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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날 Jun 03. 2020

[독서일기] 축적의 길, 이정동

삽질 신공이 터널의 빛을 만들어낸다

한 나라의 높은(특히 세계적으로 손꼽히게 높은) 건물은 유명 관광지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그 중 서울의 롯데월드타워, 쿠알라룸푸르의 쌍둥이 빌딩, 두바이의 세계 최고층 빌딩은 우리나라 기업이 수주를 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는 나는 우리나라의 건축 수준이 세계의 반열에 오른 것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높은 건축물들은 세계적 다국적 기술의 집약체로 불린다고 한다. 예를 들면, 초고층 건축설계와 구조설계는 미국, 무거운 무게의 콘크리트를 버틸 수 있는 토목설계는 영국, 풍동 설계는 캐나다의 기업이 했다고 한다. 밑그림, 즉 설계도는 세계적 다국적 기업이 그린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개념설계를 할 때 핵심 자재와 구매처까지 지정하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부분이 설계도에 종속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치 우리나라 중소기업 위에 대기업이 있고, 대기업 위에 선직국의 개념설계 기업들이 있는 모양이다. 


우리나라는 꽤 오랜 시간 저성장의 터널 속에 갇혀 있다. 왜 일까? 환하게 밝아오는 터널 출구를 찾지 못하고 오랜 시간 같은 자리에서 맴도는 이유가. 서울대학교 이정동 교수는 이 질문에 ‘개념설계 역량의 부재’라고 답한다. 즉, 밑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의 부재인 것이다. 한국 산업계는 실행역량은 강하지만 개념설계 역량이 부족하고, 개념설계역량을 얻으려면 도전적 시행착오 경험을 꾸준히 축적해야 한다고 말한다. 개념설계역량은 시행착오를 꾸준히 축적해 나가지 않으면 얻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정리한다. 


Q. 잘못 서술된 조리법을 선택하시오.

① 깍두기를 담글 때 무는 3㎝ 크기로 팔모썰기를 한다.

② 미역국을 끓일 때 미역은 찬물에 불려 4㎝ 길이로 썬다.

③ 도라지 오이생채에 들어가는 도라지는 6㎝ 길이로 얇게 찢어 소금을 넣고 주물러 씻는다.

④ 감자볶음을 할 때 감자는 0.5㎝, 당근과 양파는 0.3㎝ 두께로 채 썬다. 229p


이 문제는 2015년 중학교 2학년 가정 교과 시험 문제라고 한다. 우리의 교육이 매뉴얼에 따라 성실히,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 실수 없이 실행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많은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상에는 공통으로 ‘창의적’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수 많은 인재들은 같은 방식의 정해진 교육을 받았고, 같은 자격증으로 자신의 능력을 준비한다. 이러한 우리의 환경은 취업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같은 잣대로 평가한 신입사원들을 만들어낸다.

 

스마트해진 업무 환경에서 신입사원들은 선배가 기안한 문서를 쉽게 검색해볼 수 있고, 숙련된 Ctrl+C, Crtl+V 신공으로 업무를 배운다. 이렇게 완성한 업무 스킬은 고스란히 후배사원에게 정답처럼 전달된다. 신입사원들은 자신의 의견을 말할 기회를 찾지 못하고, 선배의 생각과 방법이 정답이라고 굳게 믿는다. 당연하다는 듯이 더 쉽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나는 함께 일하는 팀원들에게 직장 생활에 있어 나만의 삽질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직접 부딪히고, 실수를 반복하면서 필요한 체크 포인트를 찾고, 고민에 고민을 더해가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을 알아나가는 것, 그렇게 자신만의 암묵지를 쌓아나갔으면 하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른 사람의 고민은 절대 나의 고민이 될 수 없고, 다른 사람의 경험은 절대 나의 경험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일을 통해 직접 깨달았으면 한다. 자신이 고민해보고, 실수해보고, 해결해보아야 나의 실력이 되는 것이다. 


이는 책에서 강조하는 축적의 시간과 다르지 않다. 개념설계를 위한 시행착오의 경험은 결국 사람에게 암묵지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한 기업의 성공 방식은 쉽게 베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고민과 실패의 시간을 통한 경험은 따라 할 수가 없다. 책에서는 개념설계를 위한 생태계 전환은 퍼즐 한 조각이 아니라, 전체 판을 바꾸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맴돌고 있는 이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우리 사회의 틀을 바꿔나가는 고민이, 그리고 내가 속한 회사의 틀을 바꿔나가는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남들이 하지 못한 시행착오의 경험을 오래도록 축적할수록,그래서 그 분야에서 초절정 고수가 될수록, 역설적으로 새로운 산업을 열어갈 힘이 커진다.” 109p


2019.03.15. 즐거운 일터를 만들고 싶은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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