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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티노 쿠마 May 11. 2023

시코쿠(四國)오헨로 순례
(2부-12화)

열락(悅樂)의 꽃

12. 12일째(39번 절– 열락(悅樂)의 꽃이 피다     

1월 20()     


사찰에 비가 내린다.

오늘 하루 종일 비가 올라나.

아침 7시부터 납경소가 오픈하는 것에 맞춰 단체 순례객들이 왔다. 료코초(납경장)가 산더미같이 쌓인다. 

1권 당 300엔이니 절수입도 만만치 않을 것같다.    

 

하천변을 따라 가는 길이 제법 길다. 비가 약간씩 오면서 또 그치려는지 산안개가 마을까지 내려와 감싸준다. 



마츠도오게 가는 도중에 있는 휴게소가 마을을 닮아 정갈하다. 

전깃불도 들어오고 물도 있어 많이 머물 장소 같아 보인다.         

방금 마츠도오게를 넘어 내려온 독일 순례자를 만났다.    

37세라고 하는데 대학생 같다. 영어로 된 지도를 펼쳐들고는 자기가 거친 곳 중에 유익한 정보를 한가득 알려줬다. 그중 미소노도 있었다. 쾌활한 미소노 아줌마, 이분하고 영어로 꽤 수다 좀 떨었을 것 같다. 이분은 텐트 대신 보호천막 같은 걸 휴대하고 다니면서 트인 휴게소에 바람막이 면을 만들어 잔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무게도 약간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방법일 듯.


신조야마 산고개에 올라 뒤돌아보니 멋진 전경이 펴쳐져 있다. 

여기가 에이메현에서 고치현으로 넘어가는 도경계인 듯.

그리고 가는 방향쪽으로 역시 멋진 바다 풍경이 압도적이다. 

뒤에서는 바람소리가 매서운데 앞쪽으로는 환한 햇살이 쏟아져내린다.                            


슈쿠모로 내려가는 길을 보니까 장난이 아니다. 여긴 순방향의 산길이 역방향보다 더 힘들겠다. 해발로 따지니 더 높이 올라와야 할 것이다. 그래서인가 마을 소학교 학생들이 그린 그림과 글이 새롭다. 그 마음이 착하다. 작년 10월 작성으로 되어 있으니까 따끈하고 신선한 그림들이다.  

               


산아래로 내려오다보니 대규모 귤농장이 눈에 띈다. 

땅에 떨어진 귤을 까먹는데, 시코쿠에 와서 먹어본 귤 중 가장 맛있는 걸 먹었다. 

겉면을 보면 깨끗하지 않아 맛이 별로일 것 같은데 진짜 맛이 좋았다. 

어디서 귤 사 드실 때 이런 귤을 사 드시라고 권하고 싶다. 슈쿠모의 귤 제법 맛이 좋다.    


겨울 시코쿠 순례의 진수라고 하면 땅에 떨어진 귤이 많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것과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하는 오후로(목욕). 오후로로 말할 것 같으면 온몸의 피로를 싹 가시게 하여 다음날 거뜬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묘약이 아닐까 싶다. 

                             

이제 그림자가 길어지는 시간이다.     

해질 무렵엔 늘 그렇듯이 허전해지는데 오늘따라 

더 그런 건 이번 여정의 1단계를 마무리 짓는 시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일부터 4일간 아내와 합류하여 일부 구간의 절을 순례한다. 

그래서 내일 새벽 차로 절 가까이에 있는 히라다역에서 승차해서 나카무라-고치-고토히라를 거쳐 다카마쓰 공항으로 아내를 마중하러 간다. 

비용이 거의 만엔이라 지난번 마쓰야마에 들렀을 때 시코쿠레일패스 4일짜리를 끊어놓았었다. 만오백엔.(서울에서 구입하면 500엔이 오히려 더 저렴하다). 

아내와 함께 다닐 때는 기차 타는 기회가 많을 것같아 이왕이면 레일패스가 좀더 경제적일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5시 5분전에 39번 절 엔코지에 도착.

마지막 단체 순례객들이 이제 막 하산하고, 납경소 문도 닫으니 경내가 조용하다. 

왜가리 한마리가 홀로 산사를 지킨다.                            



오늘 하루 고통스러운 

발걸음이었지만

발가락에 열락의 꽃이 피었다.

밤하늘에도 

열락의 꽃이 떠오른다. 

오늘이 보름이네.  

             









저녁 8시부터 히라다 역은 무인역으로 대합실은 나만의 거실로 바뀐다. 

오고가는 사람이 없어 책읽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약간 춥기는 했으나 33번 절 세키지 츠야도에 비하면 따뜻한 편이다. 

서울이 추우면 이곳도 약간 추워진다. 

5분 거리에 24시간 편의점이 있어 두어 번 왔다갔다 하면서 끼니도 때우고 몸도 녹여가며 밤을 지샌다.     

40분 정도 잤나? 시코쿠에 와서 또 이런 경험을 해보네.                        

히라다 역 대합실


다음날 새벽 5시 43분, 다카마츠를 향하여.         

히라다(平田) 역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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