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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고래 Oct 08. 2021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어버렸다.

하루만 제발 하루만이라도 더 버텨줘!

 2013년 3월1일 새벽

갑작스럽게 피가 비쳤다. 병원 문이 열리자마자 진찰을 받으러 가니 분만 전 나오는 '이슬'이라고 했다. 거제도에서 낳을 수 없으니 곧 바로 양산부산대학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1시간이 10년, 100년처럼 느껴졌다. 아직은 세상에 나오기에 너무 작아 한 달은 더 있어야 하는데 벌써 나오려고 한다니 잘 못지켜준 것 같은 마음에 내가 너무 싫었다.

25주지만 이미 만삭!

 어지저찌 병원에 도착했더니 간단한 검사 후 괜찮다고 귀가하라고 하였다. 분명 이상증세가 있는데 괜찮다니 아이러니했다. 공휴일이라 당직 선생님들만 계셨는데 바빠서 그런지 너무 대충하는 듯 느껴졌다. 그대로 집에 가기엔 너무 찝찝해서 평소 다니더 병원에서 이슬이라 했다하니 추가 검사를 진행하였다. 결과는 조기진통!

아기들이 나오려고 한단다. 단태아 기준 예정일이 5월20일인데 3월1일에 나오려한다니...맘이 철렁 내려앉았다. 


 일단 진통을 지연시키는 수액으로 버텨보자고 했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상황인데 아직 폐포가 펴지지 않은 주수라서 폐성숙주사부터 맞아야했다. 급작스럽게 입원을 하게되어 너무 얼떨떨했지만 아기들을 지켜야하기에 정신을 바짝차렸다. 뱃속의 하루가 인큐베이터 1주일이랑 맞먹는다는데 어떻게든 하루라도 더 버텨서 아기들이 건강하게 나올 수 있도록 해야했다.


 다행이 조기 진통 지연 수액은 효과가 있었고 이렇게 진통이 멈추면 1주일 후에 퇴원이 가능하단다. 내가 입원한 병실은 고위험산모실이라 분만장 옆에 있었는데 가끔씩 들려오는 진통 비명에 가슴을 쓰러내기고는 했다. 병실에는 나까지 3명의 산모가 있었다. 두 분은 자궁경부가 빨리 열려 입원한 케이스였다. 처음보았지만 엄마라는 이름으로 금방 서로에게 든든한 동지가 되었다. 


 병원 생활은 진짜 나랑 안맞았다. 평생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던 나에게 꼼짝도 말고 침대에만 누워있으라니까 죽을만큼 고역이었다. 스트레스가 극심했지만 빨리 1주일이 가길 기다렸다. 3월 6일 진통은 멎었는데 갑자기 맑은 물이 흘렀다. 양수였다. 조금씩 새고 있다고 했다. 아기들도 뱃속에서 배설활동을 하는데 쉬야하는 시간에 조금씩 새는것 같다고 하였다. 조기진통보다 더 심각한 상황으로 접어들었다. 철없이 집에가고 싶어 퇴원을 물어봤다가 된통 혼나기만 했다. 이렇게 거제도 가다가 차안에서 아기들 나와도 안이상하다고 넷 다 죽고 싶냐고 하였다. 생각만해도 끔찍했다.

 

 입원 연장을 하고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인큐베이터 자리가 딱 3개 확보되었는데 내 상태가 좋으니 다른 산모에게(응급으로 들어오는 산모들이 있음) 줘도 되겠냐고 하시는데, 딱 잘라서 안된다고 하였다. 무슨 촉이온걸까? 아무큰 그렇게 무사히 하루가 또 지나고 잠자리에 드는데 배가 이상한거다. 배탈이 난듯 싸하니 아팠다. 옆에 언니가 어플받아서 체크해보라고하여 했더니 진통간격이 4-5분 밖에 안되는 것이다. 진짜 큰일났다. 아기들 한 달만 더 있어주라니까 제발...


 밤 10시 짝꿍이에게 잘자라고 인사하고 전화 끊은지 30분 후, 그는 날벼락을 맞고 양산으로 향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낙동강에 밤안개가 너무 심해 앞이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나대로 수술실에서 그는 그대로 전투를 벌이며 아기들을 만나기 위해 싸웠다. 


 3월 8일 새벽1시 14분, 16분 우리 아기들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안녕!? 아라야!
안녕!? 마루야!

 

안녕!? 누리야!


너무나 작은 내 아가들 꼭 건강하게 엄마한테 와야해... 

하지만 제왕절개 중 나한테 문제가 생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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