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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물자국 17화

물 밖의 물고기

by 스밈

어릴 적 아빠는 주말마다 어항 청소를 했다. 한 쪽에 큰 대야를 두고 호스를 연결하고, 다른 한 쪽 대야에는 물고기들을 옮겨 두었다. 청소를 하고 물을 갈아 주는 동안 나는 자주 옆에 앉아 있었다. 아빠를 따라 호스 정리를 해 보기도 하고, 근처에 튄 물을 찰박대기도 하고. 그 중 가장 좋아하던 것은 더 가까워진 물고기들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화려한 꼬리와 지느러미를 가까이에서 구경하는 것은 퍽 즐거운 일이었지만, 급작스레 바뀐 환경에 당황하고 겁먹은 모양은 안쓰러웠다. 물고기들은 천천히 헤엄치기도 하고, 구석에 숨듯이 가라앉아 있기도 했다. 그러다 가끔은 물 밖으로 튀어나오는 물고기가 하나쯤 생기기도 했다.


자유를 꿈꾸며 힘차게 튀어오른 모양이 무색하게, 물고기는 곧 처절하게 퍼덕거린다. 잡으려 해도 퍼덕이는 힘이 강해 쉽게 놓쳐버리고 만다. 겨우겨우 두 손으로 잡아 조심스레 물 속에 넣어 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유유히 헤엄친다. 그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는지 아직도 머릿속 한 켠에 남아 있다. 입을 크게 벌린 채 흔들리는 눈으로 펄떡이는 물고기. 바닥을 텅텅 치는 아름다운 꼬리와 지느러미. 제 힘에 못 이겨 이리저리 튀어대는 몸뚱이. 그 모든 모습이 무성영화처럼 가끔씩 재생되곤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도 물고기처럼 힘껏 튀어올랐던 적이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생각처럼 안 되는 현실에 절망하며 튀어올랐다. 그 순간을 벗어나 도망치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을 줄 알았지. 하지만 스스로 피해 버린 상황은 되려 나를 옥죄어 왔고, 나는 더 도망쳐 버릴 곳을 찾지 못한 채 파도처럼 밀려오는 절망을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 다시 그 자리에 발을 딛고서야 숨을 틔울 수 있었다.


물고기 역시도 아마도 숨이 턱 막혔겠지. 입을 아무리 크게 벌려 봐도 들어오지 않는 물에 당황했겠지. 자신의 삶이, 세상이, 우주가 사라진 기분이었겠지. 자유로의 진격이 생존을 건 몸부림이 될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무척 겁나고 두려웠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궁금해진다. 물고기에게 물은 뭘까. 물 속에서만 살 수 있기에 우선 삶의 터전이겠지. 하지만 반대로 삶의 확장을 구속하는 벽이다. 벗어나는 순간 생을 잃게 만드는 잔혹한 공간. 그러고 보면 물고기에게 물은 사람의 사랑과 제법 닮아 있다. 연인 간이 아닌, 자신에 대한 사랑.


스스로에 대한 사랑은 곧 믿음과 존중이다. 자기확신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나를 믿고 나아갈 때, 사람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활개를 치며 뻗어나간다. 하지만 스스로 확신이 없는 상태일 때, 내가 나를 존중하지 않을 때 사람은 곧잘 무너진다. 나를 살게 하면서도 동시에 죽이는 나의 사랑. 그러고 보면 내가 나를 살리고 죽이는 셈이겠지. 물은 물고기의 우주였고, 나는 나라는 세계에 갇혀 있으면서도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스스로를 둘러싼 사랑을 믿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계에 있다. 물고기의 세계는 물이지만 나의 우주는 나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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