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면 빠꾸, 하지만 이제는 화살을 쏘아야 할 때
한달 전 표준치료를 마치고, 열흘 전 뇌경련 예방약 케프라 마지막 남은 한 알까지 먹는 모습을 보고 큰 딸은 영국으로 떠났다. 약먹는 아빠 모습을 떠올리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다 싶었다.
스물 넷이지만, 부모에게 딸은 아직도 물가에 내놓은 아이마냥 마음이 간다.
딸의 고교 친구 둘의 아버지 죽음 때문이다. 절친의 부친 한 분은 고교시절에 한 분은 대학생때 2,3년의 투병을 거쳐 하늘로 가셨다.
내가 장례식장에 태워다주며, 예를 표하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또한, 장례 이후 슬픔에 잠긴 친구들을 위로하는 모습을
더러 보거나 듣곤 했다.
그래서, 작년 이맘때 확진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걱정했던 것이 큰 딸이었다.
딸은 친구를 통해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해 그 슬픔의 깊이를 알고 있었다.
나 스스로 마음이 정리되었을 때, 아이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딸들아, 아빠 건강은 염려하지 마라.
아빠는 반드시 이겨낸다. 너희는 기존처럼 일상을 살아가렴. 그것이 아빠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길이란다."
딸들은 이후 별 일 없는 양 일상에 충실했다. 나와 마눌이 무심하기까지 한 딸들의 모습에 안도하면서도 때로 서운함을 느낄 정도였다.
딸은 학생비자 발급 지연으로 속않이를 했다. 두어번을 품에 안겨 울며 자책했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은데
과연 홀로 생활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부모의 마음이 기우임을 확인하는 데는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물론, 길을 잃고 헤매다 길거리에서 울기도 하고, 목감기로 인해 수업을 빠지기도 하고, 배가 고파 라면이라도 끓여먹고 싶은데 홈스테이 맘이 허락을 안해준다고 하는걸 보면 적응이 끝난건 아니지만, 그래도 학교 친구를 만들고 낯선 땅에서 타인의 도움을 받고 답례를 하는 걸 보면 걱정안해도 될 거같다.
그간 가족채팅방은 거의 내 글이었지만, 이제는 큰 딸의 일상사로 채워지고 있다.
나는 딸의 이런 변화가 가장 반갑다.
마눌과 내가 '폭싹 속았수다'를 재밌게 봤다고 추천하자, 딸도 혼자 봤다고 했다.
그래서, 출국 전 나는 딸에게 농담처럼 얘기했다. 아빠 관식이가 딸 금명이에게 기회있을 때마다 하던 말이다.
"딸, 언제라도 힘들면 빠꾸해.
아빠는 여기서 기다릴께."
나도 이제는 딸이 꿈을 향해 홀로 서기를 할 수 있도록 저멀리 화살을 쏘아야 할 듯 싶다.
레바논의 마론파 기독교도이자 시인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에 수록된 시 한 편을 소개한다.
아이에 대하여
그대의 아이라고 해서
그대의 아이는 아닌 것
아이란 스스로 갈망하는
삶의 딸이며 아들인 것
그대를 거쳐 왔을 뿐
그대에게서 온 것이 아니다
지금 그대와 함께 있을지라도
아이란 그대의 소유는 아닌 것을
그대는 아이에게 사랑을 줄 순 있으나 그대의 생각까지 줄 순 없다
아이는 그들 자신의 생각을 가졌으므로
아이에게 육신의 집은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마저 줄 순 없다
아이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다
결코 찾아갈 수도 없고,
꿈속에서도 가볼 수 없는 내일의 집에
그대의 아이처럼 되려고 애쓰되
아이를 그대처럼 만들려 애쓰지 말라
삶이란 결코 뒤로 되돌아가지 않으며, 어제에 머물지는 않는 것이므로
그대는 활,
그 활에서 그대의 아이는
살아있는 화살처럼
앞으로 쏘아져 나간다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