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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멀스멀 Dec 26. 2018

다시 찾아오겠다 약속하지 말라, 라오스에서 배웠지만

그래도 우리, 그리우니 다시 만나요

 첫 해외봉사는 몽골에서 경험했지만 맛을 들인 건 라오스였다. 라오*에 처음 갈 때 해외봉사로 이끈 선생님과 중독시킨 선생님 두 분을 만났다. 대학생활을 마친 지 여러 해 지난 지금까지도 종종 뵐 때면 많은 가르침을 주시는 분들이다. 특히나 생소한 봉사현장에서 미숙했던 내게 봉사 선배인 선생님들의 가르침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정답이 있는 상황이든 아니든 학생 봉사자와 항상 토론하며 머리를 맞대어 주셨으니 감사한 일이다.


 그 시작이었던 라오 북부의 한 시골마을에서 배운 것 중 하나는 수혜자들이나 정든 현지인들에게 다시 찾아오겠다 약속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수혜자에게 헛된 기대를 심어줄 수 있다. 그리고 이루어지지 않은 기대는 종종 부정적인 감정을 만들기도 한다. 프로젝트의 연속성을 보장할 수 없는 경우에는 실리적인 기대이익 등의 문제로 실망은 더 커질 수 있다. 그러니까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은 개인으로서도 단체로서도 하지 말라고 배웠다. 실제로 해외 오지에 있는 봉사지를 다시 찾기엔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어 그리움이 남아도 다시 찾는 봉사자가 거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보통의 여행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어딘가 한 번 가는 것도 힘든데 하물며 다시 찾는 게 쉬울 리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마주친 여행자에게, 현지인에게 다시 만나자는 공수표를 남발하곤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나 눌러주는 사이가 되곤 한다. 오래지 않은 우리네 여행문화도 한몫하는 것 같다. 한 번 방문한 여행지는 좋았어도 다시 가기보단 여권에 다양한 도장을 모으듯 새로운 곳을 찾는 경우가 많다. 마치 맛있는 집에 단골이 되기보단 매번 새로운 맛집을 탐닉하는 것처럼.


한때 주 이동수단이었던 트럭에서 바라본 비오는 길거리와 끊어진 가방끈을 고쳐주시던 아주머니, 그리고 시골 풍경


 여행 경험이 또래에 비해 많은 나였지만 해외봉사는 초보였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씀이라 가르침에 따라 정든 선생님들, 도와주던 학생들, 영어가 능숙했던 게스트하우스의 사장님, 열심히 도와준 코디에게 다시 돌아오겠다 인사하지 않았다. 그리고 반년 후 라오의 다른 도시로 봉사하는 여행을 떠나고 깨달았다. 나는 다시 라오로 돌아오리라는 것을. 반년의 시간이 다시 흘러 나는 처음 갔던 시골로 자비를 들여 떠났다. 1년간 보지 못한 반가운 얼굴들과 다시 마주했다. 두 번째 방문해서 보니 반가운 건 선생님들, 학생들, 숙소 사장, 코디뿐만이 아니었다. 매일 아침저녁 7, 80년대 한국에서 썼을법한 중고버스로 우리를 실어 나르던 기사님도 마주쳤다. 동네 사람들의 유일한 대중교통수단인 뚝뚝 기사들 중에도 아는 얼굴이 있었고 시장의 아주머니, 아저씨들도 눈에 익었다.


버스에서 바라본 시골길 풍경과 버스안의 모습. 플라스틱 의자는 복도에 앉는 승객용이다. 비행기 환승까지 여간 먼 길이 아니다.


 라오에 작정하고 빠져든 나는 그 이후 매해 한, 두 번씩 라오를 찾았다. 처음 갔던 북부의 작은 마을을 항상 갔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에어컨이 나오지 않고 가다 서다 반복하는 버스에서 닭, 병아리와 함께 흙먼지 뒤집어쓰며 일고여덟 시간 걸려 가기도 했고 때로는 너무 좁아 무릎이 아픈 지경인 밴을 환승해가며 그리운 마을로 향했다. 매번 기껏해야 며칠에서 한 달 남짓 머무는 일정이지만 정이 든다는 건 정말 굉장한 일이다. 그리운 동네에 도착해 그 특유의 냄새를 감각하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스산한 새벽안개와 종일 마시는 흙먼지마저도 반갑다. 여러 번의 여행으로 라오어가 입에 조금 붙어 간단한 대화도 가능하니 그리움과 반가움도 깊어진다. 나중에 수도 비엔티안에 갔더니 내 라오어를 들은 사람들이 태국어 잘한다고 칭찬해서 그제야 내가 사투리를 배웠다는 걸 알고 어이없었지만 좋아하는 동네 말이니 또 어떤가 싶었다.** 


 또다시 겨울이 찾아왔고 고대하던 라오행을 앞두고 있다. 이번엔 약 한 달의 시간을 보낼 예정인데 대부분의 시간을 북부의 시골에서 보낸다. 구경할 것 하나 없고 빼어난 경치도 없는 마을이라 남들은 하루도 심심해서 못 버틸 곳인데 가기 전부터 설렌다. 아마 그리운 얼굴들 때문이겠다. 이번에도 도착하면 코디였던 교육부 공무원 친구를 가장 먼저 만날 것이다. 어쩌다 보니 한국에 단기 연수나 초청 방문도 했던 친구라 한국에 대한 애정도 강하고 어쨌든 나와 일행을 참 반겨주는 친구다. 함께 숙소에 들러 짐을 두고 나면 아마도 밥을 사주려고 안달일게 뻔하다. 여러 날 묵는 일정이니 밥은 제쳐두고 아무 데나 가서 얼음 넣은 비어라오 한잔이나 얼른 들이키면 비로소 마음의 고향에 도착한 기분이 날 것이다.


 새벽과 밤엔 2-3도까지 떨어지고 누군가 스위치를 누른 것처럼 순식간에 안개가 개고 나면 28도쯤 오르는 라오의 겨울에서 며칠간 꿈을 꾸다 와야겠다. 길을 달리던 뚝뚝이 멈춰 서고 기사가 오랜만이라며, 반갑다며, 인사하는 먼 남의 나라 시골이라니. 기껏해야 1년에 몇 번 고개를 들이밀 수 있으면 다행인 시장과 식당에서 단골인양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니. 전화 한 통에 버선발로-오토바이 타고-마중 나와 반겨주시고는 내 짧은 라오어에 의지해 안부부터 가족 얘기, 눈이 내리는 한국 얘기 등으로 하루 종일 이야기꽃을 피우는 선생님들 이라니. 건축 현장에서 십장 정도 되니 실력은 충분한데 돈이 없어 집에 문도, 창도 달지 못하는 할아버지는 몇 번의 공사현장에 함께한 정으로 또 닭을 잡아 바씨***를 해주시겠지. 정말이지 꿈같은 그림이다.


선생님들과 함께 채소를 씻고 불에 생선도 구워 해가 넘어갈 때까지 이야기 꽃을 피웠다.


 다시 찾아오겠다 약속하지 말라 배웠던 나는 처음에 그 약속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학생들에게도 약속하지 말라 전했다. 그런데 제 발로 다시 찾은 이후 배운건 정말 좋아하고 행복하다면 다시 찾겠다 마음먹고 행동하면 된다는 것. 그러므로 그리워질 사람에겐 다시 찾아오겠다 약속해도 된다는 것. 다시 만나자는 인사에 웃으며 '내년에도 내가 살아있을지 모르겠어'란 쓴 농담을 던지는 라오의 어른들이지만, 부디 서로 건강하게 다시 만나자 인사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찾아오겠다, 다시 만나자 약속한 이후의 내 여행들은 참 달라졌다. 사람뿐 아니라 애착이 생긴 장소나 음식에도 다시 오겠다 약속할 수 있다. 그립고 생각날게 분명한 장면에도 다음에 다시 만나자 인사할 수 있다. 도장깨기 하듯 여권에 새로운 도장 늘리는 여행보다 좋은 곳, 사랑하는 곳은 다시 찾아 반가움을 만끽하고 그리움을 키우는 여행을 하게 됐다. 물론 세상 못 가본 곳 천지고 궁금한 곳 넘쳐나니 살아있는 동안 부지런해야겠다. 그래도 때마다 라오는 다시 한번.


 라오에서 먼 길 떠나는 이에게 보내거나 오래 못 볼 사이에 하는 인사는 '쏙 디-', '행운을 빌어요'

몇 해 전부터 헤어질 때 나는 '폽깐 마이, 캥행 더', '건강하세요, 다시 만나요'




* 라오스의 국영문 국가명은 라오인민민주공화국(Lao PDR, Lao People's Democratic Republic)이다. 두 번째 문장부터 국명은 라오, 라오스어를 라오어로 적었다. 듣기론 프랑스 식민지 시절 불어에서는 마지막 's'를 묵음 처리해 Laos로 적은 것이 영어권에서 라오스로 읽혔다고 한다. 현지인들은 모두 '라오'라고 부르며 우리나라 외교부 자료나 사전에도 국명은 라오인민민주공화국, 언어는 라오어로 주로 표기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로 라오스라 부르는 게 익숙하니 제목과 첫 문장에서만 라오스로 적었다.


** 라오어와 태국어는 같은 패밀리에 속한 언어로 약 70% 정도의 단어가 뜻이 통한다. 하지만 부정어 등의 표현이 완전히 달라 문장으로 얘기하면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긴다. 태국 북부 이산지역에선 라오어와 거의 같은 언어를 사용해 태국에선 라오어를 이산어라고 부른다 들었다. 미디어 생태계가 열악한 라오에서는 주로 태국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는데 숫자 등이 같아 꽤 많이 알아들을 수 있어 신기하다. 내가 구사하는 얕은 수준의 라오어는 북부 방언으로 내가 즐겨 찾는 동네와 루앙프라방에서 쓰기엔 큰 문제가 없다.


*** 바씨는 라오의 전통문화로 가족이나 손님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보통 작은 상에 꽃과 음식, 목화실 등을 준비하고 구성원이 돌아가며 짧은 기도와 함께 손목에 목화실을 묶어준다. 나의 경우엔 할아버지, 할머니나 동석한 선생님, 친구 등이 돌아가며 건강과 여행 중 안녕을 빌어줬다. 공무원 친구는 노자돈 개념인지 용돈처럼 지폐 한 장을 쥐어주기도 했다. 결혼, 출산 등의 경사나 먼 길 떠나는 가족이나 지인에게 해주는 의식 같다. 요즘엔 많이 상업화되어서 루앙프라방 등지에선 여행객들이 돈을 내고 체험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엔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보통 손목의 목화실은 3일 후 기호에 따라 풀어도 된다고 한다. 중요한 건 칼이나 가위로 잘라내면 부정을 탄다고.


친구와 선생님들의 선물인 뱃지, 교감선생님께서 떠나는날 새벽 버스로 찾아와 주신 도시락. 정 많은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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