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못한 말들
나의 명절이 지나갔습니다. 이번엔 그렇게 마음만 아프게 흘러갔습니다. 아버지와 좋은 명절을 보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처음 맞이한 설날이었습니다.
명절 전 형제들을 만나서 이번에는 차례 없이 지내기로 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씻고, 옷을 입었습니다. 차를 몰고 산으로 향했습니다. 도착하니 산이라 바람이 강하게 불어 춥고, 마음은 더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간단히 준비해 간 술과 과일을 올리고, 마음만 남기고 왔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생각에, 내려오는 길은 유난히 외로웠습니다. 살아생전 아버지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렸습니다. 명절이면 손주에게 봉투 하나하나에 이름을 적어 용돈을 주시던 그 모습이 너무도 보고 싶었습니다.
내려와 다시 아내가 잠들어 있는 곳에도 갔습니다. 이곳에서는 늘 아내와 마음으로 대화를 나눕니다. "잘 지내고 있지" 그러면 아내는 "그래요." 속삭이듯 답했습니다. 나는 속상한 일들이 있을 때면 아내에게 이야기하며, 조금이라도 풀어 보려 애썼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몸살 기운이 왔는지 온몸이 춥고 여기저기 쑤셨습니다. 집에 와서 물을 마시고, 잠시 침대에 누워 쉬었습니다. 몸이 많이 아팠지만, 더 깊은 상처는 마음에 남아 버렸습니다.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게, 하루 종일 정신없이 명절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시간들은 나에게 말 한마디 못한 채 흘러갔습니다. 아버지가 계셨다면, 그 한마디만이라도 건넬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에게 드리지 못한 말들과 행동이 가슴속에 너무 많아 미칠 듯이 힘들었습니다. 시간은 야속하게도 나를 기다려 주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들이 왜 자꾸만 나의 마음을 흔들려고 했는지, 끝내 알 수 없었습니다.
다시 찾아올 명절과 다가올 제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많았습니다. 내 뜻대로 할 수 없고,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었습니다. 돌아가신 뒤에 잘해 봐야 소용없지만, 그래도 잘하고 싶었습니다.
어릴 적에는 명절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지금은 다시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자식과 손주들이 자주 오길 바라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바람대로 해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 현실이 나를 더욱 슬프게 했습니다.
자주 찾아뵙고 싶었지만 서로 바쁘게 살다 보니 그러지 못했습니다. 마음은 있었지만 행동이 따르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형제들에게 조금씩 시간을 내 보자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말을 자주 한다고 해서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명절 연휴가 나에게는 마음 편하지 못한 시간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따뜻한 봄이 오고 있었습니다. 그 봄처럼 마음도 포근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문득 몇 년 전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맞이한 명절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차례를 지내지 못한 아쉬움을 술 한잔으로 달래셨습니다. 아버지의 그 모습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나는 그날 아버지께 큰 잘못을 했구나 싶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창문 틈으로 햇살이 들어왔습니다. 그 햇살은 모든 것을 잠시 잊으라는 듯 따뜻하게 내려앉았습니다. 거실 소파에 앉아 생각에 잠겼습니다. 나는 부모님에게 어떤 자식이었을까? 속만 썩인 자식이 아니었을까. 조금이라도 효도를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부모님이 더 오래 살아 계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나는 현명하지 못한 불효자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후 나는 깊은 외로움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 외로움을 부모님께 의지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자식에게는 내색하지도 못한 채 그렇게 지냈습니다.
아버지는 아픈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참 행복했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사랑하셨습니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후, 아버지는 홀로 오랫동안 지내셨습니다. 늘 집에만 계시며 어디 한 번 제대로 나가지도 못하신 채, 쓸쓸히 긴 세월을 보내셨습니다. 아버지는 외로우셨습니다. 그 외로움은 내가 잘 알고 있습니다. 나도 아내와 이별 후 같은 외로움 속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아내와 이별 후, 나는 나 자신을 돌볼 겨를도 없이 자식들을 위해 살아야 했습니다. 특히 외로움만큼은 자식들에게 내보이고 싶지 않아 억지로라도 잊으려 노력했습니다.
그 외로움은 조금씩 쌓여갔습니다. 쌓인 외로움은 바쁜 삶 속에서 견딜 만했습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그 쌓인 외로움을 어떻게 이겨내셨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긴 세월을 참으며 기다리는 그 마음을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자식을 보는 것으로 외로움을 달래고, 잘 사는 자식들을 매일 걱정하셨습니다. 본인의 외로움은 아랑곳하지 않고 참으며 살아오셨습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그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나눠 위로해 드렸어야 했습니다. 살아계실 때 더 자주 찾아뵙고 아버지 말씀에 귀 기울였어야 했습니다.
마지막 가시는 날에도 아버지를 외롭게 했습니다. 아버지 저를 용서하지 마세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많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