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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ul 23. 2024

정서적으로 독립한 사람, 아닌 사람 – 대화의 차이

가짜 효자/효녀, 마마보이/마마걸 알아보는 법 ④

수호와 정우는 아버지가 외도를 일삼아 불안정한 성장기를 보냈고, 부모님이 실제로 이혼을 했거나 이혼은 하지 않았지만 실질적인 부부관계는 파탄 난 가정에서 자랐다. 겉으로 보기에 비슷한 성장 과정을 거친 두 사람에게 애인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은 언제였는지’, ‘가장 혼란스럽고 우울한 시기는 언제였는지’, ‘성장 과정은 어땠는지’, ‘어떤 청소년 시절을 보냈는지’, ‘부모님과의 관계는 어떠한지’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이번에도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겠다.




# 수호의 대답 (수호의 이야기: https://brunch.co.kr/@smilepearlll/405)


- 너는 언제 가장 힘들었어?

: 10대 때 많이 힘들었지부모님이 자주 다투셨거든아버지는 술을 드시고 그럼 또 엄마와 싸우고. (나도

아버지에게 맞기도 자주 맞고엄마는 그럼 못 살겠다고 나를 붙들고 하소연을 하고나는 그걸 그냥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고아버지어머니 둘 다 싫었어방황도 많이 하고학교도 가기 싫고그냥 다 싫었어벗어나고 싶고 그랬지그나마 친구들이랑 PC방 가고 당구장 가서 노는 거 그게 해방구였어.

⇒ 수호는 가정에서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고 방임방치된 채 성장했다자신의 힘든 감정을 아무도 묻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 부모님이 이혼하셨을 때는 어땠어?

 : 힘들었지. 그리고 정신이 없었어. 너무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아버지 사업은 망해서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는데, 부모님은 이혼을 하시고…… 나는 진로도 생각해야 하고…… 정말 힘들었지. (울먹거림) 하지만 이젠 다 지난 일이니까. 괜찮아. 괜찮지 않으면 어쩌겠어.

 자신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고, ‘힘들었다’라는 말로 일축하며, 자세한 말하기를 꺼리고 회피한다. 하지만 울먹이는 것으로 부모의 이혼으로 받은 마음의 상처가 남아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애인은 수호에게 연민의 감정을 갖는다. 애인 또한 부모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왜 이혼하신 거야?

 : 방금 말했듯이 경제적인 문제가 결정적 계기였고, 결국은 두 분의 성격차이이지, 뭐.

⇒ 아버지의 외도 사실은 숨기고, 애매모호하게 적당히 둘러댄다. 아버지와 정서적으로 분화가 덜 돼 아버지의 부도덕한 행동을 애인이 알면 자신도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 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때?

 : 아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아버지 성격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잘 지내보려고 노력해. 예전 일은 지나간 거니까 그냥 덮어두고 살아가기로 했어. 어쨌든 나를 낳고 키워주신 분이니까. 이렇게 보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평범한 관계인 거 같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애증의 감정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신이 갖고 있는 아버지와 비슷한 면모를 부정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안 좋아하고 사이가 안 좋은 사람과는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것이 일반적인데, 말로 표현한 생각과 달리 실제 행동은 잘 지내려고 노력하는 모순에서 아버지를 향한 양가감정을 짐작할 수 있다. 과거의 상처를 해소하지 않고 내면의 갈등을 간직한 모호한 상태로 살아가는 모습이 모호한 감정과 상황 묘사로 나타난다.


- 너는 나와 왜 결혼하고 싶어?

 : 좋으니까. 너처럼 특별한 사람은 처음이니까. 결혼하고 싶을 정도로 좋아한 사람도 처음이고.

상대방에 대한 이상에 사로잡혀 있고, 뚜렷한 결혼관은 없는 셈이다. 한편, 수호처럼 결혼에 대한 이상과 환상이 있는 애인은 이 말에 감동해 수호와의 결혼을 결심한다.




# 정우의 대답 (정우의 이야기: https://brunch.co.kr/@smilepearlll/406/)


- 너는 언제 가장 힘들었어?

 : 어렸을 때부터 쭉 힘들었지. 이미 알고 있다시피 아버지라는 사람은 만날 밖으로 나돌고. 일도 안 하고 얼굴 보기도 힘들고. 한번은 몇 달 만에 집에 와서는 동생이라며 한 아이를 데려왔는데,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배다른 동생인 거야. 어머니가 차분한 편이신데 그때는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지. 큰 소리를 잘 내지 않는 어머니가 화가 많이 나셨어. 동생은 다시 자기 어머니에게 돌아갔고. 완전 콩가루 집안이 따로 없지. 아니, 다른 사람은 다 멀쩡한데 아버지만 아주 곱게 갈리고 갈린 콩가루였지. 의외로 이복동생이랑은 유대감이라고 해야 하나. 어머니는 다르지만 남들은 알지 못하는 공감대가 있어서인지 잘 지내고 있어.

가정환경이 이렇다 보니 우울하고, 어린 나이에도 생각이 많았어. 대체 우리집은 왜 이럴까. 아버지는 나를 왜 낳았을까. 아버지는 대체 왜 저럴까. 나는 누구일까. 엄마는 왜 아버지와 이혼을 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이 일찍 찾아왔지. 정답은 없는데 생각은 너무 많으니까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어머니는 왜 이혼을 안 하셨다고 생각해?

 : 그게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는데, 어렸을 때는 남들 시선도 있으니까 자식들 위해서 참고 버티신 건가 싶었거든.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이복동생 데려왔을 때 외에는 어머니는 늘 너무 차분하고 한결같으셨거든.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한 모든 기대를 일찌감치 내려놓으신 거 같아. ‘저 사람은 변할 사람이 아니다’ 이 진리를 일찍 깨우치신 거지. 그래서 아버지가 집에 오면 왔나 보다, 다시 가출을 하면 다시 갔구나, 이 사람은 원래 이런 사람이구나,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셨던 거 같아. 현명하신 거지. 나는 어머니가 거의 도인이나 다름없으시다고 생각하는데, 어머니는 결혼을 계속 유지하나, 이혼을 하나, 그것이 자신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신 거 같아. 어쩌면 남편은 없다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르겠어. 그도 그럴 것이 몇 달에 한 번씩 집에 오는 남편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몇 달에 한 번씩 보는 남편이라서 이혼을 안 하신 건지도 모르지. 숨 쉴 틈이 있잖아. 아버지가 만날 집에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간섭하고 어깃장 놓고 했으면 벌써 이혼하셨을지도. 어머니께서 차분하고 부드러워 보이시지만 의외로 남들 눈치 보거나 시선을 신경 쓰는 스타일은 또 아니시거든.


어머니와의 관계가 애틋하겠는데?

 : 아무렴, 얼굴도 잘 못 본 아버지와 같을 순 없지. 그런데 어머니께서 자식들에게 자기 신세 한탄을 하거나 아버지 흉을 보는 분은 아니거든. 아마도 아버지 몫까지 자식들에게 신경 쓰려고 하셨겠지만, 그럼에도 부모는 부모, 자식은 자식 그러니까 나는 나, 너는 너 이런 생각이 강한 분이셔서 애틋하면서도 거리감이 있는 분이지. 나는 어머니가 부드러워 보이지만 아주 강한 분이라고 생각해.


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때?

 : 좋을 리가 없지. 너무 어린 나이에 고통과 갈등, 상처와 번민을 안겨주신 분이잖아. 예전보다는 아버지를 이해하는 부분도 있지만, 여전히 이해불가인 분이기도 하고. 대체 저분은 평생은 왜 저렇게 사는가 싶기도 하고. 특히, 아들은 아버지를 닮는다던데 나도 아버지처럼 되는 건 아닌지 두려운 마음도 좀 있고.

그럼에도 아버지는 아버지, 나는 나라고 생각해. 한창 혈기왕성할 때는 아버지와 많이 다퉜는데, 이제는 서로 간에 어느 정도 선이 형성이 되어서 예전보다는 덜 하지. 그래도 워낙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분이라 지금도 갈등이 없을 수는 없어. 


너도 아버지처럼 바람을 피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 그러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 바람피우는 사람이 처음부터 나는 불륜을 할 관상이오~ 라고 써붙이고 다니진 않잖아. 살다 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알아. 하지만 아버지를 닮아서 바람을 피웠다면 이미 나도 골백번은 더 바람을 피웠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아직까지는 누군가를 만나면서 뭔가 충족이 안 되거나 혹은 재미로라도 일부러 다른 사람을 동시에 만난 적은 없거든. 자연스레 다른 사람이 좋아져서 헤어지고 바로 갈아탄 적은 더러 있어도. 그런데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거고, 젊을 땐 이 사람 저 사람 많이 만나봐야 하니까 이런 거까지 바람이라고 할 순 없지. 사람과 인생을 알아가는 과정인 거지. 이번에 너에게 정착하는 시기는 꽤 길지 않을까 싶고. 평생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건 모르는 거지만 어쨌든 지금은 너와 결혼을 하기로 결정을 한 거고.


일단 정우는 전체적으로 대답이 길다. 그렇다고 답변이 모호하거나 중언부언하지 않고 구체적이고 일관적이며 설득력이 있다. 그만큼 자기 자신이나 사람, 인생, 인간관계 등을 많이 고민하고 자신만의 답안지 즉, 가치관과 인생관이 정립돼 있다는 의미이다.

⇒ 부모를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을 기준으로 좋다, 싫다, 착하다, 나쁘다, 나를 힘들게 했다 처럼 이분법적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고, 아버지, 어머니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다방면에서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부모의 장점은 장점으로, 단점은 단점으로, 과장 또는 미화하거나 축소하지 않고 마치 제삼자가 말하듯이 있는 그대로 최대한 객관적으로 기술한다. 심지어 부모의 치부마저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 자신의 감정과 생각의 변화, 갈등 과정, 두려움과 불안감도 구체적으로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 전반적으로 생각이 명료하고, 부모로부터 분화돼 자신만의 가치관과 신념이 잘 형성돼 있고, 사고방식이 유연하다고 짐작할 수 있다.



이 시리즈는 다섯 개의 글로 구성했습니다.


1. 결혼을 생각한다면 꼭 물어야 할 ‘질문’ 

2. ‘우리집은 콩가루 집안입니다’ 정우 이야기

3. 아버지의 외도 사실을 감추고 싶은 수호 이야기 - 이전 글

4. 정서적으로 독립한 사람, 아닌 사람 – 대화의 차이 - 현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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