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세계에 놓인 불안정한 자아
"기우"라는 말을 생각해 본다.
기나라의 한 사람이 하늘이 무너질까 땅이 꺼질까 걱정을 했다는 이야기. 이야기는 단순히 사실만을 전달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말라"는 의미를 내포하며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
현실세계는 어떠한가? 세계와 접점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외부 세계를 한 방향으로 깔끔하게 재단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직접 경험하지 않더라도 뉴스와 미디어를 통해 한 개인이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해결할 수도 없는 소식들을 매일 접하고 있다. 실제로 도심 한복판에 싱크홀이 생겨 땅이 무너지기도 하고, 코로나19와 같은 그전에 없던 전염병 퍼지기도 한다. 코로나19는 마스크를 씌우고 서로가 서로를 조심하고 경계하게 만들었다. 일상의 풍경을 갑자기 바꿔놓았다.
"이불 밖은 위험해."
이 말은 불완전한 세계에 놓인 한없이 작고 연약한 한 개인의 불안을 떠올리게 한다. 각자가 느끼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는 매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바깥 세계로 묵묵히 걸어 나가야 한다. 인간의 뇌는 당장 눈앞에서 경험한 위험뿐만 아니라 언젠가 닥칠지 모르는 위험 요소에도 불안을 느끼게끔 진화해 왔나 보다. 현대 사회에서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건 세계 곳곳의 불안 요소들이 빠르게 전파되고 실제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완전한 세계에 놓인 자아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스스로에게 내린 오늘의 처방은 그림자 너머를 바라보고 손을 내미는 것이다. 그림자를 외면하자는 것이 아니다. 세계의 그림자는 항상 어디엔가 드리워져 있다. 개인의 그림자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온 세상이 그림자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림자 너머를 바라보고 내 손이 닿는 작은 요소들에 집중하고 그것에 따스한 온기를 전하고 싶다.
작은 고리는 연약할까?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를 다시 읽었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처음 읽었던 당시에는 뭐가 좋은지도 모르고 그냥 빠져들었다. 다시 읽으니 불완전한 세계 속에서 흔들리는 불안정한 개인의 이야기를 읽어내고 거기에 공감했던 것 같다.
세계에 내던져진 우리는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개인을 둘러싼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우리는 그 세계와 조금씩 다른 관계를 맺고 나아가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 어두운 터널 끝에는 또 다른 터널이 존재할 수도 있다. 그 속에서 연약한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내 옆의 또 다른 연약한 개인을 바라보고 손을 내미는 것이다.
소설 속 나오코는 어린 시절 맺었던 사랑과 우정을 작은 고리라고 이야기한다. 그런 작은 고리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는 없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하나의 작은 고리를 풀고 새로운 고리를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영원히 유지되는 작은 고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 곁에 있는 작은 고리들을 놓쳐서도 안될 것이다.
그게 내가 오늘 겨우 희망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