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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섭 Oct 05. 2022

꿈을 찾아 서성이다.

안중식의 도원문진도(桃園問津圖)




“심전(心田) 안중식에 대해 아는가?”


“안중식은 철종 12년, 1861년에 태어났네. 어릴 적 기록은 잘 모르네, 다만 아버지가 성균관 학생이었다더군.”


“1차 과거시험에서 높은 등수에 들어야 성균관에서 수학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안중식은 학자나 정치인 집안에서 자랐을 것이네. 그런데 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안중식이 어떻게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네.”


“천부적인 미술 재능이 있었다는 말이지. 아무튼, 20세가 되던 1881년에 국비 장학생으로 중국 톈진(天津)을 다녀 왔네. 안중식이 34세가 되던 1894년, 김옥균의 개화당에 의한 갑신정변이 일어나고, 다음 해부터 조선은 실질적인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지.”


“고종의 총애를 받았다고 알려졌네. 실제 1902년 고종 어진 제작에 참여하면서 명성을 높였지.”


“1911년 일본이 만든 이왕가(李王家)의 후원으로 서화미술원이 설립되자 여기에 참여하고, 1918년 민족 서화가를 중심으로 서화협회(書畵協會)가 결성되어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한다네.” 


“망해가는 조선과 강대한 일본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겠구먼.”


“그런데 1919년, 1월에 고종이 승하하네. 독살설이 나돌고 세상이 뒤숭숭했지. 정신적 지주였던 고종이 죽자 안중식은 충격을 받았네. 그해 3·1운동이 조선 팔도에서 일어났네. 안중식은 만세운동과 관련되어 내란죄라는 죄명으로 잡혀갔네.”


“곧 석방되었지만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처럼 심신이 무너졌네. 시름시름 앓다가 그해 사망했지.”


“어려운 세상을 살았네. 안중식의 작품세계는 어떤가?”


“서양화법을 수용한 기명절지도를 잘 그렸다고 하지만 역시 채색 산수화가 일품일세. 1913년에 그린 [도원문진도, 桃園問津圖]라는 작품이 있는데 상당히 특이하네.”

[안중식/도원문진도(桃園問津圖)/164.4*70.4㎝/비단에 채색/1913년/리움미술관]

“도원문진도를 글자대로 해석하면 무릉도원에 들어가는 입구를 그린 것이 아닌가.

조선 시대에는 무릉도원 자체나 안쪽을 주로 그렸지. 이런 전통을 무시하고 무릉도원 입구를 그린 까닭은 뭔가?” 


“확실히는 알 수 없네. 이 작품을 그릴 당시는 공식적으로 조선이 망했네. 따라서 조선의 무릉도원은 의미가 없어졌지. 아마도 새로운 무릉도원을 찾아야 한다고 여긴 것 같네.”


“그러고 보니, 무릉도원은 저 멀리 보이는데 배를 탄 어부는 입구에서 서성거리고 있네. 복사꽃이 활짝 핀 입구가 보이는데 왜 들어가지 못하는 걸까?”


“안중식은 일제강점기에 무릉도원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고 여겼네. 독립운동이든 계몽운동이든 목숨을 걸어야 했거든. 하지만 안중식은 반드시 독립을 이루고 무릉도원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


“그림 속에 그런 내용이 있는가? 나는 아무리 봐도 모르겠는데?”


“그림을 잘 보게. 화면 전체에 보석같이 박혀있는 밝은 점이 보이는가?”


“주로 채색 산수화에서 사용하는 태점이 아닌가. 이건 산이나 괴석, 나무 따위에 부분적으로 사용하네. 그런데 화면 전체에 태점을 넣다니, 자칫 그림을 망칠 수도 있는 위험한 기법이 아닌가.”

도원문진도 부분. 화면 전체에 빼곡하게 태점이 찍혀있다.

“안중식은 이런 위험을 정확히 알고 있었네.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넣은 이유가 있네.”


“그게 뭔가?”


“깨알같이 박힌 태점은 만백성을 뜻하네. 아직 성숙하지 않은 상태이지만 언젠가는 건장한 사람이 될 것이네.”


“안중식은 백성들이 성숙하여 난세를 극복하고 무릉도원을 이룬다고 여긴 것인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뭔가 부족하네. 만백성이 성숙하면서 일본에 물들면 어찌할 것인가?”


“태점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하네. 일본이 태점을 이끼(苔點)라고 왜곡한 것은 태점의 진정한 의미를 무서워하기 때문일세. 태점(胎點)은 생명점이네. 우리 철학에서 생명의 자리는 우주 본연의 자리와 같지. 

안중식이 표현한 태점은 양심을 가진 만백성을 말하는 것일세.”


“아, 이제 이해가 되는군. 양심을 가진 수많은 백성이 있다면 일제강점기를 끝장내고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을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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