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엄마를 생각한다
어제 저녁을 먹는데, 마눌이 씨앗봉투를 내밀며 말한다.
"시장갔다가 씨앗 샀는데,
밥먹고 텃밭에 가볼까?"
집근처 시장통에서 각 2,500원에 구입한 열무와 상추 씨앗이라 했다.
올해 봄, 상추를 좋아하는 둘째가 직접 키워 먹어보고 싶다며 단지내 텃밭 신청을 제안했고 당첨되어 올 여름 몇 차례 수확물을 거두어 맛 본 적 있었다.
마눌은 남편 간병에 신경쓰느라 처음부터 탐탁치 않아했지만, "아빠가 시골출신이라 잘 할 수 있을거야. 걱정마렴." 내가 딸을 다독이자 딸은 호미를 주문하고 씨앗과 모종까지 준비했다.
호언장담했지만 나도 항암치료에 신경을 뺏겨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는 나몰라라 했다.
때마침 우리 동네 근처로 이사온 동서와 처제가 모종을 심었고, 틈틈히 둘째가 물을 주며 키웠다.
늦봄과 초여름 둘째가 학교 수업으로 시간을 못내면 가끔 내가 텃밭에 들러 물을 주곤 했다.
텃밭은 0.5평 크기였고, 10여 세대에게 비슷한 크기로 할당되어 있었다. 어떤 집 상추는 자리가 부족할만큼 왕성하게 자라고 있는 반면, 누구네 상추는 제대로 여물지 못하고 잡초만 무성한 채 시들어가고 있었다.
우리 텃밭은 상농은 아니더라도, 다행히 하농은 면한 수준이었다.
둘째가 "내가 키운 상추"라며 몇 번 뜯어와 샐러드로 먹었다.
어제밤 식사를 마치고, 2학기 개강에 맞춰 런던에서 귀국한 둘째와 텃밭을 찾았다.
한여름 덥다는 핑계로 줄곧 거실에서 걸었다. 오랫만에 찾은 텃밭은 가관이었다.
시골 엄마가 보셨더라면, 저 밭 주인은 저러고도 잠이 오나 모르겠다." 하셨을게다.
주변 나머지 텃밭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새로 심은 작물이 가지런히 줄맞춰 자라고 있는데, 1503호 팻말이 붙은 땅은 아직 뽑히지 못한 상추대와 함께 잡풀만 무성했다.
상추대를 뽑고 호미로 밭을 갈아엎으며 시골엄마를 생각했다.
시골출신이지만 나는 농사를 모른다.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아니, 엄마가 제대로 가르친 적이 없고,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적절할 듯하다.
자식은 공부해서 힘든 농사일 안하고 책상머리에 앉아 일하며 먹고살기를 바라셨을 게다.
어릴적 엄마는 항상 "밭매러" 간다고 했다. 시골의 봄, 여름 작물은 풀과 함께 자랐다.
풀은 제초제로 시들게 하거나, 낫으로 베거나 손으로 뽑거나 호미로 매거나 했다. 저녁무렵 가끔 엄마를 보러 밭으로 향했던 나는 엄마 손을 통해 제거된 풀을 밭옆으로 치우곤 했다.
한시간여 땀을 흘리니 제법 밭의 모양새가 갖춰진다. 내가 호미로 잡초의 뿌리까지 걷어내면 딸은 흙을 털어 쓰레기봉투에 잡초를 담는다.
사십여년이 지나 내가 엄마가 되고,
이젠 딸이 내 역할을 한다.
아, 이런게 가족이구나 싶다.
대를 잇는다는게 이런거구나 싶다.
내 눈앞에 보이는 현실,
나 혼자 내 힘으로 이룬 거 같지만,
음으로 양으로 부모의 힘으로 지금까지 자랐구나 깨닫는다.
작물이 농부의손끝에서 여무는 것처럼
자식의 성장도 엄마의 마음씀과 손길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올 가을 엄마 생신에는 꼭 딸을 데려가서 손녀딸 재롱을 느끼시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