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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Jun 21. 2020

할머니 백김치 해 주세요

요리는 엄마에게 힘이다


서점과 연결되어있는 창고 공사를 시작한 지 나흘째. 안전문제로 시작하는 공사라 업체에 의뢰를 했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따로 있기에 힘을 써야 하는 일들이 생겼다. 오늘은 주말이라 공사도 쉬는 날. 남편과 함께 먼지 청소를 하고 기진맥진 집으로 들어와 시원하게 샤워 후 앉으니 시간은 벌써 저녁 식사를 차려야 할 때가 되었다.


다 팽개치고 딱! 자고 싶었다. 저녁은 먹지 않아도 좋았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따님이 하나 있으시다. 그것도 쑥쑥 자라야 할 초등학교 5학년 이라 스킵할 수 없었다. 배고프냐 물으니, '엄마가 물어보니까 더 배고프다' 한다. 결국 난 피곤한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 장조림을 하기로 했다. 엄마는 이런것이다.



밥과 장조림과 김 - 내 딸의 단촐한 저녁식사 상차림




내가 만들어 준 장조림 반찬에 엄지 척!



갑자기 어릴 적의 일이 떠올랐다. 어느 추운 겨울날 엄마랑 동생이랑 셋이서 대중목욕탕을 다녀온 후로 기억한다. 따뜻한 방바닥에 나른한 몸이 그대로 해제되면서 스르르 잠이 들락 말락 하는데, 부엌에서 식사 준비하는 소리가 들렸다. '쏴~ 닥닥닥닥닥' 그리고 보글보글보글 맛있는 냄새와 함께 "얘들아 밥 먹자~!"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대로 자고 싶었지만 '엄마도 피곤하실 텐데 식사 준비를 하셨구나' 라는 생각에 닿자 더 이상 엎드려있을 수만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도 나처럼 그냥 한 끼쯤 건너뛰고 잠을 청하고 싶지 않으셨을까? 자식들 때문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씻고 다듬어 맛있는 식사를 준비하셨을 텐데 그것은 전적으로 엄마의 일인 것 마냥, 엄마는 당연한 것 마냥 긴 시간을 보내왔다. (이런 것들이 너무 당연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서점 먼지청소로 늦은 점심을 먹고 식당을 나서는데 동생과 함께 사는 친정엄마께 전화가 왔다. "시연아~ 엄마가 뭐 잘못했나 들어봐! 네 동생이 개수대에 컵이 10개나 있다며 이렇게는 못살겠다고 하더니 엄마가 나가던지 자기가 나가던지 해야겠다"며 큰소리를 내었다는 것이다. 엄마는 한번 사용한 컵을 개수대에 넣어두시며 하루에 컵을 10개 정도 사용하시는데, 오늘은 엄마도 동생도 피곤했는지 사용하신 컵 설거지를 하나도 해 놓지 않으셨을뿐더러, 동생은 그것을 설거지하는 대신 엄마께 화를 낸 모양이다. 엄마가 오늘은 좀 참으시라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동생은 결혼하기 전까지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혼한 지 이제 3년, 그동안엔 엄마의 보살핌 속에 살다가 결혼 후 180도 달라져 깔끔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70년을 엄마의 방식대로 살다가 막내딸이 결혼하면서부터 다 늦게 잔소리를 듣고 계신다며 큰 스트레스를 받고 계셨다. 최근 몸이 아프신 이후로 살림을 동생이 거의 도맡아 하면서 이런 일들이 잦아지니, 큰소리가 나기도 하고 서운함을 넘어 서글프단 단어를 유독 많이 하셨다.


요리하는 것을 싫어하는 난 누군가 살림을 대신해 준다면 만세를 부르며 좋아하겠지만, 우리의 엄마세대는 살림을 내어준다는 것 자체가 당신의 건강과도 직결된 일이라 여간 속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특히나 엄마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셨기에 내가 내 딸에게 해주는 것처럼 당신의 딸을 키우지 않으셨다. 한 번 5인분의 밥을 해서 냉동실에 넣어두고 꺼내 먹는 나와는 달리 끼니마다 갓 지은 밥을 해 주셨고, 국이나 찌개 없이는 밥을 안 먹는 나 때문에 항상 국이나 찌개는 기본에 각종 반찬을 그릇에 조금씩 담아 예쁜 상차림을 해 주셨다.


소풍이나 운동회 때는 어떠했나. 한식, 양식, 중식, 일식 조리사 자격증을 갖고 계신 엄마 덕에 김밥은 나뭇잎으로 변신해 있었고, 과일은 토끼가 되어 나의 소풍 도시락은 자랑거리였다. 동생과 나는 그렇게 자랐다. 수십 년 동안 엄마가 해 오신 상차림이, 설거지가, 엄마니까 당연하다고 여겼던 일들이, 아무리 내 자식 입에 들어가는 거라도 힘들지 않고 기쁘기만 하셨을까?


피곤한 몸을 뒤로 한 채 꽈리고추와, 버섯, 메추리알, 소고기를 넣어 장조림을 하면서 엄마의 지나간 시간을 반추해보았다. '내일은 동생에게 이야기를 해야겠다' 생각하며 아이에게 늦은 저녁 상차림을 해 줬는데 엄지 척! 하면서 맛있게 먹다 말고 일어나더니 할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 저 백김치 먹고 싶어요.~ 백김치 해 주세요.~~~ ”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하라는 할머니의 말씀이 생각났다는 아이 덕분에, 엄마는 무척이나 행복해하셨다. 당신이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필요로 하는 곳이 있어, 살아가는 이유까지 들먹이신 후에야 흥분을 가라앉히시며 전화를 끊었다.


출처 : 종가집김치


엄마에게 있어 요리는 힘이었다. 비록 짜게 되더라도, 달게 되더라도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 "맛있게 잘 먹었어요!"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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