, 인간관계가 우유부단해 맺고 끊기를 잘 못하는 (회피적인) 사람일 수도 있다.
- 한결같은 사람은 안정적이지만 재미가 없을 수 있다. 고지식하거나 변하거나 성장하지 않고 멈춰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 나와 다르다고 느끼는 사람은 매력적이고 신선하지만, 너무 달라서 서로 맞추기 어려울 수 있다.
- 무엇인가를 주도적으로 하는 리더십이 있는 사람은 진취적이고 포용적인 한편, 자기중심적이고 경쟁적이며 지배적이고 자칫 타인을 착취할 수도 있다.
- 똑똑하고 재능이 많은 사람은 자기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매력적이지만, 혼자 집중해 몰두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자기중심적이라 같이 사는 입장에서는 때때로 외로울 수도 있다.
- 창의적이고 독특한 사람은 자유분방하고 융통성이 있지만, 충동적이고 비일관적이며 정리정돈을 잘 안 할 수도 있다.
- 자유분방한 사람은 함께 있으면 신선하고 자유롭고 매력적이지만, 때로는 예측이 어렵고 통용되거나 일반적인 관습을 거부할 수도 있다.
- 꼼꼼하고 세심한 사람은 예민하고 잔소리가 많으며 통제 욕구가 강할 수 있다.
- 약속 시간을 잘 지키는 사람은 계획에 철저하고(계획대로 해야 하고) 다소 강박적일 수 있다.
- 정리정돈을 잘하는 사람은 주변이 깔끔하고 꼼꼼하지만 다소 강박적일 수 있다.
- 머리가 좋은 사람은 계산이 빨라서 이해타산적이고, 연인이나 가족 간에도 손해를 안 보려 하고, 주고받는 데(give and take)에 철저할 수 있다.
- 성취 욕구가 높고 성공 야망(권력, 돈, 인기 등에 대한 강한 갈망)이 큰 사람은 매력적으로 보이고 인내심도 강하지만, 자기 목적 달성을 위해서 때때로 주변을 희생시킬 수도 있다.
- 예쁘고 멋진 외모에 패션센스가 좋은 사람은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자존감이 낮을 사람일 수도 있다.
- 돈이 많은 사람은 오로지 물질적 조건으로 사람을 평가하고(연인도 예외가 아님), 세상의 모든 문제를 오직 돈으로 해결하려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차갑고 자기에게만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을 이상형으로 꼽는 경우도 있는데, 상대가 자신에게만 충실하고, 상대를 배타적으로 소유하기를 바라며, 바람피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해되지만,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다. 나에게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은 타인에게도 다정하고 따뜻하고, 나에게 냉정하고 매정한 사람은 타인에게도 냉정하고 매정하다. 만일 이런 이상형에 들어맞는, 인간관계에서 비일관적인 사람이 있다면, 내 앞에서는 가면을 쓰고 있을 확률이 높으니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아마도 그의 본모습은 타인들을 대할 때 나타나는 차가움과 무정함일 것이다.
스코틀랜드 속담에 ‘결혼 전에는 두 눈을 부릅뜨고 상대방의 단점을 보라. 그러나 결혼을 하고 난 다음에는 한 눈을 뜨고 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불행한 결혼은 반대로 결혼 전에는 한 눈만 떠서 상대방의 장점만을 보고, 결혼 뒤에는 두 눈을 부릅뜨고 상대방의 단점을 찾아서 내 입맛에 맞게 바꾸려는 데 혈안이 돼 있지 않나 싶다.
총각이었을 때 다른 이들이 결혼 생활을 하며 별것 아닌 일로 난리를 피우고 싸우고 질투하는 걸 지켜보며 그는 속으로 비웃곤 했다. 자신의 결혼 생활은 그렇지 않으리라고 확신했고 심지어 겉모습조차 다른 사람들 생활과는 판이하게 다르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기는커녕 그의 결혼 생활 역시 특별하지도 않았고, 전에 그처럼 경멸했던 사소한 일들로 가득했으며,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사소한 일들이 특별하고도 반박하기 어려운 중요성을 띠었다. 그 모든 사소한 일을 건사하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레빈은 알게 되었다.
_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2(윤새라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2011.12>, 423쪽 중에서
다정한 사람을 만날 때는 그 사람이 얼마큼의 애정(성관계 포함)과 돌봄을 필요로 하는지 알고, 상대가 원하는 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불만족스럽지는 않을 정도로 친밀감을 제공할 수 있는지, 평소 주변(부모, 형제, 친척 포함)을 잘 챙기는 사람과 결혼할 때는 내가 그 사람의 주변 사람까지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인지, 한결같고 안정적인 사람을 만날 때는 재미는 없더라도 상대의 변화에 무디고 고지식한 아날로그 감성을 수용할 수 있는지, 자신감 넘치고 나를 이끄는 사람을 만날 때는 그 사람의 권위적이고 지배적인 측면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자유분방한 사람을 사귈 때는 때로는 충동적이고 (내 입장에서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관습을 거부하는 면모까지 이해할 수 있는지, 세심하고 꼼꼼한 사람과 결혼할 때는 상대의 계획에 철두철미한 성격과 잔소리를 견딜 수 있는지 등 장점이라고 생각한 다른 측면을 이해하고 있어야 상대에 대한 오해가 줄고, 안정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지 않은가 싶다.
그렇지 않다면 다정한 면모가 좋아서 결혼했는데 다른 이성에게까지 다정해서 파국을 맞이하고, 평소에 주변을 잘 챙기는 포용적인 면모가 좋아서 결혼했는데 우유부단하게 주변에 퍼주느라 가정에 소홀하다고 생각해서 파경에 이르고, 리더십이 있어서 좋아했는데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면을 견딜 수 없어서 헤어지고, 자유로운 영혼이라서 좋아했는데 제멋대로 이기적으로 산다고 생각해서 이별하고, 부자라서 결혼했는데 세상 모든 것을 돈으로 재단하고 해결하려는 비인간적인 면모에 질려서 이혼하는 등 결혼의 이유는 얼마든지 이혼의 사유가 될 수 있다. 사람은 변하지 않았는데, 다만 우리의 상황과 관계, 마음이 달라졌을 뿐이다. 달리 말하면 지금은 단점으로 변한 상대의 면모는 상황과 서로 간의 친밀도가 달라진다면 얼마든지 다시 장점으로 변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세상에 영원한 관계는 없다. 변하는 관계가 있을 뿐. 소중한 관계에서의 변화가 되도록이면 같이 성숙하고 발전하는 긍정적인 방향이기를 바라면 욕심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