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오른다. 누구랑
오늘은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다. 아니 감기가 아닐 수도 있다. 하여튼 아프다. 그냥 머리도 아프고 몸도 여기저기 쑤신다. 뒷목이 더 아프다. 엄청 피곤하다.
몇 년 전부터 추운 겨울이 오면 몸 여기저기가 아팠던 기억에 겁이 났다. 이럴 때 땀이라도 흠뻑 흘리면 몸에 좋을 것 같았다. 산이라도 올라가면 몸이 확 풀릴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조금 주춤했다. 아내와 산에 가던 그 시간이 떠올랐다. 아내는 내 기억 속에서 살아 있었다.
오래전 아내와 건강을 위해 주말마다 등산을 했다. 특히 편백나무가 울창한 산을 찾아다녔다. 피톤치드가 많이 나와 몸에 좋다고 했다. 산에 오르면서 아내는 더 행복해 보였다.
우린 등산 갈 준비를 즐겁게 했다. 주말마다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났다. 부엌에서 도시락을 만들어 배낭에 넣고, 짐을 나눠 챙겨 담고 각자 어깨에 메었다. 둘만의 소중한 시간이라 더 행복했다.
그런 아내를 이제는 볼 수 없다. 그 이후로 산에 한두 번 정도밖에 가지 않았다. 그중 한 번이 3년 전이었다. 어느 날 고향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주말에 뭐 해?" "잠이나 자야죠." "산에 가자. 오랜만에." 선배는 나를 계속 조르며 말했다. 못 이기는 척하면서 알았다고 했다. 준비는 내 몫이었다. 하지만 산에 가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퇴근을 하면서 집 근처 마트에 들렀다. 평소 같으면 집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지만, 등산을 간다는 생각에 나는 바로 마트로 갔다. 올라갈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다. 아내와 등산 갈 때도 항상 마트에 들렀었다.
마트에 도착해 장바구니를 들었다. 물, 컵라면, 막걸리 같은 기본적인 물건들을 담았다. 계산을 하고 종량제 봉투에 물건을 담아 나왔다.
구입한 물건을 들고 집으로 걸어왔다. 옷을 갈아입고 배낭을 찾았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어디 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집안 여기저기 샅샅이 뒤졌다. 찾는 동안 아내가 배낭을 메고 웃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내는 너무 예뻤다.
한참 헤맨 후에 배낭을 찾았다. 산에 갈 때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 배낭에 넣었다.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에 있던 반찬으로 저녁을 먹었다. 다시 거실 소파에 앉았다.
누군가와 같이 산에 가는 건 오랜만이었다. 마음이 왠지 무거웠다.
화장실로 가서 씻고 침대에 누웠다. 일찍 일어나 준비도 해야 했다. 자려고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생각만 더 깊어져 잠이 더 오지 않았다. 아내가 많이 보고 싶었다.
몸을 계속 이리저리 뒤척였다. 스마트폰을 보았다. 시간은 11시. 늦잠을 자서 약속 시간에 늦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자려다 보니 그런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 속에,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 알람이 울렸다. 6시였다. 아직도 어두운 밤이었다. 잠시 누웠다가 일어났다. 주말에 일찍 일어나기는 오랜만이었다.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열었다. 산에 올라가 먹을 음식을 간단하게 만들었다. 전날 저녁에 챙겨 놓았던 배낭에 만든 것을 포장해 넣었다.
시계를 보니 해가 뜰 시간이었다. 순간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나갈 준비를 했다. 세수를 하고 옷을 입으려니 등산복이 없었다. 편한 옷을 찾아 입었다.
선배 집 근처에서 만나 올라가기로 했다.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아내와 함께 기다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버스가 왔다. 버스를 타자 출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려 선배 집 쪽으로 걸었다.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자마자 선배가 물었다. "어디야?" 나는 "집 근처로 걸어가고 있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근처 편의점에서 선배가 보였다. "여기요" 내가 불렀다. 서로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다가가자 선배는 커피를 들고 있었다. "아니 커피는 왜 샀어?" 선배는 커피를 건네며 말했다. "마시고 올라가자. 야, 아침엔 커피 한 잔은 마셔야지." 나와 선배는 커피를 마시며 걸었다.
우리는 주택가 쪽으로 걸었다. 그 산 뒤쪽 입구에 도착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올라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올라가면서 서로 "이 길이 맞아", "아니야" 하며 의견이 엇갈렸지만 계속 걸었다. 이쪽 길로는 처음이었다.
올라가는 사람이 보였다. 우린 잠시 쉴 겸 한쪽에 앉아 물을 마시고 나서 다시 움직여 한참을 걸었다. 그러다 두 갈래 길이 보였다.
앞서 간 사람은 어느 길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서로 이쪽이다, 아니다 하며 길 하나를 정해서 다시 걸었다. 그런데 길을 잘못 들은 것 같다. 아니 길이 아니다. 그냥 산이었다.
올라가는 길이 급경사라 힘만 들고 도무지 길이 보이지도 않아, 걱정만 되었다. 결국 우리는 헤매다가 산을 내려가기로 했다. 오던 길을 다시 내려갔다.
다시 아까 지나왔던 두 갈래 길에 도착했다. "반대길로 갔어야 했는데" 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산 아래 입구로 내려왔다. 우린 입구 근처에서 챙겨 온 음식을 먹기로 했다.
근처에 돗자리를 깔고 컵라면 포장지를 뜯었다. 보온통에 담은 끓인 물을 컵라면에 부었다. 라면이 익는 동안 종이컵에 가져온 막걸리 한 잔씩 따라 마셨다. 안주로 김치를 나무젓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컵라면이 다 익었다.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 초겨울이라 날씨가 제법 추웠다. 다시 선배와 종이잔을 부딪치며 막걸리를 마셨다.
막걸리를 한 통씩 마셨다. 우린 짐을 챙겨 버린 것을 비닐봉지에 담고 나머지는 배낭에 넣었다. 선배와 나는 주택가 쪽으로 다시 걸어 나왔다.
3년 전 그 등산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올라가지도 못하고 결국 막걸리만 먹고 말았다. 그 이후로 나는 아내와 다니던 산에 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조금은 걱정이 앞선다. 그 산에 이제 아내가 없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것이 무섭다.
산은 나에게 넘어야 할 아픔이지만, 동시에 간직하고 싶은 소중한 추억이다. 나는 그 넘지 못한 산을 반드시 넘어가야 한다.
거실에서 베란다를 보니, 햇살이 들어온다. 아내와 산에 갈 때 보던 그 햇살이다. 그때는 몰랐다. 함께 산을 가고, 매일 햇살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제는 안다. 그 기억이 지금은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TV에서 한 노인이 말했었다. "한 번 가면 그만이다." 그때는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지금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