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에서 다시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
추억과 애수가 맑은 햇빛 속에서 반짝이는 거리
위대한 역사를 기억하는 아름다운 광장과 골목들
세상 수많은 예술가들이 사랑한 멜랑콜리의 성지, 리스본
"여기, 땅이 끝나고 다시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책 표지가 예쁘다. 좁은 언덕을 오르는 노란 작은 전차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 <꼬마버스 타요>에 나오는 라니 같기도 하다. 라니처럼 윙크하는 커다란 눈을 전차 앞에 그려주고 싶은 마음에 나도 책을 들고 괜히 한번 윙크를 해 본다.
우리 가족은 여행을 좋아한다. 특히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의 고생스러운 해외여행을 즐겨한다. 아이가 어릴적에는 방학마다 국내로 가족 여행을 다녔고, 초등학생이 되고 나서야 아이와 함께 하는 해외여행을 시작했다. 아이가 어릴 적 주말가족이었던 우리에게 여행은 긴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의미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아이의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이면 가족 해외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1년에 한 번은 유럽을 여행지로 선택한다. 못하는 영어를 당당하게 이야기해도 부끄럽지 않아 마음 한 켠이 푸근했고, 특별히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멜랑콜리한 예술의 느낌이 가득한 그곳에선 우리의 시간도 더 풍성해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유럽 여행을 떠날때마다 풍월당 문화 예술 여행 책을 찾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워졌다. 작가가 소개하는 장소의 사진도, 설명도 한 나라의 도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여행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올려주는 것이 좋았다.
2017년 겨울 가족과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기에 포르투갈은 내 마음의 여행 순서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코로나로 여행을 가지 못하는 요즘, 아침 출근길에 마주하는 매일 매일 다른 모습의 구름을 올려다보면서 박종호 작가의 예술 여행책이 그리워졌다. '만약 당신이 단 한 번만 리스본에 갈 수 있다면'이라는 책 뒷면의 문구는 리스본행 항공권을 검색하게 했다.
언덕의 도시, 항구의 도시, 빵과 과자의 도시, 전차의 도시, 특별한 매력이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서 더 궁금해지는 도시 리스본. 포르투갈의 언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2억 5000만명 정도라는 것은 더욱 놀랍다. 그래서 '포르투갈 사용국 공동체(CPLP)'라는 국제기구도 별도로 조직되어 있다고 한다. 리스본은 포르투갈의 수도이면서,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나라들의 문화와 예술을 선도하는 문화적 수도인 셈이다. 한국의 K-POP이 인기를 끌면서 한국어 학습 열풍으로 이어지듯이, 한 나라의 언어와 문화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책을 보면서 유난히 건축물 사진이 인상적이었던 건 그래서일까. 아름다운 건축물이 많은 스페인 여행에서 가졌던 느낌을 포르투갈에서도 찾아보게 된다.
여행에 있어 대단한 유명세를 타는 곳이 아니었기에 별 거 없을거라 생각했다. 고작 소설 제목 <리스본행 야간열차>만 알고 있는 나는 포르투갈이 어떤 나라일까, 리스본이 어떤 도시일까 궁금했다. 책을 덮고 난 지금, 건축물 사진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특별한 관람 장소가 많은 것보다 이야기가 많은 곳일 것 같다는 상상을 해 본다. 무언가 모를 이야기를 담고 있을 도시 리스본, 그곳에 가면 바쁜 관광이 아닌 도시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가져본다.
여기,
땅이 끝나는 곳,
그리고 다시 바다가 시작되는 곳
- 포르투갈의 시인 '루이스 드 카몽이스'의 시 한 구절
"끝은 없다. 땅이 끝나면 바다가 시작된다. 끝에 다다르면 새로운 시작이 있다."
만약 내가 단 한 번만 리스본에 갈 수 있다면, 땅이 끝나는 그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마주하고 싶다.
- 2020.10.12. 일상을 여행하는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