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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날 Feb 07. 2021

[독서일기] 헤세, 정여울

헤세와 함께라면

헤세와 함께하는 시간은 아무런 해가 없는 진정제를 투여받는 시간이었다. 독한 치료제가 아니라 지금의 아픔을 가만히 누그러뜨리는, 마음의 진정제가 나에게는 헤세였다. 헤세가 심리학을 전공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모든 작품세계는 심리적 치유 효과를 자신도 모르게 지향하고 있다. - prologue 중에서


세상에, 프롤로그만 읽었는데도 행복한 기분이 드는 건 왜 일까. '바로 지금,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하여'라는 부제처럼 나에게도 그런 시간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으로 그녀가 들려주는 헤세의 삶과 작품 이야기를 소리내어  읽어본다. 독일 남부에서 출발해 스위스까지 그녀가 안내하는 여정속에서 나는 여행의 시간이 가지는 설레임을 기억해내고, 그 안에서 지친 시간을 토닥토닥 다독이고 있는 나를 끄집어내본다. 반 고흐 박물관에 가서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보고 오라고 나의 등을 떠밀어 준 책 <빈센트 나의 빈센트>가 전해준 느낌과 묘하게 오버랩 되면서, 나는 다시 한번 독일을 가야 할 이유를 찾았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에게, 인문학적 질문과 사색의 테마를 가진 여행을 꿈꾸는 나에게, 정여울 작가는 한 권의 책으로 딱 내가 꿈꾸는 여행의 시간을 선물해준다. 내가 왜 정여울 작가의 책, <빈센트 나의 빈센트>, <헤세로 가는 길>을 좋아는지, 책 <헤세>를 읽으면서 그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우울과 불안으로 방황했던 고흐와 헤세의 느낌이 묘하게 닮았다는 생각이 순간 순간 들었다. 정여울 작가는 고흐의 그림에서, 그리고 헤세의 글을 통해 혼자라는 외로움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데 빈센트 반 고흐와 헤르만 헤세의 작품이 껍질을 깨고 알에서 나오는 데미안의 이야기처럼 많은 물음표와 느낌표를 가져다 준 것 아닐까.


나에게는 고전이 갖는 특별한 무언가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고전을 많이 읽으면 왠지 나의 교양도 더해질 것 같았고, 나의 삶도 지금보다 더 풍성해질 것 같았다. 분명 조금 더 지혜롭게 나이들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에게 고전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먼 당신이었고, 나의 동경과 마음의 거리는 멀지만, 책 <헤세>를 읽고 있으면 그의 작품들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들 수 밖에 없다. 도주에서 방랑으로, 방랑에서 순례로 이어지는 헤세의 삶과 문학. 그 흔적을 따라가며 들려주는 헤세의 삶과 작품 이야기는 지금 그 곳의 사진들이 더해져 헤세를 만나러 떠나고 싶어지고, 어느새 나도 헤세의 집 정원에 놓인 작은 나무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책을 읽는 나를 만나는 상상을 하된다.


때로는 삶이 우리에게 너무도 가혹하고 불친절하게 느껴지고, 나이 듦이 무작정 두려워지는 순간이 많지만, 나는 헤세로부터 흐르는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그 방법은 바로 문학과 예술과 자연을 항상 물처럼 공기처럼 내 곁에 두는 진지하고도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문득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일까'하는 조바심이 들 때마다 나는 헤세의 작품을 찾는다. 나는 헤세의 글과 삶과 작품 속의 주인공들을 통해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시간에는 결코 '늦음'이란 없음을 배운다. <수레바퀴 아래서>를 통해 모든 인연을 첫사랑처럼, 첫 만남처럼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우고, <데미안>을 통해 아무리 읽고 또 읽어도 신비와 새로움을 잃지 않는 문학작품의 마법을 배운다. 마주치는 모든 존재 속에서 사랑과 희망의 조짐을 보는 것, 그것이 내게는 나이 듦에 굴복하지 않는 생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일상 속의 마음 챙김 비법이다. 헤세를 통해 나는 점점 '나다운 존재'가 되어간다. 헤세를 통해 나는 단지 더 좋은 작가가 아니라 더 아름다운 삶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진다. - prologue 중에서


헤세와 함께라면, 나다움을 찾을 수 있을까.

헤세와 함께라면, 나를 찾아가는 길이 보일까.

헤세와 함께라면...


2021.02.05. 일상을 여행하는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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