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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멀스멀 Mar 26. 2019

결혼은 지옥이다

만국 공통의 오지랖 질문들

 살다 보면 정 넘치는 주변인들이 번번이 질문을 건넨다. 이들은 때때로 가족이나 친지의 이름으로, 친구나 동료의 이름으로, 혹은 택시기사님 같이 생면부지의 낯선 이름으로 다가온다. 물론 나도 궁금할 때가 있지만 주로 주변인들이 더 궁금해하는 주제는 결혼이나 진로 같이 굵직한 것부터 벌이나 가족사 같은 호구조사 수준까지 다양하다. 나를 위해서 걱정을 담아 묻는다는 전제조건이 항상 붙지만 보통 그 주제를 나누고 싶은지 나의 의사를 묻지는 않는다. 원치 않을 땐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개인주의 성향이 충만한 나이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을 때가 있다. 아니, 사실 아주 많다. 


 오랜 기간 연애 중인 나의 나이를 아는 사람이면 십중팔구 언제 결혼할 계획인지 묻는다. 묻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빨리 결혼해야지'처럼 단정적으로 훅 치고 들어오는 경우다. 보통 '빨리 애 낳아야지'가 필연적으로 따라오고 자매품으로 '결혼하고 애 낳으면 얼마나 행복한데, 네가 안 해봐서 모르는 거야'가 붙어온다. 일단 나는 묻지도 않았으니 본인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즐기시라 답하고 싶은데, 행복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 많아서 입을 꾹 닫는다. 그러고 보면 혼자 죽지 않겠다는 물귀신 작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 혼자 죽을 수는 없다. 같이 가자.


 몇 년 전부터 이런 걱정 어린 질문은 오지랖 내지는 잔소리로 보는 시선이 많다. 오죽하면 명절 때마다 잔소리 가격표 같은 게 나올까. 오지랖을 부리려면 그에 합당한 경제적 대가라도 치루라는 위트 있는 반격이자, 실제로 들이밀진 못해도 서로 돌려보며 실소하고 다독이는 소심한 연대가 아닐까 싶다. 이런 오지랖들은 비단 우리 사회에만 있는 건 아니다. 인간사 사는 게 비슷한 모양이니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서양 사람들도 물을 때가 있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으면 안부를 묻다 이내 결혼은? 그럼 연애는? 하는 경우가 있다. 솔직히 답하면 서양 사람들은 보통 다른 주제로 넘어가지만 정 많은 동양 사람들은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고교 동창의 절친으로 연이 닿아 10년이 넘은 일본인 친구가 있다. 호쾌하고 밝은 친구라 만날 때마다 항상 대화가 즐겁다. 그런데 어렸을 땐 안 그러더니 30줄에 들어서자 슬슬 결혼이니 진로니 묻기 시작한다. 물론 중요한 문제이고 나이대에 따라 일반적으로 겹치는 주제들이 있으니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 다행히 물고 늘어지지는 않는 선이고 나와 짝꿍의 생각을 얘기하면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정도로 넘어간다. 최소한 아직 까지는. 신기한 건 조심스러운 성격일 거란 선입견을 갖고 있는 일본인들이 초면에도 이런 얘기를 많이 묻는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자카야 카운터에 나란히 앉은 손님이라든지 바 너머의 사장 같은 사람들이다.


 홋카이도 남쪽 하코다테에 갔을 땐 들어가는 모든 이자카야나 식당에서 비슷한 질문 세트를 받았다.

어느 쪽에서 왔어?

여행하러 왔어?

하코다테에 며칠 있어?

5박 머문다는 대답에 모두들 신기해하며, 북해도 다른 도시도 가봤어?

일본어 공부했어?

 여기까지는 정말 관광청에서 나눠준 질문 매뉴얼이 있나 싶을 정도로 복사, 붙여 넣기처럼 묻는다. 그다음엔 일상적인 여행 얘기나 하코다테에 대한 인상을 묻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둘이 결혼했어?'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다. 더 이상 어려 보이지는 않는(...쓰읍...) 남녀가 함께 와서 그럴 수도 있고 일본인들은 안 한다는 커플링 때문에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농담인 듯 아닌 듯 핀잔처럼 '신혼여행 왔는 줄 알았는데'라든가 '얼른 결혼해야지' 하는 얘기를 잘도 한다. 일본어를 좀 할 줄 알았다면 재치 있게 답하거나 주제를 돌리기라도 할 텐데 그저 술 시켜먹는 정도가 한계라 아쉬웠다. 그래도 대부분 술 한잔이나 안주 하나 사주고 그런 말씀들을 하셨으니 고마워해야 할까.


주인장과 손님이 내어준 안주와 소주는 참 맛있었고 나는 귀여운 사진 찍는데 집중했다.


 라오스의 한 시골마을에 있을 땐 정말이지 만나는 사람마다 결혼을 했는지 물었다. 어른들은 짐짓 근엄하게 결혼과 출산의 필요성을 역설하시기도 했고 '근엄'만 빼면 젊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대부분이 영어를 하지 못하니 내 미천한 라오스어 실력으로 이런 주제를 매일 접하다 보니 나름의 요령이 생겼다. 라오어를 잘 못하는 외국인인 내가 또박또박 "뗑안 맨 날록."이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우리말로 '결혼은 지옥이다'.


 십중팔구 일행들 모두 빵 터져서 쟤 보라며 한바탕 웃고 나면 주제는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간혹 술에 취해 물고 늘어지는 아저씨들이 있는데 부인의 눈치를 보며 귀가시간을 재고 있는 그의 상황에 빗대어 다시 한번 시전 해주면 또다시 웃음바다가 된다. 라오에서 얼마나 많이 시달렸으면 글자 하나 읽지도 못하는 라오어에서 저 표현과 파생된 부록들은 아주 잘 외우고 있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고 이런 질문들이 지겨워지자 피하게 되는 자리도 늘었다. 유독 만나면 빠지지 않고 결혼이니, 결혼이니, 결혼 같은 주제로 대화를 가득 채우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다 한 번 스치듯 만나는 친지들도 있고 선후배나 친구들까지 다양하다. 물론 나도 중요한 주제인걸 안다. 내가 빨리 하든, 늦게 하든, 혹은 하지 않든, 그게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 생각과 가치관이 있는 거다. 문제는 저런 주제로 질문하는 이들은 답을 듣는데 그치지 않고 본인 얘기만 계속하며 설득과 조언을 빙자한 강권을 하는 데 있다.


 얘기를 나누길 원하는지 묻지도 않고 시작해서는 제 할 말만 몰아치는 사람을 마주할 때면, 마치 국세청 사이트에서 액티브엑스 같은 것들을 쉼 없이 설치하며 새로고침과 동의만 반복하다, 결국 아무 할 일도 못하고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는 기분이다.


 먹먹한 가슴을 안고 쉬어보려 떠난 바다 건너 타향에서도 질문은 계속되는 걸 보자니, 김영민 교수의 칼럼 <추석이란 무엇인가>를 따라 '오지랖이란 무엇인가', '결혼이란 무엇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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