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규섭 Oct 07. 2022

싸가지 없는 놈은 낙원에 가지 못한다.

십장생도(十長生圖)

 

“[십장생도]는 중국이나 일본에 없는 조선만의 그림이지 않는가?”    

 

“그렇다네. 중국의 해학반도도(海鶴蟠桃圖)와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를 결합하여 새롭게 창작한 것일세. 단언컨대,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명작이네.”    

 

“언제쯤 창작된 것인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대략 17세기경에 완성한 것으로 추정하네.”

십장생도/심규섭/디지털 그림(digital painting/acrylic on painter2017). 십장생도 생명력이 풍부한 태평성대를 표현하고 있다.

“[십장생도]는 장생하는 10여 가지 사물을 그린 것으로 알고 있네. 이게 정확한가?”  

   

“장생(長生)은 불로장생의 준말이 아닌가. 그런데 하늘이나 해, 구름, 물, 대나무와 같은 자연물에 인간의 수명을 비유하는 경우는 없네.

학이나 사슴, 거북이 오래 산다는 말도 근거가 없지. 어떤 거북은 수백 년을 산다고 알려졌지만 100년도 못사는 사람이 어찌 알겠는가? 

거북은 거복(居福)에서 유래한 말로, 장수보다는 복의 상징에 가깝네. 

이렇게 말하면, 복(福)도 장생의 요소가 아니냐며 따지는 사람이 있지. 

복(福)은 사람이 사회활동을 통해 만드는 정신, 물질 재부로 장수와는 아무 관련이 없네.”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십장생도를 보았는데, 장생하는 10여 가지 요소를 그린 것이라고 설명해 놓았더군. 이런 전문기관의 견해는 무시하지 못하네.”  

    

“국립중앙박물관의 견해는 참으로 유감일세. 소속된 학예연구사는 명색이 박사급인데, 십장생도를 도교적 관점으로 보는 것은 학문적으로 게으르거나 잘못된 사관(史觀)을 가지고 있는 걸세. 무엇보다 장생(長生)이라는 말에 속은 것이네.” 

    

“장생(長生)은 오래 산다는 의미가 아닌가?”   

  

“장생(長生)은 길다는 뜻과 함께 높다는 의미도 있네. 회장(會長), 의장(議長)에 사용하네.

길고 높은 것은 넓지 않겠는가. 장생은 긴 생명, 높은 생명, 넓은 생명으로 생명의 절정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정확하네.”   

   

“[십장생도]는 국가 미술기관인 도화서(圖畫署)에서 창작해 주로 궁궐을 장식했다고 알고 있네. 그렇다면 왕실의 안녕과 장수를 축원하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백성의 세금으로 왕과 왕족만의 건강과 장수를 축원하기 위해 [십장생도]를 창작했다는 것은 상당히 악의적인 시각일세. 왕실이 존재하는 목적은 민본정치를 통해 만백성의 태평성대를 구현하는 것이네.”   

  

“무엇이 악의적이란 말인가?” 

    

“알다시피, 일본은 조선을 강제병합하고 우리의 정신과 문화를 말살하고자 했지. 왕실그림을 의도적으로 훼손하거나 은폐하고 일본 신교나 도교, 미신을 채워 넣었다네. 

일본은 [십장생도]를 왕실의 안녕과 건강을 축원하는 그림으로 왜곡하여 왕과 백성을 이간질한 것이네. 우리 문화를 일본 제국주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설명하는 것은 나쁜 의도가 있는 것일세.”     


“도교(道敎)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네. 백성들이 장수의 상징으로 수용한다면, 이 또한 존중해야 하지 않겠나?”    

 

“그리 간단하지 않네. 장수하는 그림을 감상한다고 해서 정말 장생할 수 있는가? 호랑이 가죽으로 갑옷을 만들면 호랑이처럼 강해지는가, 물개 성기를 먹으면 정력이 진짜로 강해지는가?”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위약효과)라는 현상이 있지. 비록 가짜라도 간절한 믿음이 있으면 이루어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위약효과가 있다는 것은 나도 인정하네. 하지만 이건 심리실험일 뿐일세. 환자에게 가짜 약을 주고 자연적으로 치료되기를 기다리는 의사는 없네. 진료에 따라 정확한 약을 처방해야 하네.”    

 

“그야, 그렇지.”    

     

십장생도에 등장한 동물이 장수한다고 여겨 마구 잡아먹었다. 이 때문에 멸종했거나 멸종위기종이 되었다. 일본이 독도의 강치(물개)를 정력제로 잡아먹으면서 멸종시킨 것과 다르지 않다.

“장생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이 필요하네. 일단 전쟁이나 살육이 없어야 오래 살 수 있지. 물질적 풍요도 필요하네. 사기나 약탈을 당하지 않아야 하고, 가뭄, 홍수, 전염병 같은 자연재해도 막아야 하지.” 

    

“이런 조건은 개인이 할 수 없네. 국가나 사회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그렇네. 국가나 사회가 있는 것은 백성들의 장생을 위함이지. 그런데 권력자가 백성을 위하지 않고 탐욕을 부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장생은 고사하고 지옥을 경험하게 되겠지.”

     

“왕을 비롯한 정치인은 정의롭고 청렴해야 하며, 백성을 위해 헌신해야 하지.” 

    

“당연한 말이네.”  

   

“[십장생도]에는 두 개의 세상이 공존하고 있네.

겉으로 보이는 것은 수혜자의 세상일세. 당연히 [십장생도]의 수혜자는 만백성일세. 그림 속에는 왕과 양반의 상징은 없네. 어쩌면 왕과 양반, 백성을 가를 필요가 없는 세상일 것이네.”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상은 무엇인가?”  

   

“하늘은 우주의 근본 자리이며 태양은 영원함, 구름과 바다(호수), 거북이는 올바른 정치인 치수(治水)를 뜻하네. 소나무와 괴석, 영지는 변치 않는 양심, 대나무는 신념, 학은 청렴한 선비의 상징일세.” 

    

“이 두 세상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간단하네. 백성이 장생하는 태평성대의 세상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네. 마냥 기다린다고 오지도 않네. 누군가가 만들어야 하네. 양심을 가진 사람, 청렴한 사람이 헌신하고 노력하여 만들어야 한다는 말일세.” 

    

“더 간단하게 정리해 보게.”     


“타인을 사랑하는 인류애를 바탕으로 자연을 깊게 탐구하는 지식을 습득하며, 신념을 가진 사람을 조직하여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양심이라고 하네. [십장생도]는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 민본정치를 통해 창조한 생명력이 풍부한 세상인 거지.”   

  

“양심은 뭔가?”

     

“양심은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네.”   

  

“양심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사람을 해치고 세상을 망치는 짐승과 같고, 짐승은 사람들이 사는 낙원에 갈 수 없다네.” (*)  

  

[참고]

‘싸가지가 없다’는 말이 있다. 

이 싸가지는 4가지의 경음화라고 하는데, 4가지는 ‘인의예지’인 양심을 말한다.

‘싸가지가 없다’는 말은 양심이 없다는 말이고, 양심이 없는 자는 짐승과 같다고 했다.

믿거나 말거나 한 전개이지만 결론은 옳다.


작가의 이전글 꿈을 찾아 서성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