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결혼 축하해.
한 아파트에서 30년을 살았다. 1987년 아파트가 지어질 당시 들어와 지금껏 이곳에서 계속 살다보니 30년이란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우리가 6층에 보금자리를 만들 때, 3층에 이사를 온 가정이 있었다. 그 가정에도 나와 똑같은 나이의 갓난아이가 있었다. 그렇게 공감대가 형성된 두 가정은 금새 이웃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 가정도 30년간 이사를 가지 않았다. 한 아파트에 30년간 같이 살며 나이가 같았던 두 갓난아기는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며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12년 동안 같은 반이 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두 사람이지만 놀 때도, 공부할 때도 늘 함께 했다.
고등학교까지 이어진 인연은 대학교 진학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다른 대학에 다닌 두 사람이지만 스무 살 청년이 된 후에도 무슨 일이 있거나 즐거운 일이 있을 때마다 늘 함께 했다.
학점 고민도.. 연애 고민도.. 아르바이트도.. 가족 이야기도..
두 친구 사이에 비밀이란 없었다.
같은 아파트에 산다는 이유로 야심한 밤 함께 운동을 할 수도 있었고, 집 앞 편의점에서 함께 맥주 한 잔을 할 수도 있었다.
많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이야기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친구가 있다는 건 어쩌면 내게 생각지도 못한 축복 중 하나였다.
그런 그 친구가 결혼을 한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돈을 벌어야 했기에 동아리 활동과 MT와 같은 것들을 즐길 시간은 내게 주어지지 않았다. 장학금을 받기 위한 학점 커트라인인 3.5를 유지하기에도 내 하루는 너무나 벅찼다.
그렇게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내게 장학금을 주던 재단에서 농촌봉사활동에 참여하지 않으면 장학금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문자에 겁을 먹어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제쳐두고 8박 9일간의 봉사활동에 참가했다. 다양한 학교, 학과의 친구들과 9일간 함께 하며 우린 금세 친구가 되었다. 남중, 남고를 나온 내가 여자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게 해 준 것은 이 모임의 역할이 컸다. 그렇게 20대를 함께 해 온 이 친구들과도 어느덧 알고 지낸 지 13년이 지났다.
그중 두 친구와는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 성향과 생각이 비슷하기도 했고, 서로의 고민을 잘 들어주기도 했었다. 두 친구 중 한 친구는 이미 결혼을 했고,
이제 남은 한 친구가 결혼을 한다.
눈치챘겠지만 두 사람은 내 소개로 만나 다가오는 5월 결혼을 한다.
우연처럼 이어진 만남이었다. 두 사람 모두 지난 사랑을 힘겹게 떠나보내고 한 동안 홀로 지내고 있었기에.. 성격이나 하는 일이 비슷하여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서로를 소개시켜 주었다.
두 사람 모두 강력히 소개팅을 원하진 않았기에.. 첫 만남 이후 각자의 길을 갈 줄 알았다.
그러던 두 사람은 계속 만남을 이어갔고, 만난 지 1년여 만에 함께 살아갈 것을 약속했다.
지난주 두 사람은 내게 청첩장과 소개에 대한 고마움을 봉투에 담아 건네며 결혼식 사회를 부탁했다.
네가 맺어준 인연, 네가 끝까지 책임지라며...
두 사람이 결혼을 한다고 처음 내게 말했을 때, 참 기뻤다. 내가 맺어준 인연이 평생을 함께 한다고 하니 그것이 신기해서였는지.. 가장 믿고 아끼는 두 친구가 이제 하나의 가정을 이룬다 해서였는지.. 그냥 행복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모습이 좋았는지.. 무엇 때문에 기뻤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참 기뻤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두 사람의 결혼식이 다가오니 마음 한켠이 (아주) 조금은 헛헛해졌다.
이 헛헛함은 7년을 연애한 나보다 1년 연애 후 결혼을 하는 친구에 대한 부러움일 수도 있고,
가장 친했던 두 사람은 이제 하나가 되지만, 그만큼 난 두 사람과 멀어지는 듯한 느낌 때문일 수도 있다.
특히 30년을 함께 보내온 친구는 내게 친구 이상의 버팀목이 되어 준 친구였다.
30대가 된 후 서로 일이 바빠 자주 연락하진 못하지만 언제나 무슨 일이 있을때마다 여자친구 다음으로 연락하던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결혼을 한다고 하니 나보다 조금은 더 어른이 되어가는 그 친구가 부러워서였는지도 잘 모르겠다.
두 사람은 내게 말한다.
'너도 빨리 J랑 결혼해라.. 어차피 할 거면 미뤄봤자 더 나아질 것도 없어.'
우리도 모르는 건 아니다. 이런저런 우리의 상황을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친구들도 쉽지 않은 우리의 앞길을 걱정해주곤 한다.
두 사람이 만나 결혼을 하여 한 가정을 이루기까지 무수히 많은 고비와 선택지 앞에 놓인다. 결혼이란 앞으로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해 한 걸음 더 내딛는 것이라 우린 생각한다.
그 한 걸음을 내딛기까지 우린 많은 생각들을 해야 하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아주 흔한 옛말이지만 사랑만으로 이뤄질 수 없는 것이 결혼이라는 그 말이 막상 현실로 내 눈앞에 나타나니 더없이 실감 나는 건 비단 나뿐일까.
주변을 둘러보니 결혼은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강하게 추진할 때 성사된다는 걸 느꼈다. 둘 사이가 지지부진한 관계에 빠져있다면 어느 한쪽이 새로운 단계로 이끌어야 한다.
우린 누구나 아픔이 있고 상처가 있고 불안정하다. 서로의 아픔이 너무 커서 상대를 보듬어 줄 여유가 없다면, 두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게 오히려 더 현명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은 아픔들을 서로 보듬어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든 순간... 지체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오랜 시간 J와 연애를 하며 배운 한 가지가 아닌가 싶다.
마음이 조금은 헛헛해지긴 했지만 두 친구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내가 부러워 할 만큼 정말 잘 살아주길..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