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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Oct 30. 2020

사람 책이 되었다

인생은 알 수 없는 것




지역의 도서관 사서에게 연락이 왔다. 도서관에서 행사를 하는데 강연을 해 달라는 것이다. 친분이 있는데다가 내가 좋아하는 사서라 바로 거절하기도 어려워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노라니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할게요~!” 대답을 하고 말았다. 이 한 마디에 고맙다는 말을 얼마나 들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후론 걱정이 물밀 듯 밀려왔다. ‘어떤 이야기를 하지?, 별것 아닌 나의 이야기가 궁금한 분이 계실까?, 나의 이야기를 들으러 과연 오시기는 할까?, 신청자가 너무 적으면 어쩌지?, 괜히 나를 섭외해서 곤혹스럽진 않을까?“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칠 줄 몰랐다. 


강연 일정이 다가올수록 명치끝이 단단해져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었다. 서점에 홍보물을 붙이러 온 도서관 사서에게 신청 인원이 있느냐 물으니 4명이란다. 내 표정을 읽은 사서는 아직은 남은 날짜도 있고 신청하지 않은 사람들도 더러 오니 걱정 할 필요가 없다고 나를 안심시킨다. 나를 섭외했다는 이유로 괜한 민폐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더니 도리질을 하며 걱정하지 말라고 다시 한 번 나를 안심시킨다. 그때야 비로소 명치끝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수줍음이 많았던 유년시절을 보내고 즐겁기만 했던 대학생활에서도 싫었던 일이 있었으니 그건 다름 아닌 나의 작업 과정과 결과를 설명하는 시간이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이야기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던 나는 직장생활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났는데 직급이 올라가면서 외부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할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기획서 까지는 작성 할테니 프리젠테이션은 다른 사람이 하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 내가 도서관 소극장에서 리빙 라이브러리로 선정되어 강연을 하게 된 것이다.   

   

 ’리빙 라이브러리‘ 는 2000년 덴마크에서 열린 뮤직 페스티벌에서 덴마크 출신의 사회운동가 로니 에버겔이 선보인 이후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국회도서관이 ’휴먼 라이브러리‘ 행사를 개최하면서 알려졌는데 관련 지식을 가진 사람이 독자(참여자)와 일대일로 만나 관련 정보를 전해주는 것으로 독자(참여자)들이 빌리는 것이 책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방향으로 진행된 것이다. 책이 된 사람(Human Book)은 독자(참여자)와 함께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게 되는데 이는 ’소통의‘ 한 방법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흔히 “내 인생을 책으로 쓰면 책 몇 권은 나올 거야~” 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특별할 것 없어보여도 저마다의 이야기가 담긴 보통 사람들의 삶은 누구나 한권의 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리빙 라이브러리의 취지다. 살아온 삶의 모습이 담겨진 살아있는 책이라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행사 ’리빙 라이브러리‘는 ”사람 책, 한미서점의 김시연입니다.”로 시작되었다. 


서점에서 다양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우리의 공간을 벗어난 강의는 나를 떨게 만들기에 첫마디를 내뱉는 것이 중요했다.  ’앗!! 떨리지 않았다. 됐다.‘

떨리면 시선을 한 사람에게 고정하고 하라는 남편의 조언이 있었지만 두루두루 시선을 옮기며 질문도 하는 약간의 여유로움도 던졌다. 결코 많은 인원이라고 할 수 없었지만 신청자보다는 훨씬(?) 많아 명치끝에 걸린 단단한 덩어리가 풀어지면서 강연을 마칠 수 있었다. 나란 사람이 대중 앞에서 이야기 할 일이 생길 거라고는 감히 생각도 못했었다.     

 

오래 전 섬진강과 한강의 발원지부터 걷기 시작하는 강 따라 도보여행을 한 시간들이 있었다. 그때 인솔하신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치열하게 살 필요가 있다고....... 글쎄다. 난 그때나 지금이나 치열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 그저 내 보폭대로 무리하지 않으며 피어있는 꽃도 돌아보고, 끼룩끼룩 소리를 내며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하는 기러기 떼에게 따뜻한 인사를 잊지 않는 시간을 살고 싶을 뿐이다. 


어느 날 아침 얼굴 한쪽이 마비가 되는 경험도 하였다. 그 후로 내일의 약속을 한다는 것이 부질없게도 느껴져 우울한 날도 많았다. 법정스님의 법문집을 읽으며 마음을 많이 다스렸고 불안한 먼 미래를 걱정하는 대신 오늘을 즐겁게 사는 것을 우선으로 삼게 되었다. 정말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다. 다만 내가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내 삶의 이야기가 펼쳐지길 바랄뿐이다. 물론 당신도.



* 2019년10월, 지역의 도서관에서 의 리빙 라이브러리.

   (벌써 1년 전의 일입니다. 올해는 많은 것들이 취소되었는데 그래도 어김없이 가을은 깊어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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