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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ul 22. 2024

‘우리집은 콩가루 집안입니다’ 정우 이야기

가짜 효자/효녀, 마마보이/마마걸 알아보는 법 ②

*이전 글: https://brunch.co.kr/@smilepearlll/404



정우의 이야기


정우는 어렸을 때부터 난봉꾼 아버지가 익숙했다. 방랑객 기질이 다분한 아버지가 일 년 중 집에서 머무는 날은 몇 주에서 몇 개월에 불과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아버지가 어머니와 결혼 뒤에 만난 여자만 해도 최소한 십 수 명 이상은 되지 않을까 짐작한다. 아버지는 좋게 보면 자유 영혼이지만 가족에게는 정해진 직업도 없고 경제적으로 무능하며 아내와 아이에게 무책임한 무능력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정우는 일찍이 자기 집안은 콩가루 집안이라고 잘 알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도 자기 집안을 콩가루 집안으로 바라보며, 어린 자기 자신을 불쌍하고 안타깝게, 또는 멀리 해야 할 이상한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은 왜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았을까. 아버지라는 존재는 대체 뭘 하는 사람일까. 이렇게 방치하고 무책임할 거면 아버지는 대체 왜 나를 낳았을까. 나는 대체 무엇일까. 이 세상은 무엇일까. 암울하고 우울한 세상에 나는 왜 태어났을까. 어머니는 아버지가 밉지도 않은가. 왜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을 하지 않을까.


정우는 어린 나이로는 도저히 이해불가한 남다른 집안 내력 때문에 생각이 많고 마음은 복잡한 성장기를 보냈다. 우울하고 수줍은 정우에게 그나마 의지처는 한결같이 자신을 사랑하고 따뜻하게 보듬는 어머니와 이모들(어머니의 자매들)의 존재였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집에 다시 오든 다시 나가든, 바람을 피우든 말든 상관도 없는지 언제나 자기 자리에서 정우 곁을 지키고 있었다. 당시에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는데, 아버지에게 남편과 아버지로의 역할 기대를 모조리 내려놓고 정우 곁을 지키는 것이 어머니가 자기 자신과 정우를 보호하고자 선택한 생존 전략이었다. 성인으로 성장한 정우는 무능한 아버지 대신 가정 경제까지 책임지느라 어머니가 얼마나 고생을 하며 자신을 키웠는지 잘 알기에 어머니가 안쓰럽고 안타까운 한편, 지혜로운 어머니께 늘 감사하고 존경했다.


정우는 일찍이 결혼과 사랑, 특히 결혼과 행복은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고, 실제로 많은 가정은 불행에 가깝거나, 불행하진 않더라도 딱히 행복하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특히, 이혼을 안 하고 결혼을 유지하고 있다고 해서 부부가 서로 사랑하거나 위하는 관계는 아니라고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한다는 논리는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최소한 사랑에 있어서 결혼은 아무것도 보장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정우는 당시에 동거하던 애인이 자신과의 결혼을 희망하자 이러한 결혼관을 솔직히 밝혔다. 정우도 몇 번의 연애 끝에 만난 현재의 애인에게 헌신했고, 보석처럼 빛나는 그에게 어쩌면 평생 헌신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과 헌신이 꼭 결혼의 형태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결혼에 부정적이라기보다는 사랑과 헌신의 유지에 있어서 결혼이라는 제도로의 속박은 별 의미가 없다는 믿음이었다.


애인도 이미 다 세세하게 알고 있는 자신의 콩가루 집안 내력도 상기시켰다. 특히, 자신은 아버지처럼 난봉꾼은 아니며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보낸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그 아버지에 그 자식이라고 언젠가 자신도 아버지처럼 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다고, 자신의 깊은 불안감과 두려움을 고백했다. 그럼에도, 만일 자신과 결혼한다면 자기 집안 특히, 아버지와 배우자를 분리하는 것, 부모님이 며느리를 대한다는 명목으로 그 어떤 강요도 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방어하고 막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는 약속은 반드시 지키리라고 다짐했다. 만일 자기 부모님이 당신에게 강요하는 상황이 반복되거나, 언젠가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이 끝났다고 판단하는 순간이 오면 그때가 바로 우리가 이혼하는 날일 것이라고도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나와 결혼하고 싶은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 자신도 그와 결혼을 하겠노라고 얘기했다.


두 사람은 결혼을 했고, 그 사이 아이도 생겼으며, 어엿한 10년 차 부부로서 아직까지 잘 살고 있다. 누구보다 가정에 불성실한 인생을 산 아버지가 시아버지의 권위를 내세워 아내에게 자주 연락하라는 둥, 집에 좀 들르라는 둥 가족으로서의 의무를 강요할 때면 정우는, ‘이 콩가루 집안에서 태어난 나 같은 사람과 결혼해준 것만도 감사할 일’이라며, ‘결혼 전 말씀드린 것처럼 이런 상황이 자꾸 반복되면 자기는 이혼할 수밖에 없다’라며 엄포를 놓고, 아버지와 자기 가정 사이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것으로 아내와의 결혼 전 약속을 잘 이행했다. 원래도 독립적이고 현명한 어머니는 며느리에게도 든든한 의지처가 돼 주며, 한결같이 정우 가정의 행복을 기원했다.


사람의 마음(사랑)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고 믿는 정우는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아내와 언제든 헤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더 소중히 여기고, 아내와 아이를 더욱 사랑하며 자기 가족에게 충실하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특히, 아내에게는 별스러운 자기 자신과 자기 부모를 받아들여줘 고맙다고 생각하며, 정우는 아버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며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이 시리즈는 다섯 개의 글로 구성했습니다.


1. 결혼을 생각한다면 꼭 물어야 할 ‘질문’

2. ‘우리집은 콩가루 집안입니다’ 정우 이야기 - 현재 글

3. 아버지의 외도 사실을 감추고 싶은 수호 이야기 - 다음 글

4. 정서적으로 독립한 사람, 아닌 사람 – 대화의 차이

5. 완벽해 보이는 모범생의 결혼생활이 불행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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