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 담 Mar 06. 2024

공공기관의 워라밸은 공무원에게 달렸다.

워라밸은 담당 공무원에게 달렸다.     


워라밸에 대한 내용 중 마지막이다. 단순하고 명확하다. 말 그대로 담당 공무원에게 달렸다.

모든 공공기관은 해당 법령에 따라 국조실, 중앙부처, ㅇㅇ위원회 등 공무원 집단에 속해있다. 예를 들어 한국전력공사는 산업부 산하 '공기업'이고, 국민연금공단은 보건복지부 산하 '준정부기관'이며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과기정통부 산하 '기타공공기관'이다. 지방공기업의 상위 집단은 해당 지자체가 되겠다.

통상 공공기관이라 불리는 조직은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공공기관, 지방공기업 등으로 나뉘는데 이 부분은 다음 챕터에서 다루겠다. 지금은 '공공기관 위에는 담당 부처와 공무원이 있다.'는 개념만 알고 넘어가자.

어쨌든 여기가 중요한데 대부분의 공공기관은 소속된 정부로부터 기관 운영을 위한 예산을 받는다. 자체적으로 수익사업을 해서 재원이 충당되는 공기업도 정부로부터 출연금, 보조금 등을 이전받아 설립된 기관이다. 뒤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설립할 때만 받았든 주기적으로 받았든 나라에서 자금 지원을 한 것이다. 나랏돈이 무궁무진한 것도 아니고 그 재원들의 원천이 곧 세금이라는 점에서 공공기관은 공공성과 민주성의 속박을 벗어날 수 없다.

예산과 감사(勘査)는 모든 공공기관의 숙명이며 이는 곧 공무원 집단의 아주 강력한 ‘행정 도구’로 사용된다. 심하게 표현하면 말 안 듣는 기관들을 단속할 수 있는 ‘무기’로도 쓰일 수 있다는 뜻이다.

공무원의 입장에서 대부분의 정부 부처(실‧부처‧청‧위원회)는 많든 적든 산하에 공공기관을 두고 있다. 그리고 보통 부처 내부에 ‘○○ 정책과’ 같은 부서에서 해당 기관들을 감독하고 그들을 관리하는 업무를 하는 공무원이 있다. 그런데 이 담당 공무원을 잘 만나는 게 워라밸에 정말 중요하다.

내가 겪은 일이다.     


금요일 오후 5시 51분. 전화가 한 통 걸려 온다.

안 받고 싶지만… 발신 번호를 보니 받을 수밖에 없다. 국번이 044(세종)로 시작한다.

044는 거부할 수 없다. 안 받는다 해도 곧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 오기 마련이다. 

전화를 받았다. 담당 공무원이다.

어떤 보고서를 월요일에 윗분(장관, 차관, 실‧국장 등)께 보고해야 하니 필요한 자료를 일요일 3시까지 메일로 보내(달)라고 한다.

금요일 칼퇴의 꿈을 꿨던 나는 야근에 당첨됐고, 주말 내내 출근했다.     


그날은 여자친구와 저녁 약속이 있었다. 미안하다고 전화하려 했는데 마침 먼저 전화가 걸려 왔다. 그런데 미안하다는 말은 내가 아니라 여자친구의 입에서 먼저 나왔다. 복지부 산하 기관에서 일했던 그녀도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해 못 할 상황이 아니었던 우리는 웃프게 서로의 빠른 퇴근을 기원했다.     


이런 일을 매주는 아니라도 격주에 한 번꼴로는 겪었던 것 같다.

여기서 분명히 말할 것은 담당 공무원을 욕하는 게 아니다. 실무자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그들이 금요일 퇴근 시간 몇 분 전에 전화를 걸었다는 것은 분명 그 윗분도 퇴근 몇십 분 전에 그들에게 일을 시켰다는 뜻이다. 왜 급한 일은 항상 금요일 오후에 지시가 이루어지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공적인 업무를 하는 사람들의 ‘종특’인 것일까.

일반적으로 공공기관은 공무원이나 정부가 직접 운영하기 힘든 일들을 위탁하는 형태로 만들었다. 정책을 수립하고 배분하는 것이 본분인 공무원들이 현장에서 일일이 집행까지 하기는 힘든 일이다. 그들이 올바른 정책을 수립하고 적정한 예산을 배분하려면 수많은 공공 데이터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보건복지부의 경우에는 국민연금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보건‧의료 관련 기관들의 데이터를 취합해 정책을 수립한다.

그런데 방금 예시로 든 것처럼 대부분의 데이터는 현장에서 수집되는 자료이다. 그래서 정책 보고 자료로 쓰려는 데이터가 본인들에게 없는 경우가 많고 그럴 경우 해당 기관에 전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기적으로 제출하는 자료들이야 있겠지만 대통령실이나 장‧차관, 국회의원 등 위에 높은 분들이 어떤 자료를 필요로 할지는 하느님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그들을 이해는 하려고 하나, 가끔은 몇몇 공무원들이 본인의 노력 없이 습관적으로 전화를 한다. 보안이 필요한 자료가 아니라면 통계적 데이터의 대부분은 공공기관 홈페이지 자료실이나 ‘알리오(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에 오픈되어 있다. 

또한 아무리 데이터가 많아도 그들이 원하는 ‘양식’이 있다. 

그렇다. 항상 그놈의 ‘양식’이 문제다.

업무 요청의 90% 이상은 “어떤 양식을 메일로 보낼 테니 언제 언제까지 회신을 달라”는 식이다. 엑셀이라면 그나마 쉽지만, ‘한컴’을 많이 사용하는 공직사회 특성상 그들 특유의 보고서 양식과 조건에 따라 데이터를 입력해야 한다. 조건을 간략히 설명하면 

몇 년도부터 몇 년도까지, ‘가’~‘마’ 조건 중에서 가, 다, 라에 해당하는 것만 추리되, A~G 조건 중에 B, C는 제외한 데이터만…

이런 식이다.

결론은 산하 기관의 대외협력실이나 관련 부서에 전화 한 통 거는 것으로 일을 해결한다. 센스가 있는 공무원이라면 본인이 직접 데이터를 찾고 정보를 가공해서 원하는 자료를 얻을 수 있지만, 그런 분들이 많지 않은 게 문제다.

물론 그분들의 일이 너무 많아 해결할 시간이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아무튼 갑작스러운 요청이 많은 건 사실이다.     


금요일. 그놈의 주간 회의.

공무원 세계를 100% 다 알지는 못하지만, 대부분의 공직사회에는 '주간 회의'라는 문화가 있다. 한 주, 또는 월 단위로 진행하는 일들의 현황을 보고하는 시간이다. 

그 주간 회의가 보통 월요일이나 금요일에 진행된다. 그러면 그 회의 자료는 회의 2~3일 전부터 작성하게 된다(월요일 회의는 전 주 금요일까지, 금요일 회의라면 목요일까지 작성하는 둥). 대부분은 월요일에 주간 회의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수~목요일쯤 정해진 양식으로 금요일까지 자료를 제출하라는 메일을 받는다. 그런데 급한 일도 아니고 다들 자기 업무가 바쁘다 보니 미루다가 금요일에 후다닥 작성하게 된다.

당신이 교육부 공무원이라고 가정 해보자.     


금요일 오전에 부리나케 주간 회의 자료를 작성하던 중 다음 주 월요일에 과장님이 보고해야 할 중요한 내용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사업 진행에 대한 데이터가 필요한데 산하 기관이나 학교에 자료를 요청해야 한다. 지금 연락해서 받기엔 시간도 애매해서 적당히 기존 자료를 가공해서 만들었다. 그런데 과장님이 자료를 보더니 국장님한테 깨질 일 있냐며 정확한 데이터로 다시 자료를 만들어 오라고 잔소리를 들었다. 결국은 금요일 오후에 이런저런 설명과 함께 마지막에 ‘국장님 보고 사항이니 일요일 12시까지 회신 바랍니다.’라는 멘트를 달아 메일을 보냈다.     


교육부 공무원을 남편으로 둔 지인의 사연이었다. 마지막 멘트는 기관 입장에서는 투덜대면서도 내 일 제치고 바로 할 정도로 반강제적인 효과가 있다. 

어쨌든 주간 회의 자료를 작성하다가 담당자 개인의 요청이든, 그 위 팀장, 과장 선에서 ‘쪼았든’ 금요일에 전화가 자주 오는 이유이다. 이래서 금요일이 은근 기대되면서도 긴장된다. 목요일에만 요청해도 감사하다.     


서두에서 공공기관은 소속 정부로부터 예산을 받는다고 했다. 그 예산을 못 받게 되면 당장 망하진 않더라도 타격을 받는다. 기관 분류에 따라 다르지만, 일부 기관들은 당장 내년 예산을 못 받거나 삭감되면 직원들 급여 주는데도 불똥이 떨어질 수도 있다. 윗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높은 연봉을 주는 건 그 예산을 잘 따오라고 주는 대가라고 봐도 무방하다.     


성과급이 달린 경영평가. 

또한 예산을 주는 곳이 보통 그 기관을 감독한다. 나랏돈으로 준 예산을 적재적소에 잘 썼는지, 성과는 어떤지, 윤리적인 문제는 없는지 등을 기준으로 기관을 바라본다. 정기적으로 감사(勘査)를 받기도 하고 감독의 성격이 부처별‧기관 유형별로 종류가 다르기도 하다. 어쨌든 정부의 대표적인 기관 감독 기능에는 '기관경영평가'가 있다.

기관경영평가(줄여서 ‘경평’이라고 많이 부른다). 아마 현직에 계신 분들이라면 말만 들어도 피곤하고 무시무시한 단어이다. 개인적으로는 국정감사 다음으로 힘들었던 일 중 하나였다.

공공기관이 이 경평을 중요시하고 또 어려워하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것은 금전적 이익이다. 바로 경영평가 결과로 직원들의 '성과급'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경평 결과는 보통 S~D등급으로 부여된다. 예시로 S등급은 연봉월액(연봉/12)의 300%, B등급은 100%, D등급은 0%를 받는 등 이 역시 기관 유형별로 비율이 다르다(대기업처럼 몇천만 원을 받는 걸로 오해하면 절대 안 된다). 참고로 이 성과급 관련된 내용은 기관마다 ‘대외비’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다. ‘알리오’에서도 확인하기 힘듦으로 내부에 아는 사람이 있지 않은 이상은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다.

대표적인 경우를 들면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은 보통 기재부가 매년 하달하는 ‘공공기관 경영평가편람’의 기준에 따라 평가를 받고 내부 규정에 의해 성과급을 받는다. 그 외의 기관은 각자 해당하는 법령과 소관 부처의 기준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검색하면 기재부의 해당 게시판이 바로 나오니 궁금하다면 찾아보자.                                                            


※ 2024년은 87개 기관을 평가한다. 보통 천 페이지는 기본으로 넘어가니 앞부분의 ‘평가 기준’과 관심 있는 기관에 대한 내용만 보아도 무방하다.


어쨌든 기관의 가장 큰 명예임과 동시에 열심히 일한 직원들에게는 한 해 동안의 노력에 대한 결실이다. 개개인에게는 연중 가장 큰 금전적 소득이므로 그 무게가 절대 가볍지 않다.

경평 S등급이면 건물을 통째로 가릴 정도 크기로 현수막이 게시되거나 다음 해 예산 획득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거기에 특출난 성과를 낸 직원들은 장관 표창도 받는다. 무엇보다 사장, 원장, 소장, 센터장, 단장 등 수많은 기관장의 ‘목’도 달려있다. S등급 한 번이면 연임은 따놓은 거나 마찬가지라는 진담 같은 농담도 있다(그래서 연임을 앞둔 몇몇 기관장들은 경평 시즌에 직원들을 닦달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여튼 공공기관에겐 연중 가장 중요한 행사이다.     


평가 개요를 보면 기관 평가를 위해 대학교수, 회계사 등 전문인력을 초빙해 평가단을 구성한다. 즉, 평가의 객관성을 위해 공무원들이 아니라 외부 인사들이 평가를 진행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서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현장 검증 등 평가 실무는 외부 인력들이 하지만, 평가 ‘주체’는 공무원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평가를 위임하고 객관성을 보장한다 하더라도 평가 등급에 대한 최종 결정은 공무원과 정부에서 내린다. 외부 위원들이 아무리 좋은 의견을 내더라도 보이지 않는 위쪽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알파벳이 바뀌고 순위가 바뀌지 않는다고 장담하지 못한다.

물론 요즘은 언론의 눈치가 무서워서 평가를 잘 주고 싶어도 윤리적으로 문제가 많은 기관에 잘 줬다가는 언론에서 난리가 날 것이다. 언론의 존재 이유랄까.

또한 원활한 평가를 위해 평가단의 곁에서 행정적 지원을 하는 간사들 역시 공무원이다. 평가가 이루어지는 기간(위원 섭외부터 최종 심의까지 여러 단계를 거쳐 2~3개월 이상) 동안 간사들과 평가단 위원들은 수시로 접촉할 수밖에 없다. 간사든 윗분이든 어떤 과정에서 공무원의 입김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고는 말 못 하겠다.

이쯤 되면 굳이 경영평가에 대해 길게 설명한 이유를 눈치챈 분들도 있을 것이다.

앞서 설명한 예산, 감사를 포함한 감독 기능과 평가 권한을 통해 공공기관에 대한 공무원의 권위가 보장된다. 한마디로 공무원의 눈밖에 잘못 났다가는 예산이 줄어들거나, 경영평가가 C등급이 나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배경 설명이 길었지만, 그런 연유로 일반 공공기관 직원들은 공무원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 그들의 요청을 무시하다가 잘못 걸리면 팀장, 본부장 등 내 윗분들에게 전화가 다이렉트로 갈 수도 있다(경험담이다).     

전화나 메일이 일반적인 평일 근무 시간에 제출 기한도 넉넉하게 오면 다행이다.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일이라 내 업무를 미루고 근무 시간은 늘어나더라도 마음은 편하다. 회사 생활에서 딱 자기 일만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쨌거나 금요일 퇴근 전의 전화나 메일은 참 무섭다. 아주 가끔은 주말에 잘 쉬고 있는데 핸드폰으로 직접 연락이 올 때도 있다. 여행 중이거나 컴퓨터를 켤 여건이 안 되면 다른 동료에게 대응을 부탁해야 한다. 모든 직원이 시달리는 건 아니지만 언젠간 겪고 누군가의 워라밸은 와장창 무너진다.

그들이 급하다고 나의 주말을 앗아갈 권리는 없지만 권한은 있다. ‘담당 공무원 잘 만나는 것도 복’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이게 공공기관 워라밸의 현실이다.     


그게 공무원과 공공기관의 역할이며, 나랏일하고 안정적인 직업이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할 수도 있다.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의 사명은 중요하다. 정책적으로 중요한 업무나 공공 연구를 위해 나서서 주말을 포기하고 일하는 분들도 정말 많다. 나는 이 글을 통해서 힘들다고 엄살 부리고 핑계 대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남들이 좋다고, 어른들이 가라고, 안정적이라고, 워라밸이 보장될 거라는 이유로 공공기관을 선택하지 말라는 뜻이다. 90년대에 만들어진 ‘신의 직장’의 개념은 바뀌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초과근무의 명(明)과 암(暗)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