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직장 시절인연에 대하여
어제 낮 오랫만에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해 술판을 벌였다.
작년 5월 내가 안전하게 수술할 수 있도록 병원을 알아보고 도움을 준 후배와 당시 마음의 안정을 찾도록 찾아와 다독여준 선배와 친구들이었다.
마흔 아홉에서 쉬흔 일곱까지의 사내 여섯이서 소주 네 병과 맥주 열 캔을 나눠 마시며 천천히 은근하게 취했다.
우리는 20여년전 일본계 회사 직장 동료였다. 직장 선후배의 공감대를 안고 지금까지 인연을 잇고 있다.
그 때는 두 시간만에 소주 스무 병도 거뜬했지만, 어제는 꼬박 네시간여를 함께 했지만 준비한 여섯 병도 다 비우지 못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물론, 당시 주당으로 한 가락했던 내가 지금은 물 주전자나 나르는 벤치 멤버로 물러난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따르는 술보다는 오가는 말이 많았다.
말은 꾸밈이 없고 솔직했다.
상황을 부풀려 과장하지 않고 일부러 작게 숨기지도 않는다.
작년의 사업성과와 올해 상황,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 좋으면 좋은 데로 나쁘면 나쁜 데로 이야기하고, 이야기하면 이야기 하는 데로 듣는다.
제대로 경청하니 말하는 맛이 난다.
솔직하게 꾸밈없이 이야기하니 듣는 맛도 있다.
미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입사가 늦었던 쉬흔살 후배는 지금은 연매출 삼백억대 제법 큰 사업체의 사장님이고, 내 부사수로 지방 출장을 함께 다니던 석이는 지금은 경기 남부에서 직원 넷을 데리고 부동산 사무실을 운영중이다. 석이와 함께 좌청룡 우백호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내 한쪽 편 어깨를 수호했던 마흔마홉의 헌이는 외국계 회사의 마케팅 이사로 근무하며, 중2 아들 자랑에 여념없는 팔불출 아빠다.
후배들은 각자 새 길을 찾아 떠나가 자리를 잡았는데, 대여섯살 세월을 더 산 선배들은 아무래도 젊은 후배들보다는 안정지향형이다.
당시 팀장이던 쉬흔 일곱의 윤무형은 수년째 1인 사업자로 유통회사를 꾸려간다. 이제는 오십보다 육십이 가까운 나이지만 그래도 흰머리 하나없이 꿋꿋하게 산다. 올해말 아들이 로스쿨에 진학하면 더 꼿꼿해질 것이다. 아들 교육과 인생 진로에 그만큼 애정을 쏟는 사람을 본 적이 없을 정도다.
나랑 동갑인 석호도 아들 교육에 진심인 친구다. 외아들이 SKY 대학보다 점수서열이 위에 있다는 의대에 입학한게 삼사년 전이었다.
다들 퇴사한 우리의 첫사랑같은 그 회사에 남아 임원으로 재직중이다.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했고, 당시 고급 일본어를 구사해 부러움을 사며 내 통역을 담당했던 친구다.
어제 술자리를 파하며 대리운전을 부르려다 잘 나가는 준우가 한마디 했다. "다음 모임은 제가 쏠께요. 12월초 호텔 부페로 모이세요."
내 핸드폰에는 거의 십여개의 단톡방이 있다. 혈연, 지연, 학연, 직장 등 여러 시절인연으로 맺어진 친목 모임의 대화방이다.
대화가 원활해 북적이는 방도 있고, 썰렁해 시무룩한 유명무실한 방도 있다.
카톡방의 북적임과 썰렁함을 가르는 차이는 딱 둘이다.
구성원의 자발적인 대화 참여 의지와 지속적인 대화 시도.
자발적으로 구성원으로 참여했다면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하기를 바란다. 그 대화가 삶의 위안이 되고 내 삶의 조언자로 역할하는 순간이 온다.
게마인샤프트(공동사회)와 게젤샤프트(이익사회)의 중간성격을 갖는 친목 모임은 의외로 힘이 쎄다.
때로는 가족보다도 가까이에서 위로하고 다독인다. 또한, 그들의 삶을 보고 들으며 내 삶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도움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