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글.
어제는 서른 몇 번째 내 생일이었다. 언제나 생일은 내게 어제와 다를 것 없는 똑같은 하루다.
10대 땐, 엄마가 일을 마치고 사다주신 양념 통닭 한 마리로 내 생일을 기억하였고
20대 땐, 생일에도 쉼 없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그땐 그게 더 편했다.
20대를 통틀어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생일이 있다면 호주에서 홀로 맞이한 28살의 7월 26일이었다.
호주에선 그 어떤 삶의 의무도, 해야 할 일도 딱히 없었기에..
시간이 지나,
서른 언저리에 마주한 생일의 모습도 비슷했다.
다만 생일이었음을 기억하게 하는 몇 가지 일들이 있었다.
엄마는 일을 그만두고 나서부터 해마다 미역국을 끓이셨다. 미역국 안 먹어도 된다고 수차례 말했지만, 일하느라 제대로 챙기지 못한 자식의 생일날이 엄만 그렇게 미안했던 것이다. (난 둘리치킨 한 마리에 그렇게 행복해했는데도 말이다.)
20대 땐 내가 더 바빠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의 의미를 잘 몰랐는데 서른이 넘어 엄마와 이야기할 시간이 좀 더 많이 지니 그제서야 느끼게 된다.
그런 마음을 알기에 어젠 엄마에게 조촐한 생일상을 대신 차려드렸다.
파인애플 볶음밥과 추어탕.
엄마가 좋아하는 추어탕은 밖에서 사왔지만 파인애플 볶음밥은 직접 장을 봐 (레시피를 봐가며) 더듬더듬 만들었다. 맛있게 드시는 엄마 덕분에 (함께 사는 동안) 몇 번은 더 해보려 한다. (사진을 남기지 못한게 아쉽다.)
(시키지도 않았건만) 카톡은 내 생일을 대신 광고해 주었다. 그래서인지 평소엔 (서로 바빠) 연락이 뜸했던 지인들도 생일을 축하한다며 카톡을 보내왔다. 바쁜 와중에 보내온 짧은 인사 한마디, 생각해서 보내준 케익쿠폰, 더운 날 이동하느라 고생한다며 보내준 커피 기프티콘은 고마움을 넘어 미안한 마음이 들게 했다.
왜냐면 쑥스럽기도 했고, 어색하다는 이유로 난 지인들의 생일을 잘 챙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게 생일은 별다른 의미가 아니였기에 누군가에게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날 챙겨주는 사람들을 보니 나 또한 그들의 생일을 잊지 말아야겠단 생각을 갖게 된다.
한 친구가 카톡을 보내왔다.
생일이냐....?
(이모티콘)
축하한다.ㅋ
생일임을 알고 톡을 보내온 친구의 인사는 고마웠지만, (내가 느끼기엔) 뭔가 가벼웠다.
밥 먹었냐? 어디냐? 뭐하냐? 자냐? 왜 그러냐?
'.... 냐?'라는 표현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친구에겐 축하는 고마운데 '.... 냐'라는 표현을 난 별로 안 좋아해라고 사실대로 말하였다. 그 친구는 알까? 이러한 사소한 것들이 쌓이면 서로 멀어진다는 것을.
전 직장 후배가 생일 축하한다며 문자를 주었다. 신경 써줘서 고맙다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톡을 하는데 그 후배가 이번 주 토요일 전 직장 동료들이 모두 모이는데 시간이 되냐고 물었다.
토요일은 선약이 있고 해서 미안하다며 다음에 보자고 했다. 그랬더니..
'저희와 만나실 생각은 있으신 겁니까?'
당황스러웠다.
이 친구의 말투가 원래 그런 것은 알고 있었지만, 조금도 변하지 않은 그 후배의 말투는 좀 거북했다.
위의 친구에게 하듯이 직설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나가지 못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해주었다.
앞으로 이 친구를 내가 기분 좋게 만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사람보다 공통의 취미를 가진 낯선 이와의 대화가 더 즐거울 때가 있다. 낯설다는 건 그만큼 서로에게 좀 더 조심하게 되고, 업무 스트레스, 연애, 결혼, 일상의 고민 등 조금 식상한 이야기보다 공통의 이야깃거리로 더 밀도 있고 즐거운 대화가 오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 알고 지낸지 오래되었다 해서 상대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알고 지낸 시간과 만난 횟수와 무관하게 더 가까워지는 친구도 있고, 반대로 멀어진 친구도 있다.
그렇게 한 해 한 해 떠난 사람과 남는 사람으로 관계 다이어트는 계속된다.
한 가지 중요한 건,
주변에 남은 사람들은 알고 지낸 시간과 만난 횟수와 무관하게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상대가 그렇게 날 대해준 만큼, 나 또한 상대를 배려하고 있는 걸까? 생각하게 된다.
누구나 1년에 한 번 생일을 맞이한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이지만 예전과 다르게 조금 특별하게 기억하고 싶었다.
이번 생일은 엄마에게 처음으로 차려드린 생일상과 26일 날 처음 쓴 이 일기.
이 두 가지로 올해의 생일이 기억된다.
내년 7월 26일에도 뭔가 소소한 특별함으로 기억되는 하루를 만들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