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WD의 매력 제대로 발휘한 코란도 대관령 여행기
이번 겨울에 한두 차례 함박눈이 내리길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바람입니다. 하지만 눈이 내리는 도심의 상황들이 썩 달갑지 않은 것은 그로 인한 일상의 불편함이 이만저만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낭만에 초 치는 소리부터 했지만 일부러 찾아간 길이라면 눈길 운전도 즐거울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상황에 어울리는 차와 운전 실력이 필요합니다.
한국인이라면 눈과 함께 떠올리는 몇 곳이 있습니다. 그 중 최고는 강원도 대관령입니다. 전국 어디서나 접근이 편하고 동해바다가 지척이라 한 번의 여행으로 다양한 경험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곳에는 일반인이 평소에 경험하기 어려운 아니 국내에 흔치 않는 드넓은 고원 구릉이 조성되어 있고 그 모습은 계절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합니다.
겨울철 드넓은 눈밭도 매력적이어서 이는 지금 이곳을 찾아가야 할 이유입니다. 사랑하는 이와 눈밭을 뛰어다니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짜릿합니다. 또는 지척의 백두대간을 향해 잘 지내요? 난 잘 지내요!라며 혼자 감동에 빠질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현실의 모습은 조금 다를 겁니다. 아이들이 던지는 눈덩이를 몸으로 받아내거나 강추위와 강풍에 차 밖으로 나가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험도 결국엔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겁니다.
대관령에는 몇 개의 목장이 운영 중이고 구체적인 내용은 서로 다르지만 테마는 비슷합니다. 또 대부분이 일반인이 쉽게 방문할 수 있도록 진입도로와 주차장을 정비하고 나름의 즐길 거리를 준비해두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이번에도 대관령 삼양목장과 대관령 양떼목장을 선택합니다. 그것은 25년 넘게 꾸준히 다니면서 쌓은 추억에 대한 이끌림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규모입니다. 별도의 프로그램이 없더라도 자연은 크기 자체로 감동이기 때문입니다.
출발 당일 새벽에 대관령에 눈이 내립니다. 적설량은 15밀리미터 정도라 우려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곳의 기상은 늘 역동적인 데다가 해발 850에서 1100미터에 이르는 고산지대는 경사로가 많은 터라 도착할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습니다. 다행인 것은 애초에 눈길 주행을 염두 해 이번 여행은 코란도 4WD 차량과 함께했고 아울러 스프레이 체인, 야전삽 등의 가벼운 월동 품목도 함께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관령 삼양목장에 도착하니 직원이 매표소 아닌 입구에서부터 차를 세웁니다. 뭔가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원주 인근을 지나자 도로에서 눈, 염화칼슘, 흙이 뒤섞인 오염물이 튀어 오르기 시작합니다. 간간이 제설차가 경광등과 사이렌을 켜고 오가는 것이 보이는데 새벽에 내린 눈을 치우고 도로에 염화칼슘을 뿌리는 것입니다. 덕분에 전방 창의 오염이 더해져 워셔액을 뿌리고 닦아내지 않으면 주행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새벽에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 공기 중 수분이 차장에 닿으면 얼어버릴 정도인데 거기에 에탄올 성분을 뿌리며 달려야 합니다.
나는 아침식사로 이 지역 특산물인 황태 해장국을 선택합니다. 다만 횡계 시내 대신 직전의 평창휴게소에서 먹는데 이유는 동선 때문입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열면서 횡계에는 외곽 순환도로가 만들어졌고 이제는 굳이 시내를 통과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 음식과 관련된 오래된 기억 하나를 떠올려보면 대관령 삼양목장 안에는 게스트하우스와 식당이 있었습니다. 당시 나는 뉴 코란도를 몰아 소황병산을 한 바퀴 돌고 그곳에 들러 황태국을 먹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백두대간 안으로 들어갈 수 없고 게스트하우스도 없습니다.
앞서 대관령 삼양목장 입구에 직원이 나와 차를 세웠다고 전했는데 눈 때문입니다. 길이 미끄러워 차로 올라갈 수 없다고 합니다. 다만 오후에는 가능할 것 같으니 전화로 상황을 확인해보고 다시 오라는 설명입니다. 일단 폐쇄된 것은 아니라고 하니 우리 가족은 가벼운 마음으로 눈싸움 한판하고는 대관령 양떼목장으로 향합니다.
양떼목장 가는 길은 과거 횡계 요금소에서 대관령 휴게소를 잇는 영동고속도로의 끝 단이었습니다. 하지만 대관령-강릉 구간을 잇는 터널들이 개통되면서 지금은 관광도로처럼 쓰입니다.
대관령 양떼목장을 가려면 차는 옛 대관령 휴게소 상행선 주차장에 세워야 합니다. 내가 한참 이곳을 다녔을 때는 차를 몰아 목장 안까지 들어갔기에 편했는데 방문객이 몰리면서 지금은 외지 차량의 통행이 금지됐습니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주차장은 한산합니다. 더구나 새벽에 내린 눈은 아직 녹지 않아 차선도 의미 없습니다.
양떼목장까지 올라가는 경사진 길은 이미 말끔히 치워져 있고 목장 내부만 눈길입니다. 나는 여기서 5년 전, 무릎까지 쌓인 눈길을 목장 직원들과 함께 헤치며 들어갔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참고로 양떼목장 입장료는 성인 6000원, 어린이 4000원이고 65세 어르신, 장애우 등은 무료이며 단체의 경우 할인됩니다. 입장은 오전 9시부터 고 퇴장 시간은 따로 없지만 오후 4시에 매표를 마감하고 해가지면 폐장됩니다. 입장료에는 작은 바구니에 담긴 건초가 포함되는데 이것을 양에게 줄 수 있습니다. 지난달 가족여행으로 다녀온 남해상상양떼목장과는 여러 가지로 비교됩니다. 같은 기간이라도 기온 차가 심한 두 곳의 양 먹이주기 체험은 영 딴판입니다.
잠시 머물다가는 관광객들에게 양은 귀여운 존재지만 이 녀석들은 까다로운 가축 중 하나입니다. 이날 양 축사 안쪽에서는 소독과 숫양 분리 작업이 진행됐는데 2004년 이곳이 일반인에게 개방된 이래 수십 차례 방문한 나도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이는 새끼 양과 암양 사이에서 수놈을 분리하는 것으로 아무리 전문가라도 힘든 작업인 것이 우선 이 녀석들의 암수 구분이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 녀석들은 보기보다 힘이 쎄 잡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안 잡히려고 발버둥 치던 수놈은 일단 잡혀 누워지면 마치 곰 인형처럼 쥐 죽은 듯 가만히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양 먹이 체험을 마치고 언덕 위, 양들의 산책로에 오릅니다. 이곳에는 대관령 양떼목장의 상징인 사료창고가 있습니다. 나는 늘 이것을 화면 가운데 두고 계절의 변화를 사진에 담곤 합니다.
이번에는 산책로 넘어 경사로 밑까지 내려갔는데 이유는 눈덩이 때문입니다. 자연의 손길인지 아니면 누군가 굴려놓은 것인지 정체를 알 수는 없는 십여 개의 눈덩이가 나를 부릅니다. 처음에는 영화 겨울왕국에 등장하는 트롤을 떠올리며 사진에 담을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하는데요. 이미 충분히 많은 눈덩이가 있어 작업은 5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잠시 후 아이와 아내도 언덕을 내려와 눈사람 장식을 돕고 언덕 위에서 서성이던 사람들도 무슨 일인가 하고 하나둘씩 내려옵니다.
20분의 작업 끝에 눈사람이 만들어집니다. 잠시 후에 그곳에 다시 가보니 사람들이 눈사람을 앉고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우리 가족이 양떼목장에 또 하나의 핫플을 만든 셈입니다.
올해 양떼목장에는 그럴듯한 휴게실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안에는 장작난로와 기념품 판매점까지 갖춰졌습니다. 우리 가족은 여기에 앉아 따스한 차를 마시며 대관령 삼양 목장에 전화합니다. 그 결과 동해 전망대 통행이 가능하다고 하니 서둘러야 합니다. 짧은 겨울 해가 남쪽에서부터 기울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대관령 삼양목장으로 올라가는 도로는 오전과는 다릅니다. 차가 지난 길은 눈이 녹아 다소 질척거리지만 아무 문제 없습니다. 어려움이라면 붐비는 차입니다. 매표소 두 개를 모두 열었지만 10분 정도 기다려야 입장 가능하고 목장 내에서도 몇몇 핫 스폿은 좌우에 정차된 차로 인해 교행이 불편할 정도입니다. 휴일에 이곳에 와본 적 없는 나는 조금 놀랍니다. 장점도 있습니다. 겨울 대관령 삼양 목장의 볼거리는 눈이 전부인데 덕분에 드넓은 눈밭에 사람들도 한 몫 합니다.
지난해 2월, 이곳에 왔을 때는 렉스턴 스포츠를 타고 왔던 터라 쌓인 눈을 넘어가 보기도 했지만 코란도로는 어림없습니다. 대신 날이 포근하고 새벽에 덧 쌓인 눈으로 인해 썰매 타기에 좋은 환경입니다. 마침 적재함에 싣고 온 썰매가 빛을 발하는 순간입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서울에는 아직 눈다운 눈이 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올해 초에 여기까지 왔다가 썰매를 못 탔던 아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4시간 동안 골아 떨어질 정도로 신나게 미끄러지고 썰매를 끌고 올라가기를 수십 차례 반복합니다. 나와 아내도 덩달아 신나게 달렸는데 나중에 몸이 쑤실 정도입니다.
일행은 해발 1140미터, 동해 전망대에서 내려오는 길에 먹이주기 체험장을 방문합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5월에서 10월 사이에 이곳을 방문하면 방목된 젖소, 양 등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주중 13시와 15시 또 주말 11시, 13시, 15시 정각에 양몰이 공연도 진행되는데 겨울에는 먹이 체험만 가능합니다. 우리 일행은 앞서 양떼목장을 다녀온 터라 타조 사료를 구입하는데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타조의 쪼는 힘이 강해 체험 과정에서 사료가 든 바가지를 놓칠 수 있으니 꼭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관해서 나와 딸아이는 이미 체험한 바 있는데, 몇 년 전 다른 곳에서 타조가 사진기 렌즈를 쪼아 필터를 깨뜨린 일입니다.
처음에는 아이가 먹이주기를 시도했는데 체험 중간에 타조가 쪼는 힘 때문에 3분 1을 쏟아버리고 이후에는 내가 합니다. 하지만 이런 긴장감에 우리는 더욱 즐겁습니다.
한편 대관령 삼양목장은 백두대간 안에 위치해있어 차량 통행에 제한이 있습니다. 따라서 4월 말에서 11월 초까지는 광장과 동해전망대 사이를 수시로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합니다. 도보와 자차 이동은 동절기에만 가능합니다. 이는 겨울 방문의 특별합니다.
참고로 대관령 삼양목장 입장료는 대인 9000원, 생후 36개월 이상 초중고교생은 소인 요금으로 7000원이며 경로 우대, 경증 장애우와 중증장애우 보호자 1인 등은 5000원에 입장 가능한데 중증장애우 등은 무료입장입니다. 운영시간은 11월에서 익년 4월까지 동절기에는 오전 9시에서 오후 4시까지 이외 하절기에는 8시 30분에서 17시 30분까지입니다.
삼양목장 방문을 마치고 고속도로에 접어드니 시간은 이미 오후 3시입니다. 겨울 해는 이미 붉은색으로 변했고 주말 정체를 피하려면 서둘러 귀경해야 할 시간입니다. 하지만 중간에 평창 휴게소에 들러 황태구이 정식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또 이어지는 피곤함에 졸음쉼터에서 30분 이상 졸아 결국 4시간 걸려 집에 도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