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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Nov 16. 2020

해치야 미안해

자동차 보상 종결 안내 문자가 왔다. 

'뭐지? 1년 전의 일이 이제야 종결된 건가?'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던 스물여덟, 모토로라 휴대폰이 대세였던 그때 엄마가 물으셨다. “휴대폰을 살래~ 자동차를 살래?” 잠시 생각의 시간을 보내고, 아무래도 금액이 큰 것을 사는 것이 남는 장사라고 생각 한 나는, 자동차를 사기로 했다. 1997년 7월, 노란색 프레임에 은색 별을 잔뜩 붙인 자전거를 타고, 집 근처 자동차 전시장으로 갔다. 당번이었던 영업사원은 대수롭지 않게 나를 맞이했고, 그 자리에서 계약을 하자 자전거를 타고 온 손님은 내가 처음이라며, 나와의 계약 성사가 어쩌면 의외였다는 뉘앙스였다. 


 그렇게 만난 세피아 레오는 무사고로 13년을 탔다. 행동반경이 크지 않아 5만 킬로미터에도 못 미치는, 대학 선배의 말을 빌리자면 차를 고문하는 거라고 했다. 


 결혼 후 아이가 생기면서 차를 바꾸기로 했다. 타던 차는, 13년이라는 기간만 빼면 큰 문제가 없었기에 폐차장으로 보내기 아까워 70만 원에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렸다. 인수한 사람은 미터기를 조작한 것이 아니냐며, 올려놓은 사진을 여러 차례 봤다고 했다. 13년이나 된 차가 어떻게 5만 킬로미터도 안 될 수 있는지 의심스러웠다나? 직접 보더니 별다른 말없이 거래는 성사되어 나의 첫 번째 차와 이별했다.



2010년12월24일에 인수한 차는 성탄선물이 되었다.


기억하니? 우리가 처음 만난 그때를.......

1997년 7월에 만난 세피아 레오를 보내며, 무사고로 지낸 13년이 부적처럼 느껴져 같은 회사의 자동차를 선택하기로 했어. 익숙한 것이 편하기에 이전의 자동차와 비슷한 크기, 비슷한 스타일의 너를 선택했지. 그렇게 너와의 인연은 2010년 12월의 끝부터 시작되었어. 자동차는 교통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난, 안전하고 운전하기 편하면 그뿐. 잘 관리하는 주인도 못 되어 자동차는 교통수단 외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어. 하지만 너는 특별했지, 그건 너에게 붙여진 ‘이름’ 때문이 아닐까 해.     

   

 해치백 스타일의 자동차에게 아이는 ‘해치’라는 이름을 붙였다. 단순하게 붙인 이름이지만 시시때때로 부르는 이름 해치. 자고 난 다음날, 함께 여행을 하는 날, 자동차 검사를 다녀온 날, 짐꾼 노릇을 톡톡히 한 날에도 아이는 어김없이 말을 걸었다. "우리 해치 잘해쪄~ 우리 해치 괜차나?" 서툰 발음에 혀 짧은 소리를 냈던 3살 무렵부터 말을 걸었으니, 이름은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했다. 이제는 거의 가족 수준이라고 할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님의 ‘꽃’ 중에서 -

 

 한동안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시시때때로 찾아보던 자동차가 있었다. 이런 나의 행동을 포착한 아이는, 해치는 어쩌고 다른 차를 보냐고 물었다. “오래전부터 타고 싶었던 차인데 너무 타고 싶어서.......”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는 말끝을 흐렸다. 우리에겐 해치가 있으니 자동차를 절대로 바꾸면 안 된다고 했다. 이런 아이 덕분에 해치에 대한 생각이 더 커진 것인지, 나 또한 종종 말을 걸게 된다. 


 애지중지 쓸고 닦는 성격이 아니라 반짝반짝 빛나지는 않지만, 배송비를 아끼겠다고 원목을 싣고 오느라 생긴 상처에 마음이 쓰여, 손가락으로 상처를 문질러 주며 말을 건넨다. "우리 해치 애썼어~" 


 이런 우리의 해치에게 사고가 생겼다. 2019년 11월 27일 아침, 아이 등교를 위해 이동 중이었다. 양보할 생각 없이 늘어진 차량 사이로 들어가야 했다. 때를 기다리며 멈춰있는 해치 뒷좌석에 앉아있던 난, 멀리 보이는 차를 확인하고 “좌회전! “을 외쳤다. 등교시간이 임박했기에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나의 외침에 슬그머니 좌회전을 하는 남편 앞에 사람이 보였다. 난 다시 한번 외쳐야만 했다. ”사람! “ 


 그때 남편은 앞이 아닌 뒤를 보고 있었다. 좌회전을 하며 멀리 오는 차를 확인하기 위해 뒤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사고가 나려니 그렇게.......,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차에서 내렸다. 편도 1차선 도로에서 좌회전하는 그곳에서의 속도는 시속 10km 미만. 넘어짐도 없이  허벅지 부분을 부딪친 남자는 병원 가자는 말에 민망하다는 듯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몇 번의 제안에도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하여 일단 직장까지 바래다주었다. 반드시 병원에 다녀올 것을 권했고, 연락 달라는 말을 남겼다. 


 점심시간 즈음에서야 피해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상태를 물으니 살짝 삔 정도라며 괜찮단다. '휴우~' 그제야 큰 숨이 터져 나오며 편안 해 질 찰나, 사고 접수를 했냐고 묻는다. 사! 고! 접! 수? 처음 겪는 일이라 일의 순서를 몰랐던 우리는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렸지 그 어떤 제스처도 취하지 않았다. 사고가 나면 일단 사고 접수부터 해야 한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 우린, 부리나케 보험사에 전화를 걸었고, 보험사의 친절한 응대에 더해 살짝 삔 정도의 경미한 사고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아이 하교를 위해 운전석에 앉았다. 하지만 여느 때처럼 바로 시동을 걸 수 없었다. 내가 해치라면....... 사람의 허벅지와 부딪히던 그 순간에 생각이 머물며 해치에게 미안했다. "해치야 미안해~ 우리의 부주의로 격지 않아도 될 일을 겪게 해서 정말 미안해." 그렇게 깊은 사과를 한 뒤에야 시동을 걸었다. 


 언제 어디서든 사고는 날 수 있고, 누구나 피해자도 가해자도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며 ‘조심’은 늘 곁에 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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