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않은 고난에 미리 굴복하지 마라
기다림의 연속,
더디게 흐르는 환자의 시간.
드디어 오늘밤 표준치료를 마친후 첫번째 MRI 검사를 한다.
두달만에 찍는 이번 시간은 유독 길게 느껴졌다.
항암약을 끊고 첫번째 추적관찰이라는 긴장감에 결과를 확인하고픈 조바심이 더해졌다.
시험을 잘봤다고 느껴 성적표를 빨리 받아보고 싶은 학생의 마음으로 검사를 기다려왔다.
나는 지난 두달도 예전의 루틴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
환자의 루틴은 단순하다.
야채위주 세 끼 식사,
하루 2리터 물 마시기,
매일 팔천 보 걷기 뿐이다.
식단은 마눌이 관리한다.
나는 주는 대로 먹을 뿐이다.
식단은 몸을 산성화시키고 암세포가 좋아한다는 육류나 가공식품, 유제품 등은 배제하고 채식 위주로 한다.
또한, 소화가 더디고 장내 유해균이 좋아하고 염증 반응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밀가루, 튀김, 설탕 과다 먹거리도 밥상에 올리지 않는다.
맵고 짜고 단 맛에 익숙해진 탓에 처음에는 싱겁고 맛없는 채식에 툴툴거렸지만 이젠 익숙해져 투정없이 주는 대로 잘 받아먹는다.
먹다보면 먹어진다.
그 덕분에 2차 항암부터 8개월 가량 체중감소없이 65kg 몸무게를 유지할 수 있었다.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혈색이 좋아졌다고 한다. 피부가 광이 나서 아픈 사람 같지않다는 얘기도 듣는다. 채식과 매일 마시는 2리터의 레몬수 덕분이라고 믿는다.
대화를 나누며 좋아진 몸 상태에 안도한다. 사람들을 보내고 돌아오며 생각한다.
확진부터 1년에 가까운 시간,
재발이나 전이없이 더 나빠지지 않고 조금이나마 좋아져 왔다.
그래서 평안한 마음으로 루틴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혹시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오면 나는 그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생겨난다.
호사다마라는데, 괜찮을까...
주변의 환우들이 통증으로 신음하고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악화된다, 그 분들도 조심했을텐데...하는 생각
의심은 불안을 낳고
불안은 우울감을 만든다.
생각으로 생각을 덮어야 할 타이밍,
그리스 신화에서 답을 찾는다.
그리스의 오디세우스는 10년에 걸친 트로이전쟁에서 승리한 후 아내와 아들이 기다리는 고향 땅으로 가다 난파되어 칼립소 여신에게 붙잡혀 7년을 보내게 된다.
여신과의 사랑은 달콤했지만, 오디세우스는 고향으로 가고자 한다. 여신은 불멸의 사랑을 약속하며 유혹하지만 응하지 않자, 마지막으로 호소한다.
사랑하는 오디세우스여, 그대는 왜 가까이에 있는 행복을 마다하고 먼 고난의 길을 가려 하시오? 그대의 뱃길은 상상할 수도 없는 고난길이 될 것이오.
반협박 호소에도 담대한 영웅은 아래의 말을 남기고 다시 고난의 여정을 시작한다.
고난, 올테면 오라지요.
지금의 고난에 또 하나의 고난이 더해졌다고 생각하렵니다.
칼립소 여신의 예언대로 오디세우스의 귀향길은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그는 예전처럼 고난을 만나 회피하지않고 나름의 해결책을 찾아내 결국 고향땅의 아내와 아들을 만난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훗날의 어려움에 미리 겁먹고 불안할 필요가 없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기다리면 된다.
'고난은 변장된 축복'이라고 했다. 받아들여 어떻게 대응하냐에 따라 고난의 전개방향은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