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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 고열증 사례를 통해 본 의료 사고의 불가항력성

안녕하세요, 의료소송 간호사 선명입니다.


오늘은 악성 고열증으로 상담하신 의뢰인입니다.


*본문에 기재된 사례는 실제 접한 사례를 특정 개인이 식별되지 않도록 각색하였습니다.




얼마 전 뉴스에서 악성 고열증으로 수술 중 사망한 사건에 대한 기사를 접했습니다. 유족 측은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결국 패소하고 말았습니다. 그 기사를 보며 과거에 상담했던 한 의뢰인이 떠올랐습니다. 그분은 자녀가 악성 고열증으로 사망한 사례였습니다.



"자녀가 다리 골절로 수술을 받았는데, 처음에는 부분 마취만 한다더니, 수술 중 열이 급격히 오르고 결국 대형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사망했습니다. “



의뢰인과의 첫 통화에서 저는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수술 중 혈관을 잘못 건드린 건가, 혹은 약물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 때문일까? 많은 고민이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의뢰인을 만나고 의무기록을 확인하는 순간, 모든 의문이 풀렸습니다.



'아, 이건 악성 고열증이구나.'



악성 고열증은 흡입마취제를 사용하는 전신 마취 중 발생하는 희귀한 합병증입니다.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전신 마취 환자 60,000명당 1명꼴로 발생합니다. 그러나 가족력이 있는 경우 그 발생 확률은 10,000명당 1명으로 올라갑니다. 그만큼 매우 희귀한 질환입니다. 저 역시 수술실에서 5년 7개월을 근무하면서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합병증입니다.



이 합병증은 초기에는 원인 불명의 빈맥과 급격한 체온 상승으로 나타납니다. 체온은 무려 40도를 넘어서며, 근육이 경직되고, 심각한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악성 고열증이 발생하면, 수술과 마취는 즉시 중단되어야 하며, 체온을 내리기 위한 다양한 조치들이 필요합니다. 얼음주머니나 차가운 정맥 주사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체온을 낮춰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조치는 ‘단트롤렌(dantrolene)’을 투여하는 것입니다. 이 약물이 체온 상승을 막는 데 필수적이지만, 워낙 드문 합병증이다 보니 단트롤렌을 구비하지 않은 병원도 많습니다.


(실제로 어떤 병원에서는 단트롤렌을 구비한 사실을 병원 홈페이지에 게시할 정도로 희귀한 약물입니다.)



의무기록을 모두 살펴보니, 이 병원은 필요한 조치들을 다 취했습니다. 악성 고열증을 의심하자마자 모든 수술과 마취를 중단했고, 체온을 내리기 위한 여러 방법을 시도했으며, 단트롤렌을 보유한 병원을 수소문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했습니다.



하지만 의뢰인에게 차마 할 말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의뢰인은 자녀가 어떤 의료사고로 사망했는지 알고 싶어 했지만, 그 답이 의학적 과실이 아닌, 단순히 희귀한 마취 합병증이라는 사실을 전해야 했습니다. 그분께서는 이 사실을 납득하셨지만, 어디에 이 억울함을 풀어야 할지 모른다고 토로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저 또한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과실이나 의료진의 실수가 아닌, 그저 발생 가능성이 극히 낮은 희귀한 질환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의 고통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요? 악성 고열증과 같은 희귀한 합병증에 대한 대처 시스템이 빨리 마련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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