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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섭 Oct 09. 2022

큰 꿈을 가져라

우리그림의 시공간

     

“예를 들어보겠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에 표현된 풍경과 감상자와의 거리는 대략 1km 이상이네.

실제 금강전도(金剛全圖)는 마치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 본 모습을 그렸네.

사람은 1km 앞을 보지 못하지.

이 말은 인간의 관점이 아니라 철학의 관점으로 본 시공간이라는 뜻이지.”   

  

“푸른색으로 하늘을 칠한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는가?”    

 

“좋은 지적일세. 당시 하늘에 푸른색을 칠하는 경우는 없었네. 대부분 아무것도 칠하지 않고 비워두거나 가끔 밑도 끝도 없는 감색으로 칠했지. 그런데 겸재 정선은 과감하게 하늘을 푸른색으로 칠했네. 복잡한 사정은 나중에 이야기 하겠네.

아무튼, 금강산이 끝이 아니라 푸른 하늘(우주)로 연결되어 무한대로 확장한다는 의미이지.

이렇게 넓은 시공간이 필요했던 이유는 조선을 우주의 중심, 철학의 중심에 놓기 위함이네.”         

   

[겸재 정선/금강전도. 철학의 관점으로 본 시공간이다. 겸재 정선은 전체와 세부 풍경을 함께 그렸다. 사람과 우주를 하나로 본 것이다. 산 끝에 푸르스름한 하늘은 우주의 근본자리를 뜻한다. 이를 통해 조선은 우주의 중심, 철학의 중심이 되었다.]  


“단원 김홍도는 겸재의 진경산수화를 배워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고 평가하는데, 다른 점은 무엇인가?”

    

“단원 김홍도의 경우에는 100m 이상으로 볼 수 있지. 겸재 정선 이후 50여 년 만에 10배 정도 거리가 가까워졌네.

이때부터 산수화는 신(우주)의 관점이 아닌 사람의 눈으로 보고 경험할 수 있는 시공간 속에 들어왔지.

김홍도의 진경산수화는 조선 팔도의 명승지를 표현하고 있는데, 한양과 경기권역 선비들이 걸어서 갈만한 거리에 있는 풍경이지. 이후 선비들은 풍류를 즐긴다며 팔도의 명승지를 찾아다녔네.”         

[김홍도의 진경산수화. 걸어서 갈 수 있는 명승지를 주로 그렸다. 사람의 눈으로 보고 경험할 수 있는 시공간을 표현했다. 관념의 시공간을 현실의 시공간으로 끌어당긴 것이다.]    

 

“단원 김홍도가 1745년생이고, 혜원 신윤복은 1758년생이니 대략 13년 차이가 있네. 신윤복도 진경산수화를 잘 그렸다고 하는데, 차이가 뭔가?”  

   

“10여 년 차이이지만 활동방식은 전혀 달랐네. 김홍도가 궁궐 근처에서 놀았다면, 신윤복은 청계천과 종로 골목에서 놀았네.

도시의 건물과 골목은 일상과 현실의 공간이네. 이런 영향인지 신윤복의 거리는 10m 전후로 가깝네. 인물과 풍경의 거리가 가까워 아예 함께 그렸지. 그래서 풍속화인지 산수화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그림을 많이 그렸네.”       

[신윤복은 먼 거리 명승지가 아니라 동네 유원지를 그렸다. 구름이나 안개를 이용한 여백을 둘 공간이 없을 정도로 시공간이 가깝다. 심지어는 인물과 산수화를 함께 그려 풍속화인지 산수화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시공간의 차이가 나는 이유는 뭔가?”   

  

“철학의 시공간이 점차 현실에 적용되어 구체화했다는 것이고, 양심보다는 욕망의 가치가 커졌다는 의미도 있지. 겸재 정선은 조선 후기 전성기의 시작을 열었고, 단원 김홍도는 전성기의 중심에 있었으며, 혜원 신윤복은 전성기의 끝 무렵을 살았네.

이를테면,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는 서늘함이 느껴질 정도로 이성적이고, 거리가 가장 가까운 신윤복 그림에는 인간의 생생하고 뜨끈한 욕망이 느껴지지.”

    

“그렇다면 요즘 유행하는 팝아트의 거리는 얼마나 되나?”  

   

“대략 1m 내외일 것이네. 고양이나 꽃, 인물, 정물을 확대한 그림을 떠올리면 금방 이해될 것이네. 이렇게 시공간이 좁아지면 철학과 양심에는 관심이 사라지고 소확행, 힐링, 요로, 오타쿠 따위의 문화 현상이 만들어지지.”  

   

“미술작품에 표현된 거리를 전문용어로 시공간(時空間)이라 불러도 되는가?”  

   

“정확하네. 시간과 공간은 떨어지지 않기에 시공간이라 부른다네. 아무튼, 작품 속에 표현된 시공간의 크기가 명작의 기준이 된다는 것은 알고 있는가?”  

   

“동서양의 많은 작품을 감상했지만, 시공간을 적용하여 보지는 않았네. 솔직히 명작이 왜 명작이 된 것인지 속 시원하게 알려주는 사람은 보지 못했네. 사람들은 그저 가장 비싼 그림이 가장 명작이라고 여길 뿐이네.”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겠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피카소의 입체파 작품이 명작이 된 것은 시공간을 확장했기 때문일세. 모나리자는 실내 인물과 야외 배경을 결합하여 새로운 시공간을 창조했지. 피카소는 사물의 모든 방향에서 보는 작품으로 시공간을 확장했네.

모나리자는 SF영화의 바탕이 되어 우주세계, 공룡세계처럼 미지의 시공간까지 볼 수 있게 되었지.”    

 

“아하, 그렇다면 피카소의 입체파 작품은 3D 입체 영상의 바탕이 되었단 말이지?”    

 

“그렇다네.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여 신의 영역에 도전한 결과이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피카소는 르네상스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공간을 창조하거나 확장했다.]


“윌리엄 클라크 교수(William Clack/1826~1886년)가 일본 학생들에게 했던 말이 생각나는군. Boys, be ambitious! 청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큰 꿈을 가지는 것이 곧 시공간을 확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군.”

     

“시공간이 넓다고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네. 시공간을 규정하는 것은 당대의 철학일세. 시공간 속에 숨어있는 철학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망상에 빠질 수 있지.

15세기 대항해시대는 유럽의 시공간을 넓혔지만 제국주의, 식민지 건설과 세계대전, 살육, 약탈이라는 고통을 만들어냈지. 대항해의 목적이 탐욕이었기 때문일세.

만약 이런 관점으로 우주까지 시공간을 확장하면 반드시 우주전쟁이 일어나고 지구는 완전히 파괴될 것일세.”   

  

“껍데기 시공간에 속으면 위험하다는 말이군, 잘 알겠네.”  

   

“마지막으로 현재 우리나라의 시공간은 어느 정도인가?”  

   

“시공간은 좁아졌고 그 질 또한 좋지 않네.

알다시피, 우리 주변은 핵무장 국가이고 적과 아가 명쾌하게 구분되지 않네.

내부의 정치의 시공간은 극도로 좁아져 약 올리기, 꼬투리잡기, 감정싸움 따위에 매몰되어 있지.”   

  

“극복할 방안은 없는가?”   

  

“세계와 관계를 맺고 시공간을 확장해야 하네.

우리나라에서 시공간을 세계로 확장하는 매개는 남북관계 밖에는 없지. 하지만 남북관계가 가장 어렵다고 하네. 주변국의 이해뿐만 아니라 내부의 이해도 얽혀있기 때문이지. 반대로 남북관계로 주변국을 통제하고 내부를 통일할 수 있다네.”   

  

“혹시 남북 관계를 풀기위한 신묘한 방법이 있는가?”  

   

“이건 비급일세. 절대로 발설하면 안 되네.”

    

“뭔가? 빨리 알려주게.”

    

“양심이네. 양심밖에는 없네. 전쟁과 탐욕이 아닌 공생공존의 호혜관계를 만드는 최고의 방법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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