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만이 살 길이다
표준치료를 마치고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집에 머무는 시간보다는 외부 활동이 많아지면서 가끔 내가 아직도 환자인가, 자문할 때가 있다. 그만큼 몸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
하지만, 아침 저녁으로 신경안정제인 케프라를 챙겨 먹어야하고, 두달 후에는 MR 촬영을 위해 병원에 가야 한다.
오년 후가 될지, 십년 후가 될지 모르겠지만 의료진의 관해 판정을 받을 때까지는 환자로서의 수칙을 지키며 지내야 한다.
암환자의 수칙으로 마음관리를 중시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나도 암진단을 받은 초기에는 유투브로 그 분들의 영상을 보며 마음을 다스렸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뜻의 '일체유심조'를 되새기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의 의미로 연결되는 제행무상의 가르침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일년이상 먹고-걷고-마시고-걷고의 루틴을 지켜오며, 몸과 마음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정신과 육체의 실체 및 관계에 대한 고민은 고대의 철학자부터 현재의 뇌과학까지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화두였다.
요즘 나는 마음관리의 중요성을 넘어 몸관리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먹고 싸는 일, 즉 신진대사 관리가 암환자의 근본적인 치료법이라 생각한다.
채식위주의 세 끼 식사와 충분한 수분섭취로 영양소를 공급받아 체력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몸을 움직여 장운동을 돕고 근력을 보강해 결과적으로 면역력을 키우는 일과 몸 속의 노폐물을 규칙적으로 배설하는 행위는 암환자 뿐 아니라, 인간 모두의 생존에 필수적인 기본 활동이다.
항암과정은 부작용으로 식욕부진을 동반하고, 불규칙한 식사는 체중감소로 이어진다. 체중이 빠지면 항암을 버텨낼 근력의 저하를 의미하기에 병원에서는 입맛이 동하는 음식은 가리지말고 뭐라도 열심히 먹기를 권한다.
하지만, 나는 뇌종양 제거수술 이후 십오개월을 지내오며 육식을 자제하고 달고 차가운 디저트를 멀리하는 식단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주변의 환우에게도 내 경험을 공유하려 한다. 나도 다른 환우에게서 반면교사의 방식으로 간절하게 권유받았기 때문이다.
방사선 치료를 위해 잠시 입원했던 암병원에서 만난 옆 방의 환우는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죽을 먹어도 계속 토한다고 했다. 수액을 맞으며 버티는 상황이었는데, 어느 날, "내 손으로 밥을 먹고싶다"고 했다. 먹어야 쌀텐데, 먹는게 없으니 소변조차도 나오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2년전 담도암 초기 진단을 받고 1년만에 완치판정을 받았는데, 다시 1년만에 재발했다며 과거를 아쉬워했다. 완치 판정을 받은 해방감과 1년동안 못 먹은 보상심리로 퇴원후 빙수를 열심히 먹었는데 찬 음식이 재발의 원인인거 같다며 음식관리를 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했다.
둘째 딸의 초등학교 학부모 모임에서 만나 지금까지 관계를 이어오는 마눌의 선배 언니는 '채식만이 살 길'이라는 식으로 채식을 강권했다. 그 분도 일년여 산속에 위치한 요양병원에 머물며 투병을 했는데, 당시 육식을 선호하던 주변의 환우는 모두 하늘로 떠났다고 했다.
육식이 아니라도 단백질을 보충하는 방법은 많다. 계란과 두부, 청국장 등을 자주 먹고 매일 랏또를 챙겨 먹는다. 특히, 랏또는 장운동을 돕기에 일석이조의 식단이다.
고기를 먹더라도 한 끼에 다섯 점 이상 먹지않고, 채소에 듬북 싸서 먹는다. 일주일에 두번 이상 먹지 않고, 연달아 먹지 않는다.
내 식단은 마눌이 관리한다. 조선시대 임금께 올라가던 밥상에 독약유무를 검사하던 수라간 상궁마냥 마눌은 철저하다.
때론 지나치다 싶어 타박을 해도 마눌은 꿈쩍하지 않는다.
흔들리지 않는 식단관리의 그 원칙이 나를 살리고 있다.
새삼 마눌님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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