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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섭 Feb 05. 2023

십장생도가 남북 분단을 예언했다?

십장생도의 변천사

십장생도는 조선의 공식그림이다.

왕의 비서실에 해당하는 규장각 소속 자비대령화원과 예조 소속의 도화서에서 국가 방침에 따라 창작했다.

십장생도 창작에는 규장각, 홍문관, 사간원, 예조판서와 같은 정치인이 직간접적으로 간여했다. 당대의 정치, 문화, 군사, 경제의 흐름이 총합되어 있는 것이다.

십장생도에는 당대 주류세력의 철학과 백성들의 정서가 담겨있다.   

  

“조선을 대표하는 경전에 주역(周易)이 포함되어 있지. 주역을 이용하여 점을 치거나 미래를 예언하는 사람도 있네. 혹시 십장생도를 창작할 때 주역의 원리를 투영한 것인가?”   

  

“주역과 십장생도는 아무 관련이 없네.”    

 

“십장생도에 남북의 분단을 예견한 내용이 있다는 말이 있던데, 무슨 근거로 말하는 것인가?”   

  

“너무 서두르지 말게. 일단 십장생도를 찬찬히 살펴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네. 참고로, 현재 남아있는 십장생도는 많지 않네. 그 중에서도 제대로 그린 것은 몇 점밖에는 없지.”

    

“어서 보여주게. 오늘은 미래를 예견하는 신묘한 십장생도의 세계에 빠져보고 싶네.”         

[그림1-십장생도 10폭/비단에 채색/133.3cm*510.8cm/국립중앙박물관 소장. 2폭이 유실되어 현재 8폭이 남아있다.]     


“먼저, 그림 1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십장생도라네. 이 작품은 남아있는 십장생도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평가하지. 어림잡아 17세 후반 쯤에 창작한 것으로 판단하네.

중앙과 좌측 끝의 2폭이 유실되어 온전한 모습은 아닐세.

이 작품의 구도는 크게 우측의 육지와 좌측의 큰 호수로 나눌 수 있지. 아주 중요한 지점이니 꼭 기억하기 바라네.

또 하나, 우리 전통그림은 감상하는 방향이 있다네. 바로 우측에서 좌측으로 흘러가듯 보아야 하네. 그림 속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순서도 이와 같네. 서양그림과는 반대방향이지.

아무튼, 사슴이 뛰어노는 육지와 거북이 헤엄치는 큰 호수의 비율은 대략 반반 정도로 표현되어 있네.

오른쪽 육지에서 왼쪽의 큰 호수를 바라보는 것으로, 육지는 현실, 큰 호수는 이상과 꿈을 상징한다고 이해하면 되네. ”

    

“파도가 치고 거북이 헤엄치며 태양이 떠오르는 곳은 바다가 아닌가? 그런데 호수라고 하는 이유는 뭔가?”     


“호수가 너무 거대하여 마치 바다처럼 보이도록 표현한 것이지. 신비하게 보이게 하려는 일종의 미술적 과장일세.

어쨌든, 바다와 호수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지. 바다는 알 수 없고 두려운 세계로 인식하지만 호수는 아무리 넓어도 사람의 손을 벗어나지 못하네. 생활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지.”     

 [그림2-심규섭/십장생도 10폭/디지털그림/2022. 유실된 2폭과 좌우의 잘린 부분을 보완하여 새로 창작했다.]     


“화면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호수를 크게 그린 이유는 뭔가?”  

   

“정곡을 찌르는 질문일세.

 당대 사람들이 인식하고 수용했던 시공간의 크기를 의미하네.

흔히 17~18세기를 조선의 전성기라고 한다네. 당시 선조들은 조선을 세상의 중심 국가로 여겼네. 큰 땅과 많은 인구, 군사와 경제의 중심지가 아니라 세계 철학과 문화를 이끌어가는 나라라고 생각했다네.”

    

“넓은 호수는 넓은 세상을 뜻한다는 말인가?”    

 

“그렇다네. 넓은 세상을 품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네.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에는 시공간이 우주 끝까지 다다르게 표현하기도 했지.

세상 전체를 보는 관점이 생기면서 조선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지. 조선만의 특색이 드러난 진경산수화, 문학, 시, 글씨 따위가 창작되고 삶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지.”   

  

“세상은 늘 변화하지. 이런 변화를 십장생도가 어떻게 표현했는지 궁금하군.”    

[그림3-십장생도 10폭/심규섭/디지털그림/2019. 가장 아름다운 십장생도이다.]   

  

“다음 그림을 빨리 보여달라는 말이군. 알았네. 그림 3의 그림은 대략 18세기 말 쯤 창작한 것으로 추정하네. 가장 아름다운 십장생도라고 평가하네.”    

 

“앞선 그림과 비교해보니 호수가 확 줄었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큰 호수가 50% 가량 줄었고, 대신 육지 공간이 늘어났지. 호수에 있던 두루미들이 육지에서 놀고 있는 것도 흥미롭지 않은가. 아무튼 육지 공간이 넓어진 것은 현실의 삶에 집중하고 있다는 말일세.

일단 이 그림이 창작된 시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네.

18세기 후반은 정조임금의 시대였네.

병자호란 이후 150여년간 전쟁이 없는 평화의 시대였네. 중국과의 조공무역, 중개무역으로 재화가 넘쳐났고 백성들의 삶은 풍요했네.

어떤 선비는 이만하면 능히 태평성대라고 부를 수 있다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지.

삶이 풍요하면 외부세계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 수 밖에 없네. 드넓은 호수가 작은 호수로 바뀐 이유일세.”  

   

“우측 중간에 표현된 동굴은 무슨 의미인가?”     


“십장생도에서 둥굴의 표현은 아주 중요한 감상 포인트일세.

동굴은 안과 밖을 구분하는 장치인데, 외부 세상은 어려운 현실, 동굴 안쪽의 세상은 무릉도원, 태평성대를 의미하지.

십장생도는 동굴을 통해 들어온 이상세계를 표현했네. 안평대군의 꿈을 담은 몽유도원도가 최종적으로 십장생도로 완성된 것이지.”

    

“우측에 개울이 생겼는데 이유가 뭔가?”   

  

“공간을 아름답게 꾸미는 장치로 파악하네. 집앞에 시냇물이 흐르는 시골 풍경을 떠올리면 쉬울 것이세.

좀더 설명하자면, 큰 호수는 넓은 세계관과 공공의 철학을 의미하고 시냇물은 현실의 삶, 작은 욕망이라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지.

아무튼 큰 호수가 상징하는 공공심과 시냇물이 상징하는 욕망이 조화있게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지.”           

[위 그림4-십장생도 10폭/비단에 채색/350.4cm*187.5cm/국립고궁박물관/19세기.

아래 그림5-십장생도 8폭/비단에 채색/380.4cm*210.0cm/국립고궁박물관/19세기]  

   

“같은 초본을 사용했는지 두 작품이 비슷해 보이는군. 음, 하지만 자세히 보니 여러 곳에서 차이가 있네. 어느 작품이 먼저 창작된 것인가?”   

  

“솔직히 알 수 없네. 창작연도, 서명, 낙관이 없기 때문이지. 어느 작품이 먼저 그렸을까? 한 번 맞춰보게.”   

  

“나를 너무 과대 평가하는군. 둘 중 하나를 찍는다는 기분으로 말함세. 내가 보기에는 그림4 작품이 먼저라고 생각하네.”

    

“이유는 뭔가?”   

  

“그림 4의 하늘이 황색인데, 그림 5는 청색일세. 앞서 본 십장생도의 하늘은 모두 황색이니 전통에 더 가깝지 않겠는가. 또 하나 있는데, 바로 물을 마시는 사슴의 표현일세. 앞선 그림에 있는 모습을 그대로 따라한 것은 그만큼 가깝다는 말이 아니겠나.”

     

“대단한 눈썰미를 가졌네. 나도 찾지 못한 물 먹는 사슴의 모습을 보다니. 그림 4와 그림 5를 비교해 보면, 그림 5에서는 물 먹는 사슴이 왼쪽에 표현되어 있네.”  

   

“바로 그거야. 오른쪽에 물 먹던 사슴이 왼쪽으로 이동하려면 시간이 걸리지 않겠는가. 그러면 당연히 그림 4가 먼저일 수 밖에 없네. 하하하.”   

   

“그럴 듯 하네. 아무튼 나는 이 두 작품의 선후를 명쾌하게 판단하지 못하지만, 자네 말대로 그림 4가 먼저일 거라고 짐작 할 뿐이네.

그림 5에는 1870년대 쯤 들어온 인공 울트라마린(파란색)을 하늘에 칠했고, 소나무에는 일본식 태점의 표현되어 있네.

오른쪽에서 5폭에 있는 일부 산의 색을 주황색으로 칠했네. 이런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표현을 용납했다는 것은 도화서라는 국가조직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하네.

아무튼, 그림 4와 19세기 중반, 그림 5는 19세기 후반 쯤에 창작한 것으로 추정할 뿐이네.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작품들은 아예 호수가 없어지고 하천(河川)으로 바뀌었네.

강이라고 하기에는 길이가 좁고, 천(川)이라고 하기에는 넓어서 뭐라고 지칭하기가 쉽지 않네. 아무튼 화면 전체를 육지 공간으로 표현한 것이지.”   

  

“호수가 사라진 자리에 하천을 그렸다는 것은 뭘 의미하는가?”  

   

“꿈과 이상보다는 현실의 삶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이 아니겠나.

19세기 중반이면 제국주의 탐욕이 극성이었던 시대가 아닌가. 일본의 메이지 유신, 중국의 아편전쟁이 있었고 조선에 대한 외세의 간섭이 시작되었지.

내부적으로는 세도정치의 폐해로 인해 삼정이 문란해지고 부정부패가 심화되었다네. 이런 상황에서 백성들은 자기 살길을 찾는데 바빴으니 양심이나 공공질서는 약해질 수 밖에 없었지.”  

   

“그림 5의 오른쪽을 자세히 보니, 육교(陸橋)가 있고 사슴이 건너는 장면이 표현되어 있네. 십장생도에 육교라니 상당히 의아한 표현일세.”    

 

“육교에 대해 이야기할지 말지를 망설였네. 정치적인 의도가 숨어있는 무서운 표현이기 때문일세.”

    

“육교에 무슨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말인가?”   

  

“육교를 표현했다는 것은 중앙의 육지가 마치 섬처럼 되어 있다는 반증이 아닌가. 조선은 엄연히 대륙인데 섬처럼 표현한 것은 조선 땅을 바라보는 관점에 상당히 큰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지.

혹시 일본의 영향을 받아 조선을 섬처럼 표현한 것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네. 일본은 우리나라를 한반도(韓半島)라고 지칭했네. 반도(半島)는 반쯤 섬이라는 말이 아닌가. 대륙의 나라를 일본열도처럼 섬나라로 규정한 것이지.”  

   

“19세기 말, 정치적으로 혼란했지.

1894년 일본을 등에 업은 갑오개혁이라는 쿠테타가 일어나고 이후 조선은 실질적인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지. 만약 일본이 자금을 들여 십장생도 창작을 강요했다면 일본제국주의의 정서가 들어갈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림6-십장생도 10폭/비단에 채색/1879년/미국 오리건 대학 조던 슈나이처 박물관(Jordan Schnizter Museum of Art)소장. 이 작품은 미국회사에 판매되었다.]

  

“그림 6의 십장생도가 바로 남북의 분단을 예견했다고 하는 문제작일세.

일단 작품에 대한 간략 내용일세.

이 십장생도는 순종이 왕세자였던 6세에 천연두에 걸렸고 이를 치료하여 완치시킨 의약청 관원들이 돈을 모아 창작한 것이네. 왼쪽 2폭에는 의약청 관원들의 명단을 넣었네. 이렇게 여러 사람이 돈을 모아 창작하는 병풍그림을 계병이라고 하네.”   

  

“도화서 화원이 그런 것인가?”  

   

“1879년이면 도화서가 건재했지. 하지만 예산이 없어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지경이었다네.

왕세자를 위한 십장생도를 국가자금이 아닌 의약청 관원들의 돈으로 창작할 수 밖에 없었네.

도화서 화원들은 창작 자금을 대는 사람이나 세력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지.

특히 십장생도의 전체적인 구도와 형상을 기획하는 높은 직급의 화원은 아래 화원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창작 자금을 끌어오기 위해 영혼이라도 팔아야 했네.”

     

“이 십장생도는 앞선 그림과는 뭔가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네.”   
  

“충격적인 변화가 있다네.

일단 항상 왼쪽에 그리던 붉은 해를 오른쪽으로 옮겼네. 이 때문에 우측에서 측으로 향하는 시선의 방향이 반대가 되었네.  하천도  좌측에서 우측으로  흐르고 있네. 그림은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을 보여주는데, 그림의 방향이 바뀐  건 세상을 보는 방법의 변화가 생겼다는 걸 의미하지.

소나무 두 그루를 중앙에 그렸고 복숭아나무는 없애버렸지. 많았던 소나무를 단 두 그루만 남기고 없앤  것도 납득이 가지 않지만, 태평성대를 뜻하는 복숭아 나무를 없앤 것은 충격적이네.”    

 

“그래도 붉은 해와 사슴, 두루미, 거북, 대나무, 영지, 소나무같은 십장생도의 기본 요소를 갖추고 있지 않은가? 왼쪽 위에는 희미하지만 동굴도 표현되어 있네. 남북 분단을 예견하는 형상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바로 하천일세. 마치 시냇물처럼 표현된 하천은 화면의 남북을 가르고 있네.”  

   

“아, 정말 그렇군. 이렇게 남북을 갈라야 하는 조형적 이유가 있는가?”  

   

“조형적 관점에서 보면, 아래 위로 분리하는 화면구도는 위험한 선택일세. 그림의 통일성을 방해하기 때문이지. 이렇게 분리되는 화면은 약간의 조형적 변화로도 보완이 가능하다네. 이를테면, 괴석이나 수풀로 하천에 겹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네. 하지만 이런 보완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네.”

[그림 6-십장생도 10폭/비단에 채색/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그림 5를 초본으로 약간 변주하여 그렸다. 도화서 출신 화원이 개인 주문에 의해 그렸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렇다면 화원의 미숙함 때문이지 않는가. 그림에서 특별한 정치적 의도는 보이지 않네.”    

 

“이 작품에는 여러 의도가 보이네.

일단 하천을 중심으로 남북이 갈랐네. 남북을 위 아래라고 표현해도 상관없네.

위에는 붉은 해, 동굴, 폭포가 표현되어 있고, 아래에는 8마리의 사슴이 그려져 있지. 하천에는 4마리의 거북이가 있네.

위쪽에 표현한 요소는 대부분 양심과 공공질서의 내용을 담고 있네. 아래쪽은 만백성을 상징하는 소나무를 중심으로 현실을 강조했지. 사슴 가족과 짝을 이루는 두루미처럼 가족주의와 남녀화합을 강하게 표현했네. 가족이나 짝을 이루지 못한 사슴과 두루미는 멍을 때리고 있지.

위쪽의 꿈과 아래쪽의 현실은 하천이 가로막고 있네. 마치 강건너 불구경하듯이 꿈과 현실은 상관 없어진 것이지.”   

    

“양심의 세상인 꿈과, 욕망의 세상인 현실이 분리된다면 결국 남는 것은 현실뿐이지 않은가?”

     

“그렇다네. 이후 사람들은 꿈을 잃어버리고 탐욕의 화신으로 변해갔네. 십장생도는 그저 불로장생하는 그림으로만 보기 시작했지. 심지어는 그림 속에 나오는 사슴, 두루미, 거북이와 같은 동물을 먹으면 장수한다고 여겨 모조리 멸종시켜 버렸다네.”  

   

“이제서야 이 십장생도가 남북 분단을 예견했다는 말이 이해가 되는군. 열강의 탐욕이 남북을 갈라놓았고 우리의 탐욕이 분단을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양심과 공공의 질서가 없다면 세상은 탐욕만이 판치는 약육강식의 지옥으로 변할 것일세. 피해자는 순박한 백성들이라네.

탐욕의 십장생도를 모든 사람들이 풍요하고 조화있게 살아가는 생명의 십장생도로 바꾸는 일도 결국 백성들의 간절한 기원으로 이룰 수 있다고 믿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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