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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공학도 Jun 06. 2023

남겨진 질문에 대하여

책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읽고,


(1)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


대학원에 입학하고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할 즈음, 나는 실험실에 앉아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연구가 사회를 더 좋게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던 때, 내가 잠정적으로 내린 답은 ‘모른다’였다.

아직 내가 그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내기에는 내공이 부족한 것이리라. 나는 답을 유보했다. 

내가 지금 당장 그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내 연구 논문을 본 누군가가 영감을 받고, 본인의 연구에 이를 창의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면 굳이 내가 지금 그 구체적인 답을 할 필요가 있을까. 

내 연구는 그 자체로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에 한동안 그 질문은 바쁜 일상이 파도처럼 밀려오면서 내 머릿속 어딘가에 자연스레 묻혔다. 


그리고 시간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흘러갔다.

그러던 중, 소셜벤처 수업을 통해 E.F.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읽으며, 잠시 일상의 파도는 걷히고 그간 묻어 놓았던 ‘그 질문’은 스물스물 내 머릿속에 다시금 올라왔다. 

(이 때 다시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 느낄 수 있었다. 독서는 일상적인 사고를 깨주는 사고의 도끼다!) 


내가 당시 내렸던 답은 과연 옳은 답이었을까? 



(2) 슈마허의 시대와 우리의 시대

책의 제 1부 근대 세계의 1번 생산 문제 파트에서 슈마허는 근대 기술의 양적 도약을 언급했다. 


‘P 27. 그 속도는 비교적 적당한 수준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이 속도를 놀랄 정도로 빠르게 높이는 데 성공했다. (중략) 다시 말해서 최근에, 그것도 우리 대부분이 아직까지 거의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최근에 산업생산은 유례없는 양적 도약을 경험했다.’


증기기관으로 대표되는 제 2차 산업혁명과 트랜지스터로 대표되는 제 3차 산업혁명을 지나, 우리는 지금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로 대표되는 제 4차 산업혁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슈마허가 이 책을 발표한 1973년에 비교하면 현재 2020년의 산업과 기술은 슈마허가 묘사했던 그때의 상황으로 부터 더 큰 양적 도약을 경험했고, 앞으로는 훨씬 더 큰 비약적인 발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슈마허는 그 당시 산업을 묘사하면서 많아지고 있는 사회 ‘문제를 철저히 이해하고 새로운 생산 방법과 소비 생활을 동반하는 새로운 생활양식, 즉 영속성을 위해 고안된 생활양식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고 꼬집었지만 현재 상황을 보면 슈마허가 인식한 문제가 결코 해결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슈마허가 인식한 문제들이 더 심화되었거나 기술이 더 발전하면서 오히려 더욱 다양한 문제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기 시작했고, 발생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3) 슈마허가 인식한 문제들 그리고 우리에게 남겨진 문제들

슈마허는 여러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기록했지만, 그 중에서도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해당되는 문제 몇 개를 선정하여 정리해보았다.


- 환경 문제


‘P. 41 환경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필연적으로 결정적인 장애 요인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중략) 이 새로운 문제는 우연한 실패의 산물이라기보다 기술적인 성공의 산물이다.’


가끔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담긴 커피를 마시면서 ‘이 많은 쓰레기들이 과연 어디로 갈까’ 생각한다. 한 번은 기후와 환경을 연구하는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환경오염과 기후변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물었다. 친구는 많이 심각하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러면 너희 연구실 사람들은 카페에 갈 때마다 텀블러를 챙겨가고, 일회용품 사용을 지양하고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느냐고 친구에게 농담 삼아 물었다. 


친구는 그렇지는 않지만, 그러면서 매번 어떤 죄책감 같은 감정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환경 문제에 대한 영향은 장기적으로 나타난다. 한 개인의 삶의 시간은 우주의 시간에 비교하면 너무나도 짧아, 우리 세대가 끼친 영향이 우리 세대가 아닌 다음 세대 혹은 다다음 세대에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우리는 환경 문제는 중요하게 생각하나 이를 최우선에 두려고 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그 영향과 결과들이 실감 되지 않고, 눈 앞의 일들에 매번 관심이 쏠리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영화 돈룩업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공감이 되는 이유인가...!)


‘P. 59 첫째로 판단은 장기보다 단기를 훨씬 중시하는데, (중략) 장기적으로 보면 인간은 모두 죽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의 삶의 시간이 이어져 우주의 시간을 이루므로, 우리는 환경 문제에 대해서는 장기적 관점을 취하고 이에 대한 합의를 전 세계적으로 이룰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기후와 환경을 연구하고 있는 내 친구와 그의 동료조차도 단기적 일상에 잡혀 이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걸로 봐선, 기존의 실감되지 않는 호소로는 일반 사람들의 행동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창의적이고 효과적으로 이런 환경 문제를 점차 해결해 나갈 수 있을 해결책을 찾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 에너지 문제


‘P. 153 고도 성장의 산물처럼 보이는 오염과 싸우는 데 또다시 고도 성장이 요구된다면,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기술을 통한 에너지 문제 해결도 중요하나 그에 앞서 올바른 에너지 문화와 제도를 확립하는 것이 더 중요한 듯 보인다.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특단의 기술이 발명되면, 과연 사람들은 에너지 소비를 현재로 유지할까 아니면 그에 맞춰 에너지 소비를 더 늘릴까?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기술의 발전에 발맞춰 사람들의 에너지 소비 또한 자연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따라서 문화와 제도를 통해 사람들의 에너지 소비를 낮추려는 노력이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직접적이고 급격한 방식으로 이를 이루려고 한다면 사람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고 효과적이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적절한 넛지를 활용한 창의적인 솔루션을 통해 사람들의 행동과 가치관을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 실업 문제


‘P. 74 (불교에서) 인간성은 주로 인간의 노동을 통해 형성된다. 아울러 노동은, 인간에게 존엄과 자유가 보장된 조건에서 적절히 수행될 경우, 그것을 행하는 사람과 그가 만든 생산물 모두에게 축복이다.’


3차 산업혁명의 생산 수단 자동화로 일자리의 변화가 있었던 20세기를 지나, 현재는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기계로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움직임이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필요에 따라 임시로 계약을 맺고 일을 맡기는 긱 경제(gig economy)로 대표된다. 그래서 우리 삶의 다양한 일자리가 기계로 대체될 조짐이고, 이로 인해 다양한 문제가 발생될 것으로 예상된다. 평균 수명은 길어지지만, 직업 수명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노동은 먹고 사는 문제이기에 중요하다. 또한 노동은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 한 개인의 자아 실현을 위한 숭고한 행위이다. 즉, 올바르고 적절한 노동은 인간의 삶에 필수적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기계에 의해 이런 노동의 기회들이 사라질 위험에 처했다. 이런 시대의 변화를 막을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변화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사례에서는 이런 흐름 앞에 노동자를 해고하지 않고, 미리미리 다가올 변화에 필요한 업무를 예측하고 고안하여 노동자들을 재교육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핀란드 등 여러 국가에서는 기본 소득 실험을 통해 앞으로 다가올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인간성의 하락


‘P. 59 경제학은 재화를 그것의 시장가치에 따라 평가하지, 그것의 실제 모습에 따라 평가하지는 않는다.’
‘P. 62 따라서 경제적 사고방식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게 되면 아름다움, 건강, 깨끗함 따위의 비경제적인 가치조차 ‘경제적인’ 것으로 입증되는 경우에만 살아남을 수 있는데, 이는 조금도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P. 45 우리가 비교적 성공하지 못했을 때에는 경제학과 과학, 그리고 기술로부터 지혜를 배제하더라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겠지만, 오늘날처럼 대성공을 거둔 시기에는 정신적, 도덕적 진리의 문제가 핵심 주제로 부상하게 된다.’


Apple의 CEO Tim Cook은 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사람처럼 사고하는 컴퓨터보다 사람이 컴퓨터처럼 사고하는 것이 두렵습니다.” 


이 발언은 슈마허의 발언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경제는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를 서술하는 경제학은 중요하다. 하지만 모든 가치판단이 경제학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곤란하다. 모든 것을 경제적 혹은 비경제적이냐로 판단하기에는 우리가 놓치게 될 중요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하버드대 교수 마이클 센델은 그의 저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도덕을 밀어내는 시장을 분석하고 궁극적으로는 무엇이든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싶은지를 묻는다. 돈, 즉 시장의 가치로만 판단되기에는 세상은 매우 복잡하고 또한 이는 다양한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시대에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싶은지를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4)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고민과 기업가 정신


누가 내게 가장 연구자로서 가장 큰 보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바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지 못한 것을 내가 먼저 알게되는 것, 그리고 이를 정리해 발표하고 이것이 과연 지속할만한 것이었는지 토론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에서 한 질문에 대해 내가 예전에 내렸던 답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연구자는 본인 연구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해야한다. 연구자 본인이 진행한 연구의 목적을 본인조차 제대로 확립하지 않는다면, 혹여 다른 연구자에 손에 들어가 이것이 나쁘게 응용될 수도 있을 것이고 이는 연구자의 본래 의도가 아니었더라도 나는 모르는 일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연구를 진행한 당사자는 본인의 연구에 대해 책임감을 지니고, 연구의 목적과 방향성을 제대로 숙고하고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철학은 내가 생각하는 기업가 정신과 많은 부분 연관되어 있다. 사람마다 혹은 학문마다 다양한 정의가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기업가 정신은 자본을 ‘목적’이 아닌 문제 해결 ‘수단’으로 생각하고, 이를 잘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엔지니어는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문제 해결을 시도하고 기업가는 비즈니스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둘은 많은 부분이 닮았다. 


나는 엔지니어로서 공학 문제를 해결하고, 이것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 이를 통해 사회의 많은 사람들의 삶이 더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면 이는 결국 기업가 정신을 실현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야 할까? 


과학과 공학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므로, 이 역시 한 사람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사회를 위해 좋게 쓰여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과학과 공학 그 자체에는 의도와 공감이 없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는 연구자의 마음과 철학이 기술의 쓰임에 방향을 결정한다. 


어느 강연에서 강연자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를 사람을 사랑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사랑의 눈으로 봐야 그들의 아픔과 어려움에 공감할 수 있고, 이를 기꺼이 도울 수 있도록 행동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항상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어렵다. 빠르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날 때도 있고, 가끔은 이기적으로 편하게만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공부하는 지식으로 다른 사람들의 삶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관심없는 사람이었으면 무심히 지나쳤을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을 기록한 슈마허처럼. 슈마허처럼 우리 사회의 문제를 인식하려면, 주변을 사랑의 눈을 갖고 들여다 봐야 한다.

 나는 이런 문제 인식에서 더 나아가 구제적인 방안으로 문제를 푸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떤 문제에 깊이 공감하고, 어떤 방식으로 이를 풀지 솔직히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저 내가 하고 있는 공부와 연구를 꾸준히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VC 권오상 대표님의 말씀처럼, 꾸준히 안테나를 켜고 우리 사회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 본다면, 에누마의 이건호, 이수인 대표님처럼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실행에 옮길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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