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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섭 Nov 13. 2023

신윤복의 미인도 7화

한양 뒷골목의 주점에 화상(畵商)들이 모였다.

광통교 근처에서 점포를 운영하는 장사꾼들이다.

이들은 오랫동안 미술품이나 서예작품을 취급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상당한 심미안을 가지고 있었다.     


화원들에게 그림을 구매하고 배첩(표구)하여 판매하는 일이 주업이다.

이밖에도 청나라에서 종이나 붓, 물감과 같은 고급 미술 재료와 최신 그림을 수입하여 전파하는 역할까지 했다.

화공(畵工)들을 여럿 고용하여 유행하는 그림을 대량으로 그려내는 공방을 갖춘 곳도 있었다.     


“사헌부에서 신윤복을 감찰한다는 소문이 돌던데 사실인가?”   

  

“혜원의 그림이 어떠하길래 사헌부까지 나선단 말인가?

솔직히 혜원의 풍속화는 나라의 안녕과는 별 관계가 없네. 왕이나 양반을 풍자하거나 비판을 담은 것도 아니고 백성의 원한을 그린 것도 아닌데 말이네.”  

   

“어떤 이는 그림 속의 남자들을 양반이라고 하는데, 증거가 있나? 언제부터 조선 땅에서 의복으로 신분을 차별했나?

갓 쓰고 좋은 옷 입으면 모두 양반인가? 요즘 가장 비싸고 화려한 옷을 입고 다니는 자들은 대부분 무역으로 돈을 번 중인들이네. 우리 같은 상민이나 노비들도 의복을 갖춰 입으면 모두가 양반처럼 보일걸세.”    

 

“맞는 말이네. 혜원은 도화서를 그만두었기에 공식적인 행사나 연희장면을 그릴 일은 없네.

뱃놀이나 연희장면은 개인적인 주문을 받아 그렸다고 봐야 하네.”  

   

이들은 그림을 살 만한 고객을 찾기 위해 도화서 화원뿐만 아니라 부자, 관리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따라서 한양에서 그림에 관련한 정보는 이들을 따라올 수 없었다.   

  

“사헌부가 혜원의 야릇한 그림 때문에 감찰하지는 않았을 것이네. 굳이 찾자면 무당 그림이 문제가 되지 않겠나?

거, 있잖는가? 무당이 신들린 듯이 춤추는 장면을 그린 거 말이네.”     

[신윤복/무녀신무/종이에 담채/35.6*28.2cm/간송미술관/19세기 초.

무당이 부채를 들고 푸닥거리를 하고 있다. 이 무당은 갓을 쓰고 무관의 붉은 철릭을 입고 있다. 무당의 권위가 선비에게서 나온다는 의미이다. 늙은 여자는 쌀이 담긴 그릇을 놓고 빌고 있다. 굿판은 조촐하다. 차린 음식도 없고 2명의 악사가 전부이다.

자녀를 낳지 못하는 며느리를 위한 굿판일 가능성이 크다. 정작 쓰개치마(장옷)를 쓴 며느리는 담 넘어 사내에게 눈길을 보내고 있다.

무당의 춤과 악기, 선비 옷이나 남녀 간의 호기심 따위가 결합한 난해한 그림으로 작품의 의도를 알기 어렵다. 무당을 소재로 한 그림은 사회적 금기이다. 이 작품은 미신과 풍속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 있다.]     


“하긴 그 그림을 가지고 사헌부에서 꼬투리를 잡을 수 있겠네. 혜원이 탁발하는 중들의 모습을 제법 그렸지. 하지만 이런 모습은 단원 김홍도도 많이 그렸고 사회적  문제가 되진 않았지. 그도 그럴 것이 정조 임금께서 용주사를 재건하고 선대의 명복을 빌었으니 할 말 없지.

하지만 무당 그림은 좀 의아하네. 아무리 풍속화라고 하지만 귀신을 부정하는 성리학의 나라에서 귀신을 추종하는 무당을 그리는 것은 문제가 될만하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였다.

성리학은 양심을 가진 사회적 인간에 관한 철학이자 실천이었다.

따라서 귀신은 부정했으며, 귀신을 믿는 행위를 미신으로 간주해 경계했다.

한양 4 대문 안에서는 무당굿을 금지했으며 무당에게 세금을 부과했다.  

  

성리학에서 귀신에 대한 개념은 간단하다.   

  

‘귀신은 기의 변용태(變容態)일 뿐이다. 좋은 기는 위로 올라가고, 바쁜 기는 아래로 가라앉는다.’     


기(氣)는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지만, 사람이나 사회에 영향을 주는 관념이다.

주자(朱子)는 기를 사회적 생명으로 보았다. 좋은 기는 곧 좋은 삶이나 교훈을 의미하기에 위로 올라간다고 했다.

나쁜 기는 잘못된 관념이기에 아래로 내려가 없어진다고 말한 것이다.     


기(氣)의 변용태는 인간의 감정과 관념이 만들어낸 이상한 형상이다.

탐욕을 채우기 위해 금 거북, 금두꺼비 형상을 만들어내거나, 두려움을 숨기기 위해 강인한 괴물에 의존하며, 성적 능력을 키우기 위해 물개의 성기를 보약으로 받드는 행위와 비슷하다.    

 

조선 중기부터 수용한 중국의 신선들을 그린 작품이 전한다.

하지만 선비들은 하늘을 날고, 수 만 년을 살며, 도술을 부리는 신선들을 믿지 않았다.     

조선에 들어온 신선은 군자의 상징이 되었다.

상상의 동물인 용이나 봉황, 해태 따위에도 태평성대, 정치, 청렴과 같은 인문학적인 내용을 투영하여 수용했다.     


신윤복이 무당 풍속화를 그린 것이 주문에 의한 것인지, 개인의 작품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역대 풍속화에서 무당이 그려진 것은 상당히 특이하다.

다만 중국 도교(미신)가 들어와 유행하면서 무당들의 위세가 커진 것은 사실이다.     

[신윤복 풍속화-청금상련. 왼쪽 사내가 흥에 겨운 표정으로 기생을 뒤에서 껴안고 있고, 기생은 당황해한다. 이를 성행위 장면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불가능한 자세이다. 이 모습은 실내에서 있었던 일은 바깥 풍경에 결합한 것이다. 사내 왼쪽에  실내에서 쓰는 사방관이 이를 증명한다. 나머지 인물들이 쓴 갓이나 가리마는 야외용 모자이다.]    

 

“혜원의 그림 중에 이상한 점이 있네. 청금상련(廳琴賞蓮)이라고 가야금 연주를 들으면서 연꽃을 감상하는 그림말이네.

그림 왼쪽에 기생을 안고 야릇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남정네는 왜 그린 것인가?”

     

“어떤 이는 성행위를 하는 장면이라고 하네만, 아무려면 여럿이 있는 야외에서, 그것도 벌건 대낮에 그 짓을 하겠는가? 나는 아무리 보아도 그런 것 같지는 않고. 그냥 흥에 취해 끌어안는 모습처럼 보이네.”     

[신윤복 필 춘화. 이 자세로 성행위를 하려면 여성이 무릎을 세워야 한다.]     


“나도 얼핏 독특한 성행위 모습으로 보았네. 쑥스럽지만, 지난밤에 마누라와 그 자세를 취해 보았지. 그런데 마누라 엉덩이가 누르니 허리를 쓸 수가 없었네. 저 자세로 성행위를 하려면 여자가 다리를 세워야 하는데, 그림과는 전혀 딴판이네.”    


“그냥 사설기생을 동원하여 한여름 풍류를 즐기는 장면일 뿐일세. 이 그림을 보고 성행위를 연상한다면 음란마귀가 쓰인 것이네.”  

   

“혜원은 정통 미술교육을 받은 화원이네. 특히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의 진경산수화를 익혔고, 아버지 신한평에게는 왕실 인물화를 체계적으로 배웠네.

혜원의 풍속화는 단원 김홍도와는 다른 구도법을 사용한다네. 마치 같은 시공간에서 일어난 일처럼 보이겠지만, 연꽃을 보는 사람, 가야금 연주를 듣는 사람, 기생은 껴안은 사람은 각각 다른 시간대에 있었던 것을 한 화면에 결합한 것일세. 이를 통해 그림을 풍성하고 재미지게 만든 것이지.

이런 조형 방법은 일찍이 겸재 정선 선생께서 금강산을 발품 팔아 곳곳을 사생하여 철학적으로 결합한 금강산 그림에서 확립되었네.”   

  

“그러니까, 마치 판소리의 눈대목을 모아놓을 것과 같다는 말이군.

하긴, 신윤복이 아무리 눈썰미가 좋아도 그 장면을 단번에 그려내지는 못하지.

만약 뱃놀이를 그린다면, 뱃놀이를 내내 따라다니면서 사생을 한 후, 화실에 돌아와 낱개의 장면을 선별하여 가장 절정의 모습을 하나의 화면에 그린다는 것이군.”  

   

신윤복 풍속화의 가장 큰 특징은 장면을 연출한다는 점이다.

단원 김홍도가 순간의 모습을 포착하는 것에 반해 신윤복은 이것저것을 끌어모으고 합쳐서 상황을 창조한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현실을 조합하여 이상적 세계와 형상을 만드는 조형 방법은 진경산수화의 전형이다.   

  

“말이 나온 김에, 혜원에게 춘화(春畵)를 주문하면 어떻겠나? 혜원의 풍속화와 춘화는 잘 맞는 것 같은데.

자네들 의견은 어떠한가?”  

   

“단원 김홍도 이후에 최대의 물건이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군. 하지만 혜원이 수락할까?”

   

“그러니까 하는 말이네. 제법 많은 돈을 주어야 할 거야. 우리 화상들이 공동으로 자금을 투자하면 좋겠네. 일단 원작만 나오면 화공들을 시켜 대량으로 모사하여 전국으로 뿌리면 엄청난 이윤을 남길 것이네.”

     

술자리가 파장에 이르고 있었다.

지난밤 마누라와 한판 떴다는 화상은 옆으로 쓰러져 잔다.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다른 화상이 술잔을 집어 들면서 소곤거리며 말한다.    

 

“최근 혜원이 기생을 만난다는 소문이 있네. 늦은 밤에 기생과 돌아다니다가 수라꾼에게 낭패를 보았다는 얘기도 돌고 있네.”

    

“그 기생이 누구라던가?”    

 

“도화라는 기명을 쓰는 젊은 기생인데, 옷맵시가 좋고 단장에 뛰어나며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가졌다고 하더군. 무엇보다 애잔한 눈빛과 몸에서 풍기는 교태가 일품이라고 하더군.”  

   

“요즘 혜원이 외롭고 힘드나 보군. 하긴 그림도 잘 팔리지 않는데 사헌부 감찰까지 당했으니 그럴 만도 하네.”     

“그런데 말이야. 그 도화라는 기생이 찾는 또 다른 남자가 있네. 강부자라고. 자네도 알만한 사람일세.”

    

“강부자라면, 역관 출신에다가 소금장사로 큰돈을 벌었다는 사람 아닌가. 최근 위세가 대단해서 양반들도 겁낸다는 소문도 있던데. 그렇다면 한 여인을 두고 혜원과 강부자가 경쟁하는 꼴이네.

거, 다음 이야기가 정말 궁금해지는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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