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자 그리고 점자
드디어 책이 나왔다. 2020년 12월에 나왔어야 할 책.
서점에서 진행하는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의 과정을 그러모아, 해마다 책을 만들고 있다. 작년에는 코로나19로 진행에 어려움이 많았으나 다행히 공간의 변화를 준 덕분에 계획했던 것들을 실행할 수 있었다. 가족을 대상으로 했던 프로그램은 개인의 문집으로 완성했고 시각장애인식개선 프로그램이었던 <손끝으로 여는 세상 - 詩로 나눠요>는 '과정 기록'과 '시'를 별개의 책으로 만들기로 했다. 알아보니 윤동주 시인의 시집이 점자로 출간된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과정의 기록에는 시각장애 인식개선에 대한 내용과 참여한 사람들의 후기 등을 넣었고, 시집에는 시와 손자수로 넣은 점자 사진만 넣어 시집이 무겁게 느껴지지 않도록 기획했다.
2019년에도 점자책을 만들었기에 과정은 이해하고 있었지만 알맞은 제작처를 다시 찾아야 했다. 2019년에 제작했던 곳에서 단순한 작업이 아님을 경험했던 터라 더 이상은 할 수 없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점자책 제작 과정은 묵자 책 제작 과정과 다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점자책 제작처에서는 기존의 방식 외에는 해본 일이 없었다. 그저 하얀색 종이 위에 점자만 출력.) 천공 점자 대신 좀 더 시각적인 요소를 넣어 점자 인쇄를 해 보겠다고 업체를 알아봤지만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거기에는 그 예산으로는..이라는 단서가 붙었다.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업체에서 예상 밖의 답변을 들었고 정해진 예산 안에서 진행해야 했기에 또다시 제작처를 찾아보았다. 어렵게 찾은 그곳에서도 기획했던 대로는 할 수 없었다. 한 페이지당 제작비 4만 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권당 가격도 놀랄만한데 페이지당 가격이 4만 원이라니... 결국 예산에 맞춰 몇 번의 수정을 해야만 했다.
결국 해를 넘겼고 1월에는 책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문제 발생.
종이 때문이라고 했다. 종이를 바꿔도 되겠냐고.....
서점에서 만드는 책은 재생지를 사용한다. 그리고 콩기름으로 인쇄를 한다. 헌책방이라는 것이 자원의 순환되는 곳인데 이왕이면 벌목하는 나무의 수를 줄이고 싶었다. 하지만 원하는 방법으로는 제작할 수 없어 어렵게 찾은 곳은 디지털 인쇄(그동안에는 옵셋 인쇄로 진행했다)를 하면서 점자 제작이 가능한 곳이었다. 종이도 사용하던 종이만 사용해봤다고 했다. 콩기름 인쇄는 포기.(어떤 사장님은 내게 그러셨다. 그냥 콩기름 인쇄했다고 그래요~ 하지만 그럴 순 없다.) 그럼 종이라도 재생지를 사용할 수 없을까? 일단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하기에 샘플로 구매 해 테스트를 했다.
몇 가지 샘플 확인 후 종이를 결정했다. 표지는 보드로 진행해야 하기에 실크인쇄만 가능했다. 제작처와 이런 모든 과정의 가능 여부를 먼저 조율한 후 시작. 그런데 표지를 바꿔야겠다는 연락이 뒤늦게 왔다. 연락을 참 안 주신다. 먼저 연락을 해야 상황을 알 수 있어서 많이 답답했던 시간. 360g의 크라프트 보드 위에 하얀색으로 실크인쇄를 하기로 했는데 종이가 두꺼워 제본의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변경이 불가피했다. 수많은 생각을 하면서 빠른 결정이 필요했다. 할 수 없이 240g의 재생지로 변경. 하... 240g은 얇은데... 어쩔 수 없었다. 내지는 맘에 들었지만 자수 인쇄한 부분에서 디지털 인쇄의 한계가 드러났다. 그것도 어쩔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많은 고비를 넘겨 어젯밤(제작 3달 만에 받았으니 제작처의 어려움도 많았으리라 짐작한다)에 받은 시집으로 제작비만 권당 4만 원이 넘는다. 세상에 단 100권뿐인 윤동주 시인의 시집. 혹시라도 완판 된다면? 그래도 더 이상 만들지는 못한다. 앗! 국립중앙도서관에 오늘 2권 납본했으니 98권에 참여자들의 몫도 있으니 정말 완판을 목표로 삼아볼까? 욕심을 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