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 말고 너 스스로를 위해 살아
4년 만에 컴백하는 걸그룹 멤버가 한 예능에서 우울증이 있었음을 고백했다. 못 웃기는 코미디언의 아이콘인 패널이 사석에서 재미없는 얘기를 반복해서 늘어놓았다며 핀잔을 주던 차였다. 그러나 사실은 정말 고마웠다고,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계속 말을 걸어줘서 고마웠다고, 갑작스럽게 고백하며 울음을 터트렸다. 핀잔을 듣고 있던 코미디언도 덩달아 눈물이 고였고, 아마 다른 출연자들도 마음이 동했으리라 생각한다.
20대 끝에 몸과 마음이 많이 안 좋아진 적이 있다. 몇 년 지나지 않은 일인데 벌써 선후관계가 헷갈린다. 그만큼 마음이 많이 안 좋았던 때라는 방증이다. 집에 큰 어려움이 닥치고 스트레스가 극심해져 물만 마셔도 토하기 일쑤였다. 급속도로 살이 빠지기 시작했는데 두 달 새 십여 kg이 줄어들었다. 살이 빠진다고 체중계에 오를 정신도 아니었으니 정확한 숫자는 알지 못한다. 그때 내 사정을 모르던 사람들은 어떻게 감량을 했냐고 많이 물어봤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살이 빠졌다고 하면 열이면 열 "나는 스트레스받으면 더 먹어서 살이 쪄."라는 답이 돌아온다. 내가 "스트레스 덜 받아서 그래, 목구멍에 아무것도 안 들어갈 정도로 받으면 살 빠져." 하면 보통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몸이 안 좋아지는 것과 마음이 안 좋아지는 것이 겹쳤던 때라 자주 쓰러지기도 했다. 학교 수업을 듣다 쓰러진 적도 있고, 후에 생각하면 정말 위험했지만 운전을 하거나 걷다가 블랙아웃이 오기도 했다. 학교 상담실을 찾아 상담을 받았는데 내담자를 탓하고 혼내는 이상한 상담사를 만나는 통에 그만두었다. 우울감이 끝을 달리던 때에 큰 도움이 됐던 건 내가 사정을 털어놓아 알고 있는 가까운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눈던 자리들이다. 고맙게도 꽤 오랜 기간 필요할 때마다 시간을 내주고 함께 자리해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위로는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다들 잘 아는지 서로의 과거와 현재의 힘듦을 토로하며 떠들고 들어주며 울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웃픈 자리도 있었다. 광장시장 한 편의 노상 횟집에 남자 셋이 앉아 소주잔을 기울였다. 누군가는 우울했고 누군가는 그렇지 않았을 텐데 그런 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셋 다 집이 망한 사람들끼리 모였다는 것에 서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각자 집 망한 이야기를 늘어놓고선, 어쩌다 모여도 이렇게 모여서 잔 기울이게 됐는지 한참 웃었다. 어디 내어놓기 창피한 흠일 수도 있지만 뭐 어떤가, 어쩌다 보니 그냥 그렇게 돼버린 것을.
맨날 만나면 나와 라오스에 함께 가고 싶다고 말하는 형이 한 명 있다. 학교 다닐 때 그 형이 시간강사 자리로 가르치던 과목을 수강하면서 사제간으로 만났다가 지금은 형, 동생 하는 사이가 됐다. 매년 학교 축제 때 자리 하나 잡고 소주잔을 기울이곤 했는데, 마냥 행복하고 즐거운 이야기보다는 우울한 이야기가 많았다. "야, 우린 대체 왜 이러냐."라는 말이 그 형의 단골 대사였으니 말 다 했다.
시간이 꽤 흘러 어느 날 연락을 받고 만나러 나가 보니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털어놨다. 극단적인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기다 구조되어 반 강제적으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 말씀이 끊어낼 사람은 끊어내고, 편하게 털어놓고 대화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은 만나라고 했다고. 그래서 처음 연락한 게 우리라며 나와 함께 간 친구에게 담담하게 털어놨다. 연락해주고 얘기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약기운 때문인지 가끔 횡설수설하거나 했던 말을 또 하는 통에 대화를 주고받기 어려웠지만 그날 이후 그 형을 참 많이 만났다. 오래 알아온 사이지만 몰랐던 서로의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유치원 하원 하는 아들을 데리고 맛있는 밥도 먹으러 다니고 집에서 함께 영화도 보고 게임도 했다. 헤어질 때가 되면, 혹은 헤어지고 난 후에 덕분에 오랜만에 웃었다고 얘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몇 번이고 말한다. 다행히 의사 선생님의 주문을 잘 따르는지 지금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목소리도 많이 밝아지고 더 이상 했던 말을 또 하지 않는다. 선생님도 많이 좋아졌다 하시고 본인도 좋아진 게 느껴진다며 한결 밝은 낯빛으로 말한다.
짝꿍과 함께 일본 북해도 남단의 도시 하코다테에 간 적이 있다. 눈이 녹아가지만 아직은 추운 늦겨울이었다. 하코다테는 밤이 되면 지나다니는 사람이나 차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정적이 흐른다. 당연히 몸 녹이며 술 한잔 마실 곳들도 별로 없는 동네다. 숙소에서 지도를 들여다보니 다행히 2, 3분 거리에 늦게까지 영업하는 펍이 있었다. 수제 맥주를 만드는 분이 이름을 걸고 운영하는 집이었다. 아일랜드에 가보진 못했지만 흔히 아이리쉬 펍이라 부르는 따뜻한 인테리어와 분위기를 가진 집이라 마음에 들었다. 바 한편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친절한 사장님과 혼자 온 여자 손님까지 다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혼자 온 손님 Y는 떠나려는 우리에게 기념사진을 청해 셋이 사진도 찍고 SNS 계정도 교환했다. 기념사진도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찍어 아주 밝고, 발랄한 사람이라고 기억된다.
며칠 전 그녀의 SNS 계정에 근황을 알리는 글이 올라왔다. 3년 전 업무 스트레스로 우울증에 걸렸고 일을 할 수 없어 퇴사 후 부모님이 계신 하코다테로 왔다고. 2년 간 매일 치료받고 재취업했으나 조울증이 왔다고. 결국 다시 치료에 전념하며 플로리스트가 되었다고. 이제는 나아 장애 카드를 버리는 날이 왔다고. 여러 번 생각했지만 자신의 인생을 '리셋'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어색하게 번역된 말들을 끼워 맞추며 읽어 내려가는데 내 마음이 철렁했다. 한숨과 함께, 정말 다행이라고, 정말 다행이라고 마음속으로 읊조렸다.
여행 중 고작해야 한두 시간 얘기 나눈 게 전부인 사이다. 도시에 대한 인상이 좋았고 마주친 모두가 정겨웠던 곳이라 분명 다시 오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기분 좋게 SNS 계정을 교환하고 친구가 되었다. 물론 올라오는 사진과 어색한 번역문을 보며 서로 좋아요를 눌러주는 게 전부인 사이였지만 말이다. SNS만 보면 불행한 사람이 없다고 항상 발랄해 보이는 Y의 사진 속 마음은 알 길이 없었던 것이다. 그녀의 글로 미루어 짐작해보면 펍에서 마주쳤던 그때는 그녀가 많이 힘들었을 때다.
아픔을 딛고, 누군가에겐 치부일 트라우마를 담담하게 꺼내 얘기하는 그녀에게 박수를 보낸다. 우리 모두는 한때 낙담하고 우울하며 가끔 아프다. 그건 잘못이나 치부가 아니라 좋으나 싫으나 당연한 일이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약점과 트라우마를 꺼내 이야기하다 보면 그것이 나를 지켜주는 방패, 나를 걸어 나가게 해 줄 지팡이가 되기도 한다.
누구든 넘어지면 넘어진 채로 조금 쉬어도 괜찮고, 넘어졌었다고 담담하게 얘기해도 괜찮은 세상이 되면 좋겠다. 넘어졌는데 혼자 힘으로 일어날 수 없다면 눈치 보지 않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가끔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주 앉아 트라우마와 힘듦을 쏟아내는 자리를 갖는 것도 꽤 괜찮다. 언젠가 다시 만날 그 날 Y와, 웃으며 서로에게 박수 쳐주고 한 잔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녀가 마지막에 덧붙였다.
"다른 사람 말고 너 스스로를 위해 살아. 그건 어렵지 않아. 끝."
낙담과 우울감, 우울장애(우울증)는 다르다. 우울장애는 자가진단과 자가치료할 것이 아니라 의사 등 전문가의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감기처럼 혼자 앓다 보면 낫는 것이 아니니 전문가의 손길을 구하자.
아래 창구를 통해 전화나 온라인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
- 청소년전화 1388
- 정신건강상담전화 1577-0199
- 한국생명의전화 1588-9191
- 한국생명의전화 https://www.lifeline.or.kr/
- 청소년사이버상담센터 https://www.cyber1388.kr: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