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스노우, 플래시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었’다. 대학에 오면 원하는 공부를 하며 기본소양을 쌓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청년 실업’이라는 문구가 뉴스 곳곳에 등장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대학은 학문이 아닌 취업의 전당이 되었다. 그렇다고 취업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가하면 그것도 아니다. 결국 취업 교육도, 기본 교양 교육도 부실한 것이 지금 대학의 현실이다.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졸업을 하려면 강의를 안들을 수는 없고, 겨우 선택한 강의는 만족스럽지 않다. 자연스레 ‘학교에 등록금을 버린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본문 내용 일부 발췌>
#들을 강의가 없다.
강의 수는 계속 줄어들고, 대형 강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없으니 원하는 강의를 듣지 못하는 학생이 늘었다. 경영, 경제학부처럼 학생 수에 비해 강의가 부족한 전공을 복수전공하는 복전생들은 매번 비인기강의를 수강할 수밖에 없다. 특히 복수전공 컷이 3.3으로 낮은 경영학부의 경우 다른 전공에 비해 복전생이 많다. 복전생은 본전공생과 달리 학년이 높아도 수강 우선 순위가 무조건 뒤로 밀리는 시스템이다. 결국 졸업 전까지 관심 밖의 수업만 들을 수밖에 없다. 한 학기에 열리는 강의 종류도 턱없이 부족하다. ‘왜 전공인데 들을만한 게 없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대형 강의가 늘어난 주된 원인은 강의실 부족, 교원 부족에 있다. 특정 건물에 교양, 전공 강의가 집중되면 자연스레 강의실이 부족해진다. 또 아침 9시, 늦은 오후에 시작하는 수업과 같은 비인기 시간대 강의 편성을 피하려다 보니, 남는 강의실이 없어 2분반으로 나뉠 강의가 한 분반의 대형 강의로 편성된다. 올해 8월 1일부터 시행된 강사법에 앞서 대학이 강사, 강의 수를 대폭 줄인 것에도 원인이 있다. 비용 절감을 위해 강사가 진행하는 소규모 강의를 줄이고 대형 강의를 늘렸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전반적인 수업의 질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5~60명이 넘는 학생을 45명 정원인 강의실에 몰아넣으니 자리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하고, 교수가 학생의 얼굴을 하나하나 기억하기도 쉽지 않다. 학생들 역시 자신을 수많은 수강생 중 하나쯤으로 생각하게 되면서 수업 태도가 안 좋아지기도 한다. ‘교수님의 시선을 이쪽으로 끌지 말라’, ‘발표는 되도록 삼가자!’가 대형 강의에서 살아남는 팁이라니. 마냥 웃어넘기기 힘들다.
#차라리 학원을 가겠어요
‘와, 이게 몇 백만 원짜리 강의라니!’ 수업이 끝난 후 동기는 한탄했다. ‘이 정도면 나도 강의하겠다!’ 나 역시 동조했다. 몇 년째 똑같은 강의 자료, 매년 수업 평이 낮음에도 개선되지 않는 강의는 우리에게 ‘돈 아깝다’는 생각을 안겨준다. 1993년 대학 등록금이 자율화되면서 사립대학 등록금은 치솟았고 이에 미치지 못하는 강의 질이 불만을 낳은 것은 당연하다. 복수전공으로 언어를 배울까 고민하는 나에게 인문대 친구가 그런 말을 했었다. “언어 배우려면 학원 가. 복수전공 해봤자 겉핥기밖에 안 돼.” 학문을 배우려고 대학에 왔더니, 또 다시 사비를 써서 학원에 가라니. 차라리 학원은 가성비라도 좋다. ‘최고의 성적! 00학원이 보장해드립니다.’ 자신 있게 팔짱을 끼고 있는 학원 강사는 수강생의 성적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업데이트되는 자료는 최신 자료이며, 수업 시간에는 기출, 적중 답안을 콕 찝어 성적 올리는 팁을 가르쳐준다. 1:1케어는 당연히 따라오는 옵션이다. 이러니 학생들은 진짜 대학 ‘전공’을 학교가 아닌 학원에서 배우려 한다.
학교 밖에서 배움을 찾는 것은 실습강의가 전혀 ‘실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1학년 때 수강한 전공 실습 강의는 실습강의에 대한 기대를 무참히 짓밟았다. 학습자가 수업 후 직접 응용할 수 있도록 교수가 직접 보여주고, 이론수업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만든 것이 실습강의가 아닌가. 디지털 풍화가 잔뜩 진행된 강의 자료와 실습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은 PPT를 한 학기 내내 보며 지냈다.
#잃어버린 학습권을 찾습니다
교육기본법에 따른 학습권의 개념은 다음과 같다. 학습권이라는 개념은 비교적 새로운 것이기에, 이에 따른 해석도 다양하다. 좁은 범위에서의 학습권은 ‘교육받을 권리’만을 의미하지만 넓은 범위에서 학습권은 교육받을 권리뿐만 아니라 ‘교육을 거부할 권리’, ‘자유롭게 학습할 권리’, ‘교육에 참여할 권리’까지 포함한다. 한 마디로,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인격적, 지적, 기능적 향상을 위해 자유롭게 탐구하고 기초교육에 참여할 권리가 학습권이다. 1992년, 헌법재판소는 교과서 제도 소송에서 ‘학습자의 학습권은 교육자의 권리보다 우선적으로 보호돼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교육할 권리의 교수권과 교육받을 권리의 학습권 논쟁은 우리의 학습권이 지워지는 한 계속될 수밖에 없다. 지워진 학습권을 파헤쳐보면 수업 시간 1시간 전에 들려온 갑작스러운 휴강 소식, 수강 중 바뀐 성적평가 기준, 수업 부족으로 매번 듣지 못하는 강의 등 여전히 보호받지 못하는 여러 권리가 존재한다. 대학의 역할은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할 수 있는 강의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부딪히기 쉬운 교수권과 학습권, 서로의 권한을 해치지 않고 원만한 조율을 담당하는 것 역시 대학이 해야 할 일이다. 언제까지 지워지는 학습권에 침묵해야 하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학습권은 또 한 번 지워질 위기에 처해있다. 7월 말에도 2학기 강의계획안이 확정되지 않거나, 강사 채용이 끝나지 않은 수업이 많다. 강사 임용이 확정되지 않아서, 강사 채용에 따른 비용 부족 때문에 신규 채용계획이 없어서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들어가보면, 거기에는 강사법이 있다.
강사법 이야기
# 강사법 뭔데 이렇게 소란스러워?
‘강사법’은 정식 명칭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개정된 고등교육법 중 일부를 따서 ‘강사법’이란 명칭을 붙인 것이고, 여기서 명명하는 강사는 ‘시간강사’를 의미한다. 생계를 유지할 다른 일터를 가진 ‘겸임, 초빙 강사’는 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시간강사들은 대학 강의 중 30%이상을 맡고 있는 교육자이자 연구자들이다. 대학교육에 결코 적지 않은 기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본래 고등교육법엔 시간강사를 위한 법이 없었고, 그간 강사들은 대학 내에서 교육을 하지만 교원은 아닌 유령과도 같은 존재였다. 교원으로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건 언제든 대학의 재정이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내쳐질 수 있다는 것, 즉 대학 사회 내 피라미드 최하단에 위치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런 강사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강사법’이다.
# 그게 뭐가 문젠데?
사실 강사법의 내용만 본다면 단편적으로는 문제될 게 없어 보인다. 불안정한 강사들의 고용을 개선하려는 내용과 교원으로서의 지위를 부여해 법의 보호를 받도록 하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고, 이는 강사들이 어려움을 겪었던 부분들을 해결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법들이 현실에 적용되고자 할 때 법은 온전히 그 뜻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재정부족을 이유로 대학들이 강사들을 해고하고 전임교원이나 남아있는 시간강사에게 강의를 몰아주거나 강사 임용 대신 겸임, 초빙대우 강사 등 다양한 형태의 비전임 교원을 고용하는 방법을 시도해 아예 법을 빗겨나가는 탓이다. 이 때문에 오히려 강사법 제정 이후 시간강사들의 입지가 더 좁아질 것이라는 우려는 커지고 있고 최근 들어선 그 우려가 현실이 되어 통계로 입증되고 있다. 강의 몰아주기는 강의 수 감소로 나타났고, 소규모 강좌는 줄어들고 통폐합되어 대형 강의만 늘어나는 결과를 불러왔다.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학기 전국 4년제 대학 강의 수는 총 30만 5353개로, 작년 1학기에 비해 6655개 감소한 것이 확인됐다. 전체 강의 수는 물론 소규모 강의 수도 줄었는데, 올해 1학기 소규모 강좌는 10만 9571개로 작년 1학기보다 9086개 감소한 수치였다. 강의 수뿐만 아니라 대학들의 강사 해고 증가 역시 두드러지고 있다. 대학교육연구소의 조사 결과 전국의 사립대학들이 시간강사법 제정(2011년) 이후 7년 동안 2만 2000여명의 강사를 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네이버 jobsN 출처) 제정 목적과는 정반대로 강사법이 다시 강사에게 칼을 겨누게 된 셈이다.
강사법, 이제부터 시작이다
강사법이 머나먼 이야기가 아닌 것은 우리의 학습권과도 맞닿아 있는 문제기 때문이다. 전체 강의 수와 소형 강의 수가 줄어들었다는 것은 학생들의 선택권과 학습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강의의 내용의 효과적인 전달을 고려해 수강인원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재정과 같은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강의를 통폐합한다는 것은 대학이 이미 교육을 1순위로 두는 교육기관의 역할을 잃어버렸음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벌어질 수강신청 혼선 역시 학생들의 몫이다. 또한 수업몰아주기로 인해 전임교원의 수업시수가 증가한다는 것은 연구시간, 수업준비시간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으며 이는 고스란히 수업의 질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음을 뜻한다. 비정상적인 교육 체제가 고쳐지지 않으면 그 피해의 여파는 교육을 받는 학생들에게까지 밀려온다. 지금은 피부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이제 시작이기 때문이다. 강사법이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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