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세상을 만드시오.

어사화의 꽃

by 심규섭


평창올림픽마스코트.jpg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입상한 선수에게 어사화를 쓴 마스코트 인형을 주었다.]


어사화[御賜花]는 조선시대 문무과에 급제한 사람에게 임금이 하사하던 종이꽃으로, 급제자가 쓰는 복두관(幞頭冠) 뒤에 꽂게 하였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입상한 선수에게 어사화를 쓴 수호랑, 반다비 인형을 준다.

인형을 받은 선수는 어사화가 무엇이고 어떤 뜻인지 무척 궁금했을 것이다.

이 인형을 기획한 올림픽 관계자는 과거시험에 합격한 사람과 경기에 입상한 선수의 위상이 같다고 여긴 것은 분명하다.


조선 시대 과거시험은 아주 어려웠다.

지방에서 보는 향시에서 합격한 사람들은 한양에서 치루는 전시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고 성균관에 입학할 수 있었다.

어사화를 꽂은 복두건.jpg

[어사화의 모습이다. 알록달록한 종이로 꽃 모양을 만들고 대나무 가지에 붙였다. 이를 복두관 뒤에 꽂고 앞쪽으로 휘어지도록 만들었다.]


보통 향시는 전시의 합격자의 7배를 뽑았다고 한다. 그만큼 최종시험의 경쟁이 치열했다는 말이다.

명문가 자제들의 경우 음서라는 제도에 의해 시험을 치지 않고 관직을 얻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음서에 의한 관직은 급이 낮았고, 높은 관직으로 승진하려면 다시 과거시험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올림픽경기에서 입상하는 일도 어렵다.

일단은 과거제도의 향시와 비슷한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러야 한다. 각국의 국가대표가 경쟁하는 올림픽 본선 무대에서 입상하는 일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타고난 신체와 운동능력을 물론이고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게으름과 자만, 반칙을 이길 수 있는 자기절제와 인격 수양이 동반되어야 한다.


몸과 마음은 다르지 않다.

몸을 수련하는 일을 중국에서는 공부(工夫, 쿵푸)라고 했다.

율곡 이이 선생은 학문과 자기 수양의 방법으로 ‘마당 쓸기, 이부자리 정리하기’와 같은 가장 기초적인 것을 제시했다.

올림픽경기에서 입상하는 일은 과거시험 급제보다 어렵다.

하지만 둘 다 몸과 마음을 수양해야만 얻을 수 있는 가치이다.


어사화의 꽃은 무슨 꽃일까?


평생도-급제자 행차.jpg

[작자 미상/평생도 중 유가행렬/비단에 채색/53.9cm×35.2cm/18세기 말~19세기 초/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왕이 내린 어사화를 쓴 과거 급제자가 광대를 데리고 풍악을 울리면서 거리를 행차하는 모습을 그렸다.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시험관, 선배 급제자, 친척 등을 찾아 인사를 드렸는데, 보통 사흘에 걸쳐 행하였다고 해서 삼일유가라고도 한다.]

어사화는 종이로 만들었다.

얇은 대나무에 종이를 바르고 청색, 황색, 홍색의 종이꽃을 붙였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어사화는 말 그대로 왕이 주는 꽃이다.

왕은 과거시험에 급제한 사람에게 무슨 꽃을 주었을까?

종이꽃의 모양만 가지고는 무슨 종류의 꽃인지 알 수가 없다.

자세히 만들면 쉽게 알아볼 텐데, 단순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은 어사화의 꽃이 뭔지를 상식으로 알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덧붙여 설명하듯이 구체적으로 만들 필요가 없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과거시험이 없어지고 어사화 같은 관련 문화도 뒤편 기억으로 사라졌다.

우리 전통문화도 공부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어사화의 원형을 알기 위해서는 꽃의 모양과 더불어 꽃에 붙은 상징을 이해해야 한다.

상징이 붙지 않은 꽃은 사회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특히 어사화는 왕, 과거시험, 급제자라는 굵직한 요소가 결합 되어 있다. 이런 어사화의 꽃에는 반드시 사회적으로 합의된 상징이 붙는다.

어사화의 원형을 영춘화(迎春花), 혹은 개나리가 아닐까 추정하는 사람도 있다.

일단 전체적인 생김새는 비슷한 구석이 있다.

이파리가 없고 앞으로 휘어지는 모양이 그러하다.

영춘화는 그야말로 봄을 맞이한다는 의미이기에 과거시험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개나리는 우리 문화에서 특별한 상징이 없다.

심지어 이 두 종류의 꽃은 그림으로 그려진 적이 없다.

화조도(花鳥圖)는 꽃과 새를 소재로 한 그림으로, 여기에 등장하지 않는 꽃은 우리나라에 없거나 별 가치가 없다.

유숙의 장원홍.jpg

[조선 말기 도화서 화원이었던 혜산 유숙이 그렸다고 하는 화조 그림이다. 그림에는 장원홍이라는 글씨가 있는데 과거시험에 급제한 것을 축하하는 뜻이다.

어떤 사람은 이 그림에 나오는 꽃을 무궁화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림 속의 꽃은 모란이다.

우리 전통그림에서 무궁화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무궁화라고 주장한다.

어사화의 꽃이 무궁화라는 말은 황당무계하다.

우리나라에는 무궁화가 자라지 않았고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수입된 꽃이다.

그렇다면 추정을 해 보아야 한다.

일단 어사화는 과거시험에 국한된 상징이다. 여기저기 사용된 흔적은 없다.


과거시험은 국가적 행사이며 나라를 이끌어갈 인재를 뽑은 장이었다.

좋은 인재의 등용은 국가의 발전과 밀접하다.

과거시험을 거쳐 정치에 입문하는 사람을 사대부(士大夫)라고 했다.


따라서 어사화는 선비문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당시 선비들이 가장 좋아했던 꽃에는 매화, 국화, 수선화, 목련, 모란, 연꽃, 복숭아꽃 따위가 있다.


이 꽃들이 가지고 있는 상징과 과거시험 합격, 인재 등용이라는 요소를 결합하여 살펴보면 이렇다.


연꽃은 진흙에서 꽃을 피우는 생태 때문에 선비들이 좋아했다.

진흙이라는 세상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양심의 꽃을 활짝 피우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연꽃의 상징을 출세의 의미로 수용했다. 그래서 연꽃에는 연달아 향시와 전시에 합격하기를 기원하는 상징도 붙어있다.

어찌 보면 어사화와 가장 잘 맞는다.

하지만 어사화와 연꽃은 연결되기 어렵다.

일단 꽃의 크기나 모양이 너무 다르다.

연꽃의 최종 목적은 급제가 아니라 인격적 완성체인 군자이다.

시험에 급제한 자는 군자가 되는 과정에 있으며, 왕이 출세의 욕망을 가진 사람에게 꽃을 하사하는 일은 어색하다.

매화, 목련, 수선화는 양심을 지키는 지조와 절개를 상징한다.

지조와 절개는 학문, 정치, 인격에 대한 존엄을 지키는 일인데 상당히 개인적인 영역이다.

국가수반인 왕이 선비 개개인의 마음 상태에 개입하는 일도 뭔가 이상하다.

각종 꽃.jpg

[매화와 수선화는 양심을 지키는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다. 국화는 군자의 꽃이며 모란은 풍요의 상징이다.]

국화는 군자의 상징이다.

꽃의 모양은 국화와 비슷한 면에 있다.

하지만 왕도 도달하기 어려운 군자의 모습을 이제 막 관료 생활을 하는 선비에게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모란은 조선 시대 사람들이 가장 좋아했던 꽃이다.

아니 동아시아 유학문화권에 있는 나라는 모두 모란을 좋아했다.

모란에는 ‘생명의 만개’라는 보편적인 상징이 붙어있지만, 보통은 부귀영화의 상징으로 수용한다.

국가의 입장에서 모란은 나라의 번영과 발전이고, 개인에게는 자신과 가족의 안녕과 영달을 뜻한다.

왕이 나라의 발전에 기여하라는 의미를 어사화에 투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꽃 모양과 크기에서 어사화와 큰 차이를 보인다.

마지막 남은 꽃은 복숭아꽃이다.

복숭아꽃은 이파리가 없고 꽃만 있는 어사화의 모습과 가장 가깝다.

꽃의 크기나 모양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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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화는 복사꽃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복숭아꽃의 상징은 ‘태평성대’이다.

민본정치를 통해 구현할 수 있는 이상세계를 뜻하기도 한다.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그린 안견의 [몽유도원도]에는 복숭아꽃이 만발한 세상이 펼쳐지고 조선 궁궐을 장식했던 [십장생도]에도 복숭아나무가 빠짐없이 그려진다.


한양에는 복숭아나무가 천지였다.

선비들은 복사꽃을 찬양하는 시를 지었고, 4월이면 복사꽃 아래에서 꽃놀이를 즐겼다.

왕실 가례에도 종이나 비단으로 만든 복사꽃을 놓아 장식했다.


과거시험 급제자가 왕에게 받은 어사화를 쓰고 행차를 하는 일은 잔치와 다름없다.

이렇게 좋은 잔칫날에 가장 잘 어울리는 꽃은 복사꽃이다.


이런 상징이 붙어있는 복숭아꽃이라면 과거시험에 급제한 사람에게 내리는 어사화의 의미와도 잘 맞는다.

즉, 급제한 사람을 축하하면서도, 올바른 정치를 통해 태평성대를 이루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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