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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Nov 18. 2020

세탁기가 고장 났다

세탁이 다 되었다고 부저음이 들린다.

삐~삐~삐~삐~삐~~~

뚜껑을 열었다. 

세탁기 벽 쪽에 붙어 있어야 할 녀석들이 바닥에 늘어져있다. 축축한 게 느껴진다. '엇! 내가 잘못 들었나? 전원이 꺼진 걸로 봐서 끝난 게 확실한데.......'


가끔 세탁기의 수평이 틀어지면 탈수가 잘 되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다시 한 번 탈수 기능을 선택했기에 이번에도 주저 없이 탈수 버튼을 눌러 다시 설정했다. 탈수 7분. 윙~~~~....... 

다시 부저음이 들린다. 삐~삐~삐~삐~삐~~~

 

어째 꽉 짜진 것 같지 않다. 헐렁한 느낌의 빨래를 건조대에 널었다. 그리고 다다음날 세탁. 부저음 소리에 뚜껑을 여니 바닥에 늘어져 있는 녀석들. 아무래도 세탁기가 의심스러웠다. '혹시 세탁기 너! 고장 난 거니?' 갑자기 내 마음이 축축해진다. 올해 참, 여러 가지 한다. 하다 하다 세탁기까지 고장 나다니..... 하긴 12년이 넘었으니 교체할 때가 되긴 했다.(냉장고 교체는 이미 몇 해 전, 가전제품은 동시에 고장 난 다는데 그나마 나은 건가?)

  

"자기야~! 아무래도 세탁기가 고장 난 것 같아."

AS 불러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왔지만 노노~! 그 비용이 더 클 거라며 나는 세탁기를 검색 하기 시작했다. 사용하던 세탁기가 12킬로짜리였고 불편함이 없었기에 용량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12킬로 이상이면 오~ 케이.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에너지 효율과 디자인이다. 제품을 검색하다 보니 1등급(세탁기의 경우 2등급도 대상이 된단다) 가전제품에 대한 부가세 환급 지원제도가 있었는데 8월인가에  예산 소진으로 끝났다는 기사가 보였다. 아... 아쉽다.

 

어차피 올해 내 편은 없으니 아쉬움은 빨리 던져버리고 열심히 검색을 이어갔다. 모델 선택 완료. 최저가만 찾으면 된다. 아.. 그런데 11절이라는 게 있단다. 그러면 조금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다나?  그럼 일주일이나 더 버텨야 하는데? 일주일이라... 아무렴~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사야지~  


소량씩 매일매일 세탁기를 돌리며 드디어 11절. 자정 지나면 쿠폰이 발행된단다. 자다 말고 일어나 쿠폰을 다운로드하고 결제를 하려는데 쿠폰 적용이 안된다. 흠... 이건 뭐지? 가전제품에는 적용할 수 없다는 안내문구가 그제야 보였다. 하... 올해 내 편은 진정 없는 것인가? 고작 1만 원 할인받겠다고 잠까지 설쳤는데 그조차도 적용이 안되다니... 


11월 11일 아침, 출근하는 차를 창문밖으로 지켜보며 함장을 하고 설거지를 했다. 컵이 깨졌다. 불길한 기분을 액땜한 거라는 말로 덮고 커피한 잔을 마시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출근하다가 주차되어있는 차가 문이 열린 것 모르고 그만 긁었단다. 강한 햇빛으로 열린 문이 보이지 않았는데 사이드 미러가 닿아 3cm 정도 남의 차를 긁었다는 것이다. 보험사를 통하는 것보다 달라는 대로 주는 것이 나을 것 같아 20만 원을 지불.


흠... 1만 원 할인받겠다고 애써봐야 하나도 소용없지 뭔가. 너무 속상했다. 애꿎은 2020년에게 화가 났고 부질없이 밤잠까지 설쳤던 내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사람 안 다쳤으니 다행이라 생각해."라고 말했지만,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조심 좀 하지~!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전화를 끊었다. 


얼마 후,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알아, 사람 안 다쳤으니 다행이라는 거. 큰 사고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거. 그렇게 생각하자! 그래도 너무 속상해..."


그날 난 남편에게 어떤 설명도 없이 링크를 하나 보냈다.


배송 기다리는 중


서점에서도 lp를 듣고 싶다고 말했을 때 관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속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는데, 저렴한 값 탓에 품질이 걱정되긴 하지만(그렇다고 고가의 제품을 구매할 여력이 안되니 이것으로라도 기분 전환을 해야겠다) 뭐라도 사야 했다. 그래야 환기가 될 것 같았다. 

다행히 들을만하다는 지인의 생생한 후기가 있었으니 설렘까지 장착하며 턴테이블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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