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 후감
요며칠 톨스토이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오디오북으로 들었다. 3시간 분량이라 꼬박 사흘이 걸렸다. 듣다 잠들면 놓친 부분을 찾아 다시 들었다. 한 부분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만큼 소설은 환자인 나에게 맞춤형이었다. 젊은 나이라면 쉽게 읽히지 않을 책이었다. 병석에서 신음하는 환자의 고통이 절실하고 처절하다. 읽더라도 그 의미를 제대로 헤아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주인공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한 심리 묘사와 디테일이 큰 병을 경험한 사람만이 이해가능하다 할만큼 깊다.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과
삶과 죽음에 관한 깊은 사유가 바탕이 된 작가였기에 쓰여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러시아 혁명전 19세기 고위관료 법관이다. 적당한 나이에 결혼하고 순탄한 엘리트 인생을 산다. 50대 후반 어느 날 집안 일을 하다 옆구리를 다치고 그 통증이 심해져 수개월을 앓다 결국 숨을 거둔다.
소설 분량의 절반은 병석에 누운 주인공의 마음을 쫒는다.
환자는 희망과 절망의 시계추를 반복한다. 큰 병이 아닐거라는 기대, 오진일 수 있다는 낙관, 치료만 제대로 받으면 금방 털고 일어날 거라는 희망을 안고 산다.
또한, 어쩌다가 나에게 이런 병이 왔을까 하는 우울, 내가 뭘 잘못했다고 하는 식의 세상에 대한 적의, 환자를 제대로 배려하지 않는다는 주변에 대한 불만, 이렇게 치료받아 완치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 내 삶이 끝나면 남은 가족은 어떻게 될까 하는 절망에 쌓여 산다.
톨스토이 사후 100년,
한 심리학자는 죽음의 5단계설을 발표했다. 환자는 죽을 병을 진단받으면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과정을 거쳐 죽음에 이르게된다는 것이다.
이반 일리치도 이 과정을 밟는다.
처음엔 의사의 말을 믿지않고 병을 부정하려든다. 의사의 말이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려 보인다. 의사의 말을 부인할 만한 꼬투리를 잡는다.
엘리트 판사로서 치열하게 직무에 충싨하며 사회에 기여했는데도 병을 얻었다는 현실을 수긍할 수가 없다.
대충 적당히 살아온 동료들이 뒷짐지며 자신을 힐난하는 듯하여 화를 주체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악화되는 병세에 마음을 고쳐먹는다. 의료진 지시대로 따라하면 병도 낫고 다시 출근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갖는다.
화는 더 큰 화를 부르고,
나만 손해라는 생각에 타협한다.
하늘에 언제까지만 살게 해주세요 기도하고 매달리는 시기다.
통증이 심화되면 다시 우울이 찾아든다. 서서히 병을 인정하고 죽음이 현실로 찾아드는 시기다.
웰다잉으로 가는 길목,
이 때가 가장 중요하다.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고 성찰하고 반성한다. 교인이라면 고해성사를 하기도 한다. 소중한 주변사람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전하기도 한다.
비로소 마음이 정화되고 죽음을 받아들인다. 이제 남은 시간을 평안한 마음으로 보낼 수 있다.
육체의 통증이 심해지더라도 마음에는 빛이 생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