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보니 동네였다.
3월에 시작은 여느 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삼일절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침 일찍 방송 소리에 나는 눈을 떴습니다. 관리실에서는 삼일절을 맞아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게양하라고 안내방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침대에 누운 채 태극기가 어디에 있는지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떠올리며 찾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베란다에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일어나 화장실로 가서 입안을 헹군 뒤, 평소와 똑같이 물을 마셨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책에서 읽은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어제저녁에 만들어 두었던 카레를 전자레인지에 데운 뒤, 밥과 함께 넓은 그릇에 담았습니다. 식탁에 앉아 김치와 곁들여 카레밥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태극기를 게양하려고 했지만 깃봉이 맞지 않아 결국 달지 못했습니다. 다른 집에 걸린 태극기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방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아 TV를 켰습니다. 삼일절 기념식 방송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잠시 보았지만 내용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른 채널을 여러 번 검색했지만, 볼만한 게 없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요즘은 특별히 즐거운 것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텅 빈 마음이 덩그러니 남아 있는 듯했습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거실을 서성이다가 다시 부엌으로 갔습니다.
컵에 물을 따라 천천히 마셨습니다. 왜 이렇게 이유 없이 불안한지 알 수 없었습니다. 봄이 오면 이런 감정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마음에 쌓인 근심 때문인지 알 수는 없었습니다.
밖에서 바람이라도 쐬면, 답답한 마음이 조금 나아질 것 같았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아파트 단지를 천천히 걸었습니다. 날씨는 그다지 나쁘진 않았습니다.
단지 내로 차들이 지나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차를 몰고 어디론가 달려가고 싶었습니다. 그 순간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걸어가다 보니 어느새 단지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기분이 점점 좋아지자 나는 큰길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햇살이 부드럽게 내 얼굴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구름이 많아서인지 그 빛이 밝게 비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걸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걷다 보니 마음도 조금씩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 같았습니다. 자주 가던 마트가 눈에 들어왔고, 정육점을 지나 아래로 계속 걸어갔습니다.
전에 살았던 아파트가 보이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 층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집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어느새 1년이나 흘렀습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주 타던 버스가 눈앞을 지나갔습니다. 타고 다니지 않은 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다시 걸음을 옮겨 초등학교를 지나왔습니다. 휴일이라 학교는 조용했습니다.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편의점으로 들어갔습니다. 커피 하나를 사려고 매장 여기저기 둘러보았습니다. 가격을 재빨리 훑어본 뒤, 싼 커피를 집었습니다. 집에도 마시던 커피가 있었지만, 계산을 마치고 아파트 입구로 걸어왔습니다.
집으로 들어와 사온 커피를 식탁에 놓았습니다. 손을 씻고 책상에 앉아 생각을 했습니다. 걱정한다고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날씨가 오전보다 좋아져 우울했던 마음도 차분해졌습니다. 방안으로 햇살이 가득 들어왔습니다.
봄이 시작되는 듯 조용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 풍경을 매일 보는 것도 나의 일상이 되어 좋았습니다.
피어나는 봄꽃을 반갑게 맞이하고 싶습니다. 누군가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행복이 가득한 봄이면 좋겠습니다.
아직 겨울의 그림자가 남아 내 마음은 앙상한 가지처럼 보이지만, 곧 봄은 새 잎이 돋고 꽃이 피어나듯 나의 마음도 풍성해지리라 생각합니다.
오늘의 노을은 저물었지만, 3월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앞으로 따뜻해지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걷는 날도 많아지고, 그 길 위에서 행복도 함께 차오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