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소설 분지 발표 60년
어제 저녁, 저자 최진섭의 남정현 평전 '남정현의 삶과 문학' 출간기념회에 다녀왔다.
남정현 선생님은 1965년 풍자소설 '분지'를 발표한 소설가로, 대학친구 진희의 아버님 이시다.
암환우인 진희가 두세달전 다른 동기들과 함께 집근처에서 차 한잔 하면서 분지 발표 60주년에 맞춰 9월초 아버지 평전이 출간된다는 얘기를 했다. "출판기념회가 있다면 꼭 초대하렴" 이런 얘기가 오갔는데, 우리 부부 외에도 여러 명의 친구가 참석했다.
작가와 독자와의 만남같은 일반적인 출간기념회와는 성격이 달랐다.
선생님과 동시대를 살았던 문학계 후배들과 노혁명가를 연상케하는 한 세대 연상의 어른들도 여럿 계셨다.
행사는 사전 준비된 스케쥴대로 두시간여 알차게 진행되었고, 살아생전 선생님의 약력과 인품, 작품세계 등이 후학과 가족들의 입과 영상을 통해 전달되었다.
반미문학의 최고봉으로 평가되는 풍자소설 '분지'는 한자어 그대로 '똥의 땅'의 의미다.
서슬퍼런 군사독재의 엄혹한 시기에도 선생은 푸르른 세상을 꿈꾸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일제 식민지 통치 36년후 해방을 맞이했지만, 그 땅은 아직 민중의 땅이 아니었다. 미군정후 반공을 국시로 한 독재정권이 세워지고 온갖 부정부패로 민중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4.19 혁명으로 이제 새 세상이 오나 싶었는데, 다시 5.16 군사쿠테타.
일본의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해 독점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속성을 이해했던 선생은 당시 군사독재정권의 배후에 미국이 있음을 간파하고, '반미' 주제의 작품이 불러올 위험과 파장을 예상하면서도 알레고리(비유)의 방식으로 소설을 발표했다고 한다.
출판기념회 외빈으로 초대된 어떤 분이 말씀하셨다. 양희은의 '늙은 군인의 노래'가 어울리는 노투사 셨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와는 다르겠지만 지금도 서구 열강의 패권이 국제질서를 좌지우지 합니다. 외교는 자주권이 핵심입니다. 실용도 좋지만 국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내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분지 발표 60년, 두 세대의 세월이 지났으니, 이제는 더 이상 우리가 이 땅을 '분지'로 느끼며 살게 하지 말라는 호소였다.
나이든 사회운동가의 축사를 들으며 생각한다.
나이들면서도 이익에 물들지않고 사익이 아닌 공익의 굳은 심지를 지키며 사는 삶은 아름답다.
맹자도 '인은 사람의 마음이요, 의는 사람의 길'이라 했다.
하지만, 나는 환자요, 속세에 물든 소시민이다. 나는 나대로의 길이 있다.
인과 의를 멀리하지 않되, 의에 집착해 생각의 문을 닫아서는 안된다는게 요즘 내 생각이다.
방송에서 노자를 강의하던 최진석 교수는 정치적 신념, 종교적 믿음, 도덕적 확신을 경계하라고 말했다.
생각의 문이 닫히면 늙는다.
열린 생각을 유지해야 젊게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