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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섭 Oct 13. 2022

일본이 탐낸 조선의 보물

백자와 몽유도원도

한양의 청계천 광통교에는 각종 그림과 서예, 문방구와 화구를 파는 서화사(書畵肆), 지물포 따위가 모여 있었다.

요즘으로 치면 인사동 같은 곳이다.   

  

저녁 무렵, 광통교 뒷골목 주점에 몇몇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감색 두루마기를 입은 남자가 곰방대를 탁탁 치며 호기롭게 말한다.   

  

“오늘 술은 내가 사겠네. 주모, 여기 좋은 술과 고기 안주를 내어 주시오.”

     

“얼마 전 십장생도 10폭 병풍을 팔았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사실인가 보오.”

     

“그렇소. 주문과 납품까지 반년이 걸렸소. 주문한 손님이 그림을 보는 눈이 워낙 깐깐해서 애를 먹었소.”

     

“그 비싼 십장생도 병풍을 어디에 쓰려고 한답니까?”

     

“경기도 안성에서 온 늙은 선비로 작은 서당에서 훈장을 한다고 했소. 혼인이나 환갑 같은 잔치에 사용한다고 마을사람들이 돈을 추렴했답니다.”

     

“보통은 모란병풍을 사용하는데, 십장생도를 선택한 연유가 뭐라고 하오?”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고자 한답니다. 태평성대를 꿈꾸는 사람이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는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면서요.”

     

“당연한 말입니다. 아무튼, 이번 십장생도를 그린 화원과 함께 왔소. 인사들 하시지오.”

     

“화원 이수영이라 합니다.”  

   

“아, 울진 망양정을 그려 숙종 임금의 혔던 체증을 확 풀어버렸다던 이수영 화원이 아닙니까! 유명한 도화서 화원을 여기서 만나다니 너무 기쁩니다. 제가 술 한 잔 올리겠습니다.”

     

“도화서는 그만 두었소. 환갑이 지나도록 젊은 화원들의 앞길을 막고 있는 것 같아 내내 불편했지요. 조그만 화실에서 제자들을 양성하며 소일하고 있소.”

    

술잔이 몇 차례 돌았다.

광통교 서화사의 터줏대감이라 불리는 화상이 묻는다.  

       

[심규섭/십장생도/디지털그림.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그림이다. 십장생도는 민본정치를 통한 태평성대를 뜻하며 생명력이 풍부한 이상세계로 확장한다. 중국의 해학반도도와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결합하여 새롭게 창작했다.]   

  

“도화서에서 그리는 십장생도와 광통교 그림시장의 십장생도는 뭐가 다르오?”

    

“잘 그리고 못 그리는 차이가 가장 큽니다. 도화서에서는 뛰어난 채색능력을 가진 화원이 많지요. 무엇보다 좋은 천연물감과 비단, 붓을 아낌없이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야 어쩔 수 없지요. 그림의 형상이나 내용에서 차이는 없는지요?”

    

“궁궐과 관청에서 사용하는 십장생도의 구도와 채색은 정갈해야 합니다. 특히, 도교나 미신의 요소가 들어가지 않도록 경계합니다.”

    

“십장생도와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깊은 연관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렇습니다. 십장생의 형식은 해학반도도이고, 내용은 몽유도원도에 있지요.”

    

“이수영 화원께서는 몽유도원도를 본 적이 있는지요?”  

   

“기록으로만 전해지고 실물은 조선에 없습니다. 임진년에 왜놈들이 약탈해 간 것으로 알고 있지요.”

    

감색 두루마기 사내가 끼어든다.  

   

“여기 이수영 화원은 통신사절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다녀왔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일본의 흐름을 잘 안다고 할 수 있지요.”  

   

“자세히 말해 설명해 주시오.”

    

“일본을 다녀 온지 십여 년 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좀 긴 이야기입니다. 일본 승려에게 직접 들은 말이지만 진위는 알 수 없소. 하지만 개연성은 아주 높습니다.”

     

“일본을 통일한 풍신수길(豊臣秀吉, 토요토미 히데요시)란 자가 임진년에 왜란을 일으킨 것은 잘 알고 있을 것이오.

일본을 통일하니 할일이 없어진 사무라이들이 문제였답니다. 나누어줄 관직이나 영지가 부족했기 때문이지요.

그냥 죽일 수도 없고, 놔두면 반역을 일으키거나 해적이 되어 조선이나 명나라를 약탈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대내외적 문제가 발생하여 골치가 아프게 되자, 이들을 중심으로 조선을 침략할 계책을 짭니다.

조선에서 전쟁을 하다 죽으면 좋고, 만에 하나 조선을 손에 넣게 되면 더욱 좋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풍신수길은 출정을 앞둔 장수들에게 조선의 최고 보물을 가져오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장수들은 조선의 최고 보물이 뭔지 몰라 금은보화나, 팔만대장경 따위를 가져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승려가 조선 최고의 보물은 도자기와 몽유도원도라고 대답합니다.”  

   

“풍신수길이 연유를 물으니, 승려가 대답합니다.

우리 일본은 아직 최고급 기술의 결정체인 도자기를 만들지 못합니다. 일전에 네덜란드 상인에게 들으니 유럽에서는 도자기가 비싼 값에 팔리고 있고 그것을 명나라가 독점하고 있답니다.

조선은 명나라와 비견할만한 도자기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무역을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조선의 도자기 기술을 가져올 수 있다면 일본 전체가 먹고 살만 할 것입니다.”

     

터줏대감 화상이 거든다.

       

“그 얘기는 나도 들었소.

왜놈들이 잡아간 조선의 도공은 2,000여명이 넘었다지요. 여주 관요에 소속된 최고 도공이 700명 정도였소. 2,000명이면 조선의 도공은 모조리 잡아갔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오. 왜란이 끝나고 백자 그릇이 없어서 왕실 제사를 지내기가 어려웠다는 말도 전하오.”

     

“풍신수길은 과연 최고의 보물이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럼 두 번째는 무엇이냐?

승려가 대답하길,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는 조선인의 꿈과 이상이 담긴 그림입니다. 조선이 중국보다 높은 문화를 가진 것은 성리학을 만백성까지 전파하고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조선 문화의 정수를 표현한 것이 몽유도원도입니다.

이 몽유도원도를 공부하고 이해한다면 일본의 수준도 높아질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풍신수길은 장군에게 이를 실행할 수 있도록 비밀 교지를 내립니다.”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이 두 가지를 훔쳐 간 다음 어떻게 하였소?”         

[일본 아리타에 있는 이삼평 조각상과 기념비. 조선 도공 이삼평은 일본 도자기의 신으로 불린다.]

     

“승려가 말하길,

일본에 끌려온 조선 도공들은 백자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백자의 원료인 백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조선 도공 이삼평은 백토를 찾아 일본 전국을 뒤졌고, 결국 아리타에서 백토를 발견합니다. 이후 아리타에서 조선과 똑같은 백자를 구워내기 시작했지요.”

      

“좋은 백자가 생산되어 일본 백성의 생활이 좋아졌겠군요. 조선에서 백자는 흔한 물건이 아닙니까. 집집마다 한 두 개의 큰 항아리 백자가 있어 술이나 곡식을 넣는 용도로 사용합니다. 깨진 백자는 요강이나 개밥그릇으로 쓸 정도입니다. 하하.”

     

“아닙니다. 귀족이 아닌 백성들은 여전히 목기를 사용하더이다. 정작 백자의 쓰임새는 따로 있었지요.”

     

“외국에 내다 팔기라도 했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마침 유럽의 상인들이 도자기를 구매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명과 청이 전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자기공장을 모두 폐쇄해 버립니다.

유럽 상인들은 할 수 없이 백자를 만들었던 일본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첫 주문이 백자 50만개였다고 합니다.

이로써 도자기는 일본을 먹여 살리는 보물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보물인 몽유도원도는 어찌 했답니까?”

    

“승려가 말하길,

몽유도원도를 펼쳐 놓고 풍신수길과 장수들이 감상하는데 모두 꿀 먹은 벙어리마냥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답니다.

평생 전쟁만 해 온 무사들이라 그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풍신수길이 승려에게 설명을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승려는 조선의 왕자였던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조선 최고의 화원인 안견이 그렸다고 말했습니다.”

     

“옆에 있던 귀족이 그림이 뜻하는 세상이 뭐냐고 다그치자,

승려는 전쟁과 약탈이 없고, 평범한 백성이 주인공이 되어 공생 공영하는 세상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들은 풍신수길을 비롯한 장군들은 경악을 합니다.”         

[안견/몽유도원도/비단에 담채/38.7cm*106.5cm/1447년 조선/일본 덴리 대학.

세종대왕의 셋째 왕자인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안견이 그렸다. 조선이 꿈꾸는 세상을 도연명의 무릉도원과 결합했다. 전쟁과 살육이 없으며, 특별한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공생 공영의 세상을 표현하고 있다.]

    

검은 두루마기 화상이 술잔을 들다말고 묻는다.

    

“그림을 보고 놀라다니요?”   

  

“일본은 봉건국가로 영주와 같은 귀족과 사무라이, 농노로 계급이 분화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그림이 일본 백성들에게 알려진다면 기존의 질서가 붕괴되고 영주나 장군의 권위는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체제를 위협하는 그림이나 어찌 무섭고 두렵지 않겠소.

조선에서 경전으로 추앙받는 맹자의 책이 일본에서 금서가 된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풍신수길이 명령합니다.

전염병 같은 그림이다. 백성들이 이 그림을 보게 되면 순식간에 퍼져 나갈 것이다. 당장 불태워 버리고 싶지만 조선 최고의 보물이니 그러진 않겠다.

이 그림을 가져온 장군에게 돌려주고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못하도록 하라. 이후 일본에서 몽유도원도를 본 사람은 없답니다.”  

   

묵묵히 듣고 있던 터줏대감 화상이 한숨을 쉬며 말한다.  

   

“조선에서 훔쳐간 도자기 기술로 일본이 부강해지면 또 다시 조선을 넘볼 텐데 참으로 걱정이오.”

    

이수영 화원이 진지한 눈빛으로 말한다.  

   

“조선의 진짜 보물이 뭔지 아시오?”   

  

“도자기와 몽유도원도라고 하지 않았소?”

      

“그것은 껍데기입니다. 도자기와 몽유도원도의 주인이 진짜 보물입니다. 바로, 백성이지요.

백성을  소중하게  여기고 위하는 마음은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조선 최고의 보물은 여전히 우리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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