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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쩡이 Dec 26. 2024

나에게 열린 신세계

'미소'와의 만남

그 아이를 처음 만난 날을 잊지 못한다. 


중학교 3학년 시절 어느날, 집에 혼자 있는데 허리가 삐끗했었다. 겨우 침대로 이동하여 누워서 꼼짝 못하고 있는데 ‘삐비비-빅’하는 도어락 소리가 들려왔다. 구세주를 만난 듯한 반가운 마음으로 내 상황을 알리려는데, 엄마와 동생의 상기된 목소리와 함께  ‘다다다다닷’ 하는 말발굽 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곧 그  말발굽 소리는 나에게 가까워졌고, 내 시야에 동그랗고 똘망한 눈망울을 한 인형 같은 것이 들어왔다.


그게 내가 처음으로 동물과 가족이 된 순간이었다. 남동생이 엄마를 졸라 동물병원에서 데려온, 너희 둘 키우기도 벅차다며 애완동물에 완강하던 엄마의 마음도 움직인 까만 털의 조그만 미니핀은 그날부로 우리의 가족 구성원이 되었다. 

우리집 첫번째 동물 가족 '미소'

집에 온 지 며칠이 지나고 이름은 내가 지어줬었다. 웃는 듯이 올라간 입꼬리를 보고 ‘미소’라는 이름을 지어줬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도 정말 잘 지은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그 아이가 집에 오고 나서 우리 가족은 웃을 일이 더 많아졌고, 더 행복해졌다. 강아지를 그저 움직이는 털인형 정도로 생각했던 나에게는 몰랐던 세상, 신세계가 열렸다.  말하지 않고 교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소중한 동생이 하나 더 생긴 셈이었다.


그렇게 내가 대학생이 되고  3학년 시험기간이던 어느날 미소가 방에 왔는데 건성으로 아는 체를 하자 서운한 듯 나에게 뒷모습을 보이면서 앉아 있었다. 그 뒷모습이 미소와 인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던 걸 알았다면 예뻐해주고 마음을 알아줬을텐데.. 며칠 뒤, 온 집에 조금씩 변을 묻히고 다니는 증상이 생겨 병원에 데려가니 항문낭 수슬을 해야한다고 해서 수술을 했다. 수술이 잘 됐고, 회복만 하면 된다고 했다. 난 시험공부가 바쁘단 이유로 회복중인 미소를 보러 가지도 못했다. 엄마만 미소를 보러 갔다. 


다시 미소를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미소는 퇴원을 하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부모님이 아이를 화장해오고, 동네 뒷산 양지 바른 곳에 묻어주었다. 너무 가슴이 아팠지만, 그 땐 죽음이 정확히 어떤건지 몰랐던 것 같다. 뇌의 어느 부분이 마비된 기분이었다. 엄마가 많이 힘들어 했다. 가족 모두 그 전과 같이 생활했지만, 한동안 조금은 우울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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