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리치의 메인 광고 모델로 발탁되다
전국 가맹 50호점 계약이 체결된 날 밤.
가게의 조명이 하나둘 꺼지고, 리치는 주방 한켠, 라면 상자 위에 몸을 말고 조용히 졸고 있었다.
정훈은 커튼을 내리며 가만히 속삭였다.
“리치야, 우리가 진짜 시작했나 봐.”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밤하늘을 배경으로 ‘라면천원’ 간판이 은은히 빛나고 있었다.
그 가운데엔, 리치의 얼굴이 있었다.
처음 디자이너와 함께 그렸던 납작한 캐릭터가 아니었다.
지금의 리치는 살아 있었고, 웃고 있었고, 무엇보다 이야기를 품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 미소엔 따뜻함과 '믿음'이 담겨 있었다.
마치 "괜찮아, 우리가 잘 가고 있어"라고 말하는 듯이.
정훈은 조심스럽게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수첩 속에는 라면천원이라는 이름이 탄생하던 날 밤, 무심코 끄적였던 문장들.
‘천원으로 위로를 준다.’
‘마음의 배를 채운다.’
‘한 그릇이 누군가의 희망이 되기를…’
그리고 한 쪽엔 연필로 그려진 리치의 투박한 스케치.
정훈은 잠시 웃었다.
“여기까지 올 줄, 그땐 정말 몰랐지…”
리치는 킁킁거리며 눈을 살짝 떴다.
졸린 눈으로 정훈을 올려보더니, 꼬리를 살랑 흔들었다.
언제나 그렇듯, 아무 말 없이 함께 있어주는 친구처럼.
그 순간, 거리의 택시 모니터, 편의점 진열대 위 작은 화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휴대폰 속에서도 리치의 광고 영상이 흐르고 있었다.
그건 단순한 제품 소개가 아니었다.
라면 한 그릇, 그리고 그 너머의 이야기.
며칠 뒤, 광고 팀에서 정훈에게 연락이 왔다.
“메인 광고 모델, 최종 확정됐습니다.
9시 뉴스 전, 황금 시간대.
주인공은… 리치입니다.”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곧, 회의실은 박수와 탄성으로 가득 찼다.
광고 업계에선 '강아지 모델 최초 단독 프라임타임 진출'이라는 기록이 탄생했다.
정훈은 아무 말 없이 회의실 한 구석에 놓여 있던 리치 피규어를 조용히 손에 쥐었다.
플라스틱이지만, 마음만큼은 가장 무거운 상징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도심 중심가의 초대형 전광판.
수만 명이 오가는 교차로 한복판에서 리치의 얼굴이 찬란하게 빛났다.
광고는 단 30초.
밤, 어두운 골목.
배를 움켜쥔 청년이 가게 앞에 멈춰 선다.
문이 열리고, 리치가 천 원짜리 지폐를 물고 나온다.
“배고픈 밤, 천 원으로 충분해.”
청년과 리치가 나란히 앉아 라면을 사이에 두고 따뜻한 김을 맞이한다.
그리고 리치가 카메라를 향해 윙크하며 말한다.
“리치가 책임질게!”
라면 한 그릇이 회전하며 클로즈업 되고, 마지막 문구가 떠오른다.
‘라면천원’ — 당신의 하루를 응원합니다.
광고는 폭발적이었다.
TV뿐 아니라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등 각종 플랫폼에서 리치의 영상은 수백만 회 조회수를 기록했고, ‘라면천원 챌린지’라는 밈이 생겨나 퍼지기 시작했다.
해시태그는 연일 상위권에 올랐다.
#리치라면천원
#심야식당리치
#우리집도리치
#오늘도천원
아이들은 리치 스티커와 인형을 모았고, 편의점 앞에선 직장인들이 리치의 윙크를 따라하며 사진을 찍었다.
심지어 유명 셰프와 방송인들도 “리치에게 배우자”는 콘텐츠를 만들며 유행을 이끌었다.
정훈은 고요한 사무실에서 광고 영상을 다시 재생하며 중얼거렸다.
“이젠, 넌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야.
넌... ‘이 시대의 따뜻함’이 됐어.”
리치는 옆에서 라면 냄새를 맡듯 코를 씰룩이며 더 활발히 꼬리를 흔들었다.
그 표정은, 처음보다도 더 밝고, 더 믿음직스러웠다.
그리고 그날 밤, 정훈은 세계지도를 펼쳤다.
“이 따뜻함, 한국을 넘어가야 해.
진짜 ‘천원의 기적’을 보여줄 차례야.”
그 옆, 리치는 고개를 갸웃하며 지도 위에 앞발을 올렸다.
그곳은, 도쿄.
그리고 또 한 쪽 발은 하와이.
정훈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가자, 리치.
다음은… 전 세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