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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섭 Oct 11. 2022

겸재 정선이 영혼을 갈아 넣어 완성한 소나무 그림

노송영지도((老松靈芝圖))

“소나무는 조선 팔도에 흔한 사철나무인데, 건축 자재, 땔감으로 사용하는 백성의 나무라고 할 수 있지.
심지어는 솔잎을 넣어 찐 송편이나 건강에 좋다는 송화는 먹기도 한다네.

생활에 밀접하면 미술작품의 소재로 널리 사용하지 않던가?”


“십장생도와 같은 채색화나 수묵산수화의 단골 소재로 소나무가 등장하지. 소나무와 학을 그린 송학도(松鶴圖)나 소나무와 독수리를 그린 송취도(松鷲圖)는 많이 보았네.”


“소나무에는 어떤 상징이 붙어 있는가?”


“사철나무의 특성에 따라 변치 않는 신념, 영원함의 상징이지.”


“크고 우람한 나무에, 좋은 상징까지 붙었다면 소나무만 단독으로 그린 작품도 흔하겠지?”


“소나무만 그린 것은 좀처럼 찾기 어렵네.”


“왜 그런 건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네. 소나무는 너무 흔한 소재이면서 모험을 해야 할 정도로 그리기가 어렵지. 조금 어려운 말이지만, 상징이 명쾌하고 모두가 좋아하는 소재를 그리면 게으른 화가라고 비난받을 수도 있네.

그런데 말이지. 이렇게 어렵다는 소나무를 그린 화가가 있긴 하네.”


“그게 누군가?”


“바로 화성(畫聖)이라 불리는 겸재 정선이네.”


“겸재 정선은 선비 화가이자 진경산수화의 창시자가 아닌가. 특히 조선을 우주 본연의 자리로 표현한 금강전도가 유명하지. 이런 겸재가 소나무를 단독으로 그렸다니 금시초문일세.”


“2001년 4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한 작품이 7억에 낙찰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하지. 박수근의 유화가 3~4억 정도이던 시절,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였지.

이 작품을 구매한 사람은 이회림 동양제철화학 회장(당시 85세, 2007년 작고)이었네.”


“엄청나군. 그 당시 7억이면, 현 시세로 수십, 수백억이 되겠는데.”


“값으로 매기기 어려울 것이야. 어쨌든 이 작품은 매매하지 못하네. 2005년 6월, 이회림 회장이 인천시 송암미술관에 기증해 버렸기 때문이지.”


“아무튼, 그때 팔린 작품이 겸재 정선의 소나무 그림이란 말이군.”


“그렇네. 바로 겸재 정선이 그린 노송영지도(老松靈芝圖)이네. 이 작품은 1755년에 그렸는데, 당시 겸재의 나이는 80세였네. 실험적인 작품이 아니라 인생과 창작 경험을 통째로 갈아 넣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네.”


“노송영지도는 늙은 소나무와 영지를 함께 그린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소나무 단독 그림으로 보기 어렵지 않나?”


“작품의 크기가 무려 147*103cm 일세. 이렇게 큰 화면에 그린 이유는 크고 우람한 소나무를 그리기 위함이지. 영지는 양념 같은 소재일 뿐이지.”


“영지를 불로초라고 하니까 소나무와 결합하여 장수를 축원하는 뜻을 담았겠군. 이건 확신하네. 나도 그림 공부 좀 했거든.”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네. 먼저 그림을 한 번 살펴보세.”


겸재 정선/노송영지도/종이에 수묵담채/103*147cm/인천 송암미술관. 겸재 정선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그린 대작이다.

“일단 작품의 소재가 소나무인 것은 확실하네. 그것도 크고 우람한 소나무를 그렸네.”


“제목처럼 노송(老松)인가?”


“노송은 늙은 소나무라는 뜻인데, 그림 속의 소나무는 별로 늙어 보이지 않네. 사람에 비유하자면, 장년에 가깝지. 늙을 노(老)는 요즘 말로 해석하면 의미가 좁아지네. 완숙, 완성의 뜻까지 확장해야 하네.”


“솔직히 말해도 되는가? 내가 보기에 소나무를 썩 잘 그린 것 같지는 않네. 충분한 묘사를 할 수 있는데도 이리 거칠게 그린 이유는 뭔가?”


“정확히 보았네. 요즘 눈으로 보면 거친 먹선으로 아무렇게나 그린 것처럼 보일 것이네. 하지만 이렇게 그린 이유가 있네.

짧게 설명하자면 이렇네. 사람들은 사물을 정교하게 사생하거나 수려한 채색을 한 그림을 좋아하지. 사실적으로 묘사하면 사물 자체에 관심을 집중하지만 정작 뜻이나 의미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네. 참새를 실제처럼 묘사하면 사람들은 ‘정말 참새와 똑같아. 어쩌면 저리 잘 그릴까’라고 감탄을 하지. 그리고는 이내 관심을 거두지. 참새를 왜 그렸는지가 가장 중요한데 말이야.”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는 말인가?”


“그렇다네. 미술작품에서 사실적 묘사는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겸재 선생은 소나무의 생태나 외형보다는 소나무가 가진 진정한 의미를 표현하고자 했네.”


“그게 무언가?”


“소나무의 전체 모습을 보시게. 뭔가 꿈틀거리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거친 먹선이 마치 용트림을 하는 것 같군.”


“정확히 보았네. 이렇게 용트림하는 붓질은 소나무 속에 글자를 겹쳐 그리고자 한 결과이네.”


“글자라고? 무슨 글자가 보인단 말인가?”


“겸재 정선은 소나무를 목숨 수(壽)라는 글자와 겹쳐 그렸네. 왼쪽 아래에 영지를 그려 넣은 것도 최대한 수(壽)와 비슷하게 보이고자 하는 의지이네. ”

겸재 정선/노백도/종이에 수묵담채/131*55.6/리움미술관. 향나무를 목숨 수라는 글자와 겹쳐 그렸다. 군자의 향기가 향나무처럼 퍼져 나가라는 의미이다.

“그러고 보니, 정말 목숨 수(壽)로 보이네. 그렇다면 굳이 소나무와 수(壽)를 결합한 이유가 있을 것인데? 늘 푸른 소나무처럼 건강 장수를 기원하기 위함인가?”


“겉으로는 그리 해석할 수 있네. 하지만 겸재는 성리학을 공부하고 당대 최고 실력자들과 교류한 선비가 아닌가. 더 깊은 뜻이 있네.

일단 목숨 수(壽)의 개념을 정확히 알아야 하네. 수(壽)는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철학적 개념이 들어가 있네.”


“흔히 수명(壽命)은 사람이 사는 연한을 뜻하지 않는가?”


“사람에겐 두 가지 목숨이 있네. 하나는 다른 동물과 같은 목숨이네, 태어나고 성장하고 죽는 그런 목숨이네. 하지만 겸재 정선이 표현한 수(壽)는 사회적 목숨을 의미한다네.”


“그 둘은 뭐가 다른가?”


“사람은 태어나면 반드시 죽네. 다른 동물도 그러하지. 하지만 사람은 고도의 사회를 만들어 삶을 영위하네. 수(壽)는 자연상태의 목숨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만 발현되는 목숨이라고 할 수 있지.

더 쉽게 말하면, 산소호흡기를 달고 평생 병상에 누워 살거나, 섬에서 혼자 사는 것이 무슨 사회적 의미가 있겠는가?”


“아, 어렵네. 사람이 태어나서 살다 죽는 것에도 차이가 있다는 말인가?”


“예를 들어 보겠네. 친일매국노가 호의호식(好衣好食)하며 100세를 살았네.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죽이고 32세에 사형을 당했네.

100세에 죽은 악당의 목숨이 길기는 하지. 하지만 32세로 죽은 안중근 의사는 우리 사회 속에서 지금도 살아있다네. 이해가 되는가?”


“실제로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존재하면서 선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말이군. 안중근 의사는 지금까지 우리 속에 살아있으니 사회적 생명은 143세 된 청년의 모습이네. 하하.”


“그렇다네. 악당은 잊히네. 혹 기억하면 욕을 할 뿐이지. 안중근 의사는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과 생각을 말하고 있네. 쉬고 싶어도 사람들이 가만 두질 않지. 매년 불러내어 기념하고 추앙할 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 연극, 소설, 그림의 주인공이 된다네. 이런 행위는 대한민국이 망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네. 이만하면 영생한다고 봐야 하네.”


“이해했네. 그러니까, 겸재 정선은 소나무를 사회적 생명인 수(壽)와 같다고 여긴 것 아닌가.”


“당시 사회적 생명이 가장 높은 사람을 군자(君子)라고 불렀네. 겸재 선생은 사회적 생명의 정점에 있는 군자와 소나무의 변치 않음, 영원함이 같다고 여긴 것이네.

사회적 생명은 양심의 실천을 통해 얻어지네. 양심은 자신을 올바르게 하고 가정을 화목하게 하며, 나아가 만백성들이 평온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일세.”


“이 작품은 겉으로 감상하는 그림이 아닌 것 같네. 작품 속에 담긴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돼지 목에 걸린 진주가 될 뿐.”

겸재 정선/사직노송도(社稷老松圖)/종이에 채색/61.5*112/17세기/고려대 박물관. 사직단에 있던 노송을 그렸다.  종묘사직은 국가의 정체성과 본질을 의미한다.

“노송영지도는 대단한 명작이네.

겸재 정선은 금강전도를 통해 조선을 우주 본연의 자리, 세계 철학의 중심에 놓았네. 그렇다면 조선은 무릉도원, 태평성대의 세상이 되어야 최종적으로 완성되지. 홍익인간(弘益人間)은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한다고 해석하지. 누가 세상을 이롭게 하고 태평성대를 이루겠나? 귀신도 아니고 하느님도 아닌 사람이 할 수밖에 없네.

겸재는 조선을 태평성대로 만들려면 반드시 사회적 존재인 군자가 필요하다고 여겼네.

겸재가 80세 때 그린 마지막 작품이네. 남은 모든 기력을 짜내어 그렸네. 이 작품을 완성하고 노환을 앓다 3년 후에 사망했지.

겸재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양심, 이 한마디이네. 양심만이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평온하게 할 수 있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지.”


“마음이 숙연해지네. 당시로는 엄청난 크기의 그림이라고 들었네. 거대한 양심의 소나무 한 그루를 그리기 위해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웠다니.”


“마지막으로, 왼쪽 아래에 있는 영지에도 뜻이 있네.”


“수(壽)라는 글자처럼 보이게 하는 장치라 하지 않았는가?”


“조형적으로는 그렇네. 사실 영지 대신 괴석을 넣어도 큰 문제는 없다네.

소나무 밑에 영지가 어색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가? 영지는 소나무 밑에서 자라지 못하네. 이런 생태성을 무시하긴 어렵지.

겸재는 의도적으로 영지를 그려 넣었네. 작품의 내용을 완성하고 확장하기 위함이지.”


“보통 영지는 불로초, 불로장생의 상징으로 알고 있네만.”


“혹시 지란지교(芝蘭之交)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지(芝)는 영지, 난(蘭)은 난초를 말하네, 영지와 난초의 향기로운 교우를 의미하지. 여기서 지(芝)는 불로장생과 아무 관련이 없네.

영지는 군자의 향기(香氣)를 뜻하지.”


“지란지교(芝蘭之交)라는 말에 대입하면, 지송지교(芝松之交)가 된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영지는 군자의 향기를 널리 퍼트리는 역할이군.”


“그렇네. 군자의 향기가 널리 펴져 만백성이 교화되고 풍요로운 세상이 될 것이라는 기원을 담고 있는 것일세.”


“이 작품이 인천 송암미술관에 있다고 했던가? 우리 조만간 이 명작을 보러 가세. 작품 감상 후 근처 월미도에서 술 한잔하는 것도 잊지 말고. 하하.”(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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