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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섭 Jul 06. 2023

역동적인 아침의 나라

우리 그림 속의 아침 해


새해, 동쪽 바다는 일출을 보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아침 해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고 경건하다.

새해가 아니어도 바닷가나 산에 올라 해돋이를 보는 일는 특별나지 않다.

사람들은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소원을 빌고 다짐을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일출을 가장 좋아한다.  

여기서 개념을 확실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일출이지 태양이 아니다.

태양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였고 아무런 상징이나 규정도 없다.


반대로, 서양에서는 일출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태양 자체를 숭배한다.

태양을 신격화, 절대화 시킨다. 태양에 인격을 부여하여 사람 얼굴처럼 그리기도 한다.


“우리 민족은 태양과 별 관련이 없다는 말이군.”


“우리가 태양을 어떻게 규정하든지 간에 태양은 항상 그 자리에 있네.

우리 민족이 태양을 싫어한 것이 아니라 태양에 붙이는 상징을 경계한 것이지. 태양을 절대 존재, 인격신으로 만들면 미신이 판치는 사회가 된다네.”


“일출을 좋아하는 것과 태양을 숭배하는 것은 뭐가 다른가?”


“엄밀하게 말하면, 일출은 태양이 아니라 아침에 해가 뜨는 현상을 의미한다네.

존재에 대한 규정이 없으면 숭배도 없네.”


“알겠네. 그런데 아침 해를 중요하게 여긴 이유가 뭔가?”


“우리 그림을 한 마디로 정리하라면, 아침 해의 그림이라고 대답하겠네.

아침 해의 표현은 우리 그림의 가장 큰 특징일세.

아침 해가 빠진 우리 그림은 마치 고무줄이 없는 속옷처럼 공허하다네.”


“우리 그림에서 아침 해가 그렇게 중요했나? 처음 듣는 소리군. 도대체 아침 해에는 어떤 상징이 붙어 있는가?”


“두 가지일세.

첫째는 영원함의 상징이네.

아침에 해가 뜨지 않으면 세상은 멸망한 것이지. 반대로 아침에 해가 뜬다면 세상은 영원할 것일세.

아침에 해가 뜨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이러한 자연 질서와 직관에 따라 아침 해는 영원함의 상징이 된 것이네.”


“어떤 작품이 있는가?”  

[심규섭 작. 우리 그림을 대표하는 왕실그림에는 아침 해가 표현되어 있다. 태양 자체가 아니라 아침에 해가 뜨는 모습을 그렸다. 이를 통해 태평성대의 영원함을 표현했다.]


“조선 왕실 그림인 [오봉도], [십장생도], [해학반도도]가 있다네. 모두 태평성대를 표현한 그림인데, 백성의 영원한 꿈이자 반드시 이루어야 할 세상이기에 아침 해를 그렸다네.”


“하긴, 쉽게 바뀌고 없어지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은 없지.”   


“둘째는 양심의 상징일세.

아침 해가 양심의 상징이 된 과정은 꽤 복잡하다네.

당시 선비들은 양심을 단심이라고 했지. 단심(丹心)은 붉은 마음이네.

흔히 일편단심(一片丹心), 한 조각 붉은 마음으로 더 알려져 있지.

붉은 마음을 현실의 색으로 표현하면 다홍(多紅)이 된다네.

실제 붉게 떠오르는 아침 해는 다홍색으로 보인다네.

이렇게 양심-단심-다홍-아침 해로 연결된 것이지.

정홍래 화원의 대표작이자 세화로 유행했던 [욱일취도], 심사정의 [약리도], 겸재 정선의 [목면조돈]에 표현된 아침 해는 모두 양심을 상징한다네.”

[위 좌측-숙종 때 활동했던 정홍래 화원이 그린 해응영일-아침 해를 맞이하는 용맹한 매.

위 우측-심사정의 약리도.아침 해를 향해 힘차게 뛰어오르는 잉어를 표현한 그림이다.

아래-겸재 정선/목면조돈/견본채색/23*29.4cm/1740년 경/간송미술관

목면은 서울 남산이고 조돈은 해돋이를 말한다.

겸재 정선이 양천현감 시절에 그린 것으로, 오늘날 강서구 가양동 부근에서 본 남산의 일출 모습이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태평성대를 표현한 그림에서는 영원함이고, 삶의 가치를 표현한 그림에서는 양심을 뜻한다는 말이군.”


“제대로 이해했군.

이 둘이 결합하여 영원한 양심, 세상을 밝게 비추는 양심이라는 개념으로 확장한다네.

우리 그림이 표현한 아침 해는 세상에서 가장 철학적이고 아름답다고 할 수 있지.”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가 그린 낙산사 일출 그림. 일출을 보기 위해 한양에서 강릉까지 먼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낙산사 일출 감상은 한 평생 소원이었고 수 많은 사람들이 일출 감흥을 시와 글로 남겼다.]


“얼핏,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라는 노래에 나오는 동백섬 가사가 생각나는군. 동백섬은 동백꽃이 만발한 섬을 말하는데, 혹시 동백꽃의 다홍색과도 관련이 있는가?”


“백성들은 변치 않는 양심을 영원한 사랑으로 수용했다네.

원로 가수 이미자가 부른 진도 아리랑(1965년)에는 ‘붉은 댕기 다홍치마 동백꽃 따서 머리에 꽂고...’ 라는 가사가 있는데, 여기에서 댕기, 치마, 동백꽃은 모두 다홍색이며 변치 않는 사랑을 의미하지.

동백아가씨나 동백꽃 필 무렵도 같은 뜻이네.”


“19세기 후반, 일부 서구 언론에서는 조선(朝鮮)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The Land of the Morning Calm)’라고 불렀다고 하더군.

혹시, 아침 해를 좋아하는 특성을 간파한 것인가?”


“조선(朝鮮)이라는 국명을 그대로 풀이하면 ‘맑고 깨끗한 아침의 나라’가 된다네.

그런데 굳이 ‘고요한’을 붙인 것은 아시아 동쪽 끝에 있는 별 볼일 없는 나라로 비하한 것일세.  

[태극기 속의 붉은 색은 다홍이며, 붉은 악마 응원단이 입은 옷도 다홍색이다. 우연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내재한 아침 해의 색이 발현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고요하거나 조용하지 않았다네.

대륙문명과 해양문명이 충돌하고 양심과 욕망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역동적인 나라였지.

치열한 사회민주화를 통해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했고,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 정의로운 행동은 한류 문화의 바탕을 만들었지.

우리 민족은 어둠을 뚫고 세상을 밝히는 역동적인 아침 해의 나라이기 때문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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