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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고래 Oct 08. 2021

안녕?! 아라, 마루, 누리야!!!

엄마도 처음인데 세 쌍둥이라니!

 호기롭게 병원 문을 나섰지만 우리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조금은 졸았었겠지. 그때 우리는 차가 없어 시누이 차를 빌려 타고 다녔는데 빨간 마티즈였다. 그 빨간 마티즈는 우리 차도 아닌데 추억이 방울방울 너무 많다. 한참 꽁냥 대던 시절 보고 싶다고 빨간 마티즈 타고 날아온 적도 있었고, 한 겨울 무주로 보드 타러 갔다가 피곤하니 찜질방에 자고 가자는 나를 꼭 집에 데려다준다며 출발했지만, 피곤을 못 이기고 함양휴게소에서 날 재웠다. 아침에 눈부셔서 일어났는데 휴게소 간판이 눈에 똬악 들어와 얼나마 어이가 없어서 웃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추억 중 하나가 아마 세 쌍둥이와 만난 그날이지 않을까 싶다. 


빨간 마티즈에 타면서 눈이 마주친 우리는 웃었다. 그저 웃었다. 눈이 유독 예쁜 우리 짝꿍이가 웃으니 나도 힘이 났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보다 부모님들께서 더 걱정을 많이 하셨던 것 같다. 내색은 하지 않으셨지만 꼭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30살 어린 부부 둘이는 아기가 온 것만으로도 너무도 감사하고 또 감사해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집도 이사해서 창원에 집도 없었다. 때마침 부업으로 하고 있던 옷가게 위에 원룸이 며칠 빈다고 빌려주셔서 있다가 친구 원룸이 비어서 신세를 졌다. 


 2012. 8월 말 태풍도 어찌나 자주 오던지 그걸 뚫고 밥 사다 나른다고 내 짝꿍 고생했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장면이 밤새 '볼라벤'이라는 태풍의 돌풍으로 간판이 굴러다니는 것이다. 장소가 어디든 우리 다섯은 행복했고, 다행히 몸도 건강하고, 아기들도 잘 자라주고 있었다. 하지만 7주 차부터 시작된 입덧이 아기들 낳고도 1달은 더 한듯하다. 셋이 돌아가며 하는지 매주 다른 입덧에 시달렸다. 아주 그냥 씩씩한 놈들이었다.


 먹는 입덧이었으면 좋았겠지만, 불행히도 먹지 못하는 입덧이었다. 겨우 몇 입 먹어도 토해버렸다. 얼마 전 친구하고 통화하다 내가 택시 타고 내리자마자 나무 붙잡고 '욱, 욱'이랬다며 입덧도 징글징글하게 했다고 회상했었다. 그나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탄산음료, 소고기, 식빵, 과일 정도였다. 진한 화장품 냄새도 못 맡아서 짝꿍이는 내 스킨, 로션을 같이 썼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안정기에 접어든 우린 거제도로 완전히 이사를 했다. 병원도 더 이상 불임 병원을 가지 않아도 돼서 일반 병원에서 진료를 보기 시작했다. 지인이라고는 시댁 식구들과 짝꿍이 친구들밖에 없어서 산부인과 정보가 없어 그냥 집 가까운 곳에 갔는데 우리한테 은인이 시 분을 만났다. 의사 선생님은 무뚝뚝하시지만 진심으로 우리 아이들을 꼼꼼히 봐주셨고 양심적이셨다.


 임신을 하고 나면 검사를 많이 한다. 초음파는 기본이고 혈액 검사도 하는데 장애 여부, 임신성 당뇨 등을 알아보는 것이다. 혈액 검사를 해야 하는 주수가 되었을 때였다. 매일 폭풍 검색을 하며 검사를 하는 것이 좋은가 안 좋은 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세 쌍둥이는 비교 수치가 없어서 검사하면 무조건 수치가 높을 것이고 그럼 여러 가지 추가 검사를 할 것이라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었다. 

입체 초음파 : 마루, 누리, 아라 순서다

 드디어 검사를 해야 하는 날 의사 선생님은 솔직히 말씀을 해주셨다. "나는 돈 벌고 좋지만, 그렇다고 비교할 수치도 없는 검사를 하는 것은 아니야, 하지 맙시다."라고 하셨다. 속이 시원했고 고마웠다. 그리고 초음파를 더 꼼꼼하게 봐주시겠다고 매번 가면 한 녀석, 한 녀석 봐주시느라 거의 1시간을 공들이셨다. 손가락,  발가락, 내부 장기, 눈 등 하나하나 다 봐주셨다. 병원비도 더 받지 않으시고 말이다. 


  신체 변화에 예민한 나는 14주부터 태동을 느꼈다. 뱃속부터 자기 성격이 드러난다는 말 나는 확신하다. 우리 세 꼬맹 씨들이 내 임상 데이터이다. 뱃속부터 활발한 우리 세찌 누리는 초음파 볼 때마다 움직여서 한 번에 본 역사가 없다. 지금도 어찌나 뽈뽈 거리고 다니시는지 딱 지 성격이다. 신경질적으로 발로 차던 첫째는 역시나 까칠하시다. 


 태동을 느끼기 전까지 어찌나 불안하던지 매일 악몽을 꿨다. 꿈에서 아기가 없어졌어요, 한 놈이 없어졌어요, 두 놈이 없어졌어요, "상상임신입니다"도 있었다. 있긴 한데 보이지 않으니 한 번의 아픔이 있던 나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태동이 시작되고 그 불안은 싸악~사라졌다. 불안할 틈 없이 움직여 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성별이 문제였다.


 우리 짝꿍이는 장손이었던 것이다. 아들을 꼭 낳아야 한다는 구식 시부모님은 아니셨지만, 시골에서 할머니하고 자란 내가 구식이라서 왠지 아들이 하나는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좀 들었나 보다. 하지만 둘도 별로였다. 딸 둘에 아들 하나의 꿀 조합이면 너무 좋을 것 같은데 그것은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또 다른 악몽의 소재가 되었던 것이다.


 "딸 셋입니다!" 보다 더 무서운 꿈은 "아들 셋입니다!!!!!!"였다. 아들 셋 세 쌍둥이를 둔 언니, 동생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진짜 대단한 분들이다. 16주 차 검사를 하던 중 의사 선생님께서 성별이 대충 보인다고 알려주셨다. 물론 알려주면 안 되지만 특수한 상황이니 준비물 준비라 하고 색으로 둘러서 알려주셨다. "파란색 하나랑 핑크색 두 장하면 되겠네!"라고 하셨다. 감사합니다!!!


  아기들 태명은 아라, 마루, 누리다. 순수한 우리말로 아라는 바다, 마루는 꼭대기, 누리는 세상이다. 내 뱃속에 하늘부터 바다, 온 세상이 다 있었다. 따뜻하지만 다정하지는 못한 성격이라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지 너무도 걱정이 되고 무서웠지만, 최선을 다 할 준비는 되어 있었다. 육아를 글로 배운 엄마지만, 부족한 엄마지만 그래도 열심히 잘해볼 것이라는 다짐을 했다. 나의 최대 단점이자 장점이 노빠꾸이다. 일단 'Go'했으니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이다. 

똘똘 뭉친 세 쌍둥이

 어느덧 20주 차가 되었다. 이제 다음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세 쌍둥이는 위험해서 일반 의원급 산부인과에서 낳기는 힘들다고 하셨다. 3차 병원을 알아보라고 하셨고 친한 친구 동생이 창원 삼성병원 NICU(신생아 중환자실)에 근무하고 있어 웬만하면 그 병원에서 낳으려고 한다고 했다. 아무래도 조산의 위험이 커서 인큐베이터 신세를 져야 할 것이고 그러면 친구 동생이 있는 곳이면 더 맘이 놓일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소아과가 잘 되어 있는 곳을 알아보라고 하셔서 고민하다 양산 부산대학교 병원이 어린이 병원이 따로 있고 실력 좋으신 선생님께서 얼마 전 가셨다고 하여 양산 부산대 병원에서 낳기로 결정했다.


 평소 체력이 좋아서였는지 컨디션이 좋았다. 심심하기도 하고 태교도 할 겸해서 과외를 했다. 공대를 나온 나는 이과 과목 강사였다. 수학이랑 과학 과외했는데 한 명은 우리 집으로 왔지만 한 명은 학생 집에서 했다. 학생 집이 옆 동네였는데 차 편이 불편한 곳이었다. 창원은 워낙 교통편이 잘 되어있어 자가운전을 생각한 적이 없어 운전면허가 없어 택시를 타고 다녔다. 버스는 몇 대 없기도 했고 무리하면 안 되니까 택시를 탔다.


 여담인데 거제도 와서 택시를 타고 놀란 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콜비였고, 다른 하나는 할증이었다. 콜비라는 것에 문화충격이었고, 구간마다 할증이 붙는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콜비도 내는데 택시는 항상 오래 걸렸다. 그 동네가 지금은 번화가인데 그때는 아파트가 막 들어서는 신도시 느낌이어서 더 그랬다. 그날도 그랬다. 꽃샘추위가 한창인 2013. 2월 마지막 날 과외를 마치고 나와서 택시를 불렀는데 1시간도 넘게 기다렸다. 집에 와서 녹초가 된 나는 잠이 들었고 잠결에 퍽! 하는 느낌이 들어 화장실에 갔는데 피가 비쳤다. 느낌적으로 무엇인가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29주였고 아직은 너무 작았다. 정말 무서웠다. 당장 어떻게 될 것만 같아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라, 마루, 누리야! 아직은 우리 만나면 안 돼! 한 달은 더 있어야 한다고....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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